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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섯손가락 Jun 19. 2024

<읽는 기쁨>

편성준 작가 북토크

활자를 읽기가 힘들다. 눈이 아프고 시간이 빠듯하고 일상이 바쁘다. 책 속에 담긴 내용을 활자로 진득하니 앉아서 읽어내기는 바쁘고 할 일 많은 현대인에게는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책 한 권이 어깨를 짓누르는 짐짝처럼 무겁다.


이런 고충을 알고 편성준 작가는 느리게 살기를 권한다. 천천히 걷고, 하루 여덟 시간씩 잠자고, 몸과 마음이 흐르는 대로 유유자적하며 읽기를 제안한다.


그는 광고쟁이였다. 카피라이터. ‘커피가 착해서 커피에 반하다’라는 광고 문구가 그의 마지막 작품이다. 지방 커피에서 상경하여 성공한 경우다. 카피라이터가 재미있기도 하지만 너무 바쁘고 야근과 주말 근무가 일상이라 성격과 맞지 않았다. 훌훌 던져버리고 글을 쓰고 책을 읽어서 요즘은 '좀 좋게 바뀐' 삶을 산다고 했다.


오늘 들고 온 책은 <읽는 기쁨>이다. 우선 표지가 예쁘다. 부담스럽지 않은 연분홍에 제목도 간결하게 ‘읽는 기쁨’ 네 글자가 네모꼴로 박혔다. 단순한 삶을 지향하는 요즘 세태와 걸맞다. 책 분량도 250쪽을 넘지 않는다. 17개의 장에 담은 꼭지글도 각각 셋이다. 모두 51권의 책을 소개하지만 꼬리를 물고 따라오는 책도 있다. 한 꼭지 분량도 길지 않다. 2000자 전후쯤 된다. 그러니 책 디자인이나 글밥 분량에서 일단 기쁘고 가볍게 읽을 조건을 갖춘 셈이다.


학교 수업이나 강연이나 가장 긴 시간 동안 들은 교사나 강연자의 말보다는 자기가 던진 질문과 그 답만 남는 법이다. 오늘도 그렇다. 우선, 책 크기가 궁금했다. 작은 가방에도 쏘옥 들어갈 정도다. 신국판일까 싶어 질문하니 전문적인 규격은 모른다고 했다. 얼핏 보기에는 국판이나 신국판쯤으로 보인다.


목차를 구성하는 데 기준이 있었는지 질문했다. 작가는 전체 목록이 아니라 한 챕터의 구성에 대해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이었나 싶었다. 편집 용어 ‘도비라’를 설명했다. 새로운 장을 여는 문, ‘사립문 비(扉)’자를 일본어로 ‘도비라’라고 한단다. 첫 장을 시작하기 전에 여는 문짝이다. 한 챕터가 끝나고 다시 시작하는 새 챕터 앞에 있다. 그 장에서 말하는 핵심 문구나 가장 매력적인 문장을 두어 독자가 흥미를 갖도록 유혹한다. 이것도 읽는 기쁨을 누릴 만한 요건이다.


예를 들면, ‘너무 웃기는데 살짝 눈물도 나는’이라는 장 앞에는


‘유머 중에 가장 좋은 유머는 ’자기 비하 유머‘라고 생각한다. 자조적인 유머는 아무도 해치지 않는다. 그러면서 인생을 견디게 하는 힘을 준다. 이 책들이 그렇다.’


라는 글귀를 두었다. 독자가 군침을 흘리도록 이끄는 전채요리 같다. 게다가 각 장의 제목은 소개할 세 권의 책 내용을 아우르는 독창적인 내용이다. 이를테면, ‘이 책에 끌린 이유는 따로 있다’, ‘남의 리뷰를 너무 믿으면 안 되는 이유’, ‘영화감독에겐 늘 좋은 스토리가 필요하다’ 등 다양하다.


다시 질문했다. 전체 목록을 배열하는 데 적용한 기준이 있는지. 답은, 일정한 기준은 없었고 단지, 작가가 앞세우고 싶었던 내용은 독자가 위로받을 내용이면 좋겠다 싶어 황정은의 ‘일기’와 레이먼드 카버의 ‘별 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을 첫 장에 두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목차도 독자를 염두에 두고 배려하는 작가의 마음으로 순서를 정해야 하는 작업이다. 독자가 화선지에 먹물이 스미듯이 빨려들 수 있도록 말이다.


편성준 작가는 자기가  영화나 연극, 책을 리뷰하면 다들 얼른 사고 싶어하고 읽고 싶어 하더라고 소개했다. 리뷰쓰기를 잘한다는 말이다. 어떤 책이라도 좋으니 그 속에서 기쁨과 즐거움, 황홀감을 느껴 보라며 권유한단다. 그런 기쁨을 느끼도록 만드는 비법이 있는지 궁금했다. 출판편집자인 그의 아내는 작가 개인사나 생각을 넣으면 재미있는 글이 될텐데 없다고 피드백하여 초안을 보완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남들이 언급한 내용을 반복하지 않고 자기만의 시각과 느낌을 붙들어 소개하려고 애썼다고 했다. 전체적인 흐름과 주제잡기보다는 구석에서 찾아내는 편이라고. 남의 리뷰는 읽지 않는 이유가 그 독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란다.


독자가 기쁘고 재미나게 읽도록 이끄는 그의 비법(?)은 구체적으로 쓰기랬다. 하고자 하는 말을 앞세워 두괄식으로 쓰고 점점 더 세부적인 내용으로 뒷받침하는 방식이다. 독자는 작가의 세계를 자세히 들여다볼 때 더욱 흥미롭게 읽는다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설재인의 소설 ‘너와 막걸리를 마신다면’을 예로 들었다. 모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 또한 크다. 편성준 작가는 한 달에 7,8권을 구입해서 2,3권을 읽는다고 했다. 평이하다. 듣는 이도 부담감이 덩달아 줄어든다.


평소 책을 읽으면서 메모한 독서노트를 공개했다. 독후감이 아니라 독중감을 쓰면서 읽으라는 뜻이다. 굳이 공개하지 않아도 되는데도 그는 청중을 위해 일기장과도 같은 노트를 두 권이나 돌려보게 했다. 인물, 사건, 어휘, 감상, 질문거리 등 다양하게 적어두었다.


“내일의 나를 만드는 건 어제의 내가 아니라 지금 현재의 내가 만든다.”


라는 그의 말과 일맥상통하는 행보다. 말과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작가의 모습, 가진 것을 나누면서 새로운 출발선을 만드는 자세가 그를 무한대로 성장시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수로 응원하고 싶은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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