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섯손가락 Jul 01. 2024

'웜홀'로 날아든 '신기방기'

우주에서 날아온 편지

이건 뭐지?


 메일이 왔다. 더 정확히 말하면 답장 메일이다. 더더 정확히는 답답답장이다. 


 느낌이 예전과 다르다. 마치 우주 이쪽과 저쪽으로 통하는 길, 웜홀을 지나 아득히 먼 우주에서 메일이 날아온 느낌. 뭔가 다르다. '웜홀'이라는 단어를 썼다. 스치는 단어를 썼지만 그 뜻을 정확히 알고 싶었다. 


 *웜홀: 우주 공간에서 블랙홀(black hole)과 화이트홀(white hole)을 연결하는 통로를 의미하는 가상의 개념.


 급한 대로 위키백과 첫머리를 보니 이랬다. 블랙홀과 화이트홀을 연결하는 통로, 그렇다면 그 통로를 거쳐 나에게로 온 메일로 나는 해석하고 느낀 것이다. 어떠한 통로, 길을 지나 나에게로 온 편지. 


가상의 개념이란다. 실재하지 않는 이론상, 상상 속에 그려진 이미지. 나는 그렇게 상상한 것이다. 실제로는 전파를 타고 상대방의 저쪽 컴에서 이쪽 나의 컴으로 신호가 활자로 찍혔을 뿐인데 내가 감각적으로 해석한 형태는 '우주 속 웜홀을 통해 날아온 편지'로 읽은 셈이다. 


가까운 수로나 환기통이나 미끄럼틀도 있을텐데 왜 웜홀이었을까? 한동안 연락없이 지내는 동안 우주처럼 아득히 먼 곳으로 보내버린 것일까? 심리적으로도 우주만큼이나 멀어져버린 걸까?


신기방기. 이 또한, 내가 자주 쓰던 말이 아니다. ‘웜홀’이라는 말처럼 느낌이 색다르다 하며 '신기방기'라는 단어도 함께 사용했다. 


*신기방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색다르고 놀라움.


네이버 국어사전 뜻풀이다. 매운 놀란 건 맞다. 항상 이웃집에 사는 동네 주민처럼 친근했는데 마음은 여전히 그렇지만 저간의 시간적 공백이 오늘 편지를 서먹하게 했다. 내용은 단순하지만 행위는 그랬다. 한동안 이어졌던 침묵이 그동안 형성했던 친근감을 갉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생쥐가 치즈를 갉아 먹는 것처럼, 야금야금. 스멀스멀.


*서로 다른 두 공간을 잇는 가상의 통로. 

‘웜홀’을 다시 사전에서 찾아보니 위키백과 아래 나무위키의 설명은 이랬다. 우주까지 멀리 날아갈 필요까지는 없다는 뜻이다. 

단체 메일이 아니라 나에게만 온 개별 메일이고 오랜만에 받아서 '신기방기'하게 '웜홀'로 날아온 문장으로 알아챘나 보다. 


시간과 물리적 거리는 관계를 이어붙였다가 떼어놓기도 하는 마법이 있다. 마술적 힘이 강하다. 요술을 마구마구 부린다. 우주 공간에 그윽한 통로를 만들 정도로.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쌓이면 숙성된 시간만큼 깊은 맛이 우러나는 두터운 사이가 되리라. 번개처럼 번쩍거리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름꽃, 도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