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son 10
- 이번 주에는 장미로만 수업을 진행할 거예요.
문자를 받았을 때, 안개꽃에 둘러싸인 빨간 장미 다발이 떠올랐다. 꽃을 눈여겨본 적 없던 나의 머릿속에 각인된 장미의 이미지였나 보다.
그런데, 스튜디오에 들어가니 다양한 모양과 색깔의 장미가 손질되어 있었다. 창으로 들어오는 여름 햇살에 분홍, 피치, 주황, 아이보리의 장미가 만들어내는 로맨틱한 분위기에 압도됐다. 사랑하는 마음을 왜 꽃에 담아 전하는지, 이해가 됐다.
“수업을 하다 보니, 언니는 형태에 대한 감각이 부족하더라고요.”
“맞아요. 공간 지각력이 엄청 없어요. 운전 처음 배울 때, 미카엘라에게 자동차 범퍼는 가벼운 소모품이라는 놀림을 받았어요. 자동차 문짝 3개를 바꿨거든요. 운전한 지 1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주차가 어려워요.”
“그래서 오늘은 돔형태 만드는 연습을 해보려고요. 물론 지금껏 했던 스파이럴 연습도 돔모양이 기본이긴 해요. 그런데 오늘은 장미만 사용해서 더욱 콤팩트하게 돔형태를 만들 거예요. 오목한 숟가락 위에 아이스크림 한 스쿱을 퍼서 올렸다고 상상해 보세요. 옆에서 봤을 때 숟가락 위로 보이는 아이스크림의 모양, 그게 제가 생각하는 잘 만들어진 돔이에요.”
“예.”
“먼저, 장미 이름을 알려드릴게요. 꽃잎 끝부분만 진분홍색을 띠는 건 슈가밤장미고.. 여기 얼굴이 비슷한 두 녀석 중에 분홍색은 리젠트파크장미, 오렌지빛 도는 피치색은 시크릿장미예요. 옅은 분홍색의 헤라장미는 꽃잎 끝이 뒤로 살짝 말려서 부드러운 느낌이 나죠. 아이보리색 장미가 샤먼트고.. 여기 세 친구 이름은 아약스, 하젤, 부르트예요.”
“예? 내 눈에는 다 똑같이 생겼는데, 얘네들이 세 종류나 된다고요?”
“맞아요. 저한테는 색깔과 화형의 미묘한 차이가 느껴지는데, 처음에는 구분이 쉽지 않죠.”
“요새 내 프로필 사진 바뀌는 것 보고 아는 분이 연락을 주셨어요. 좋아 보인다고. 그분도 꽃을 배웠는데, 꽃들의 종류를 구별하고 한 송이 한 송이 꽃의 예쁜 얼굴을 알아보는 데만 3년이 걸렸다는 거예요. 그 의미를 알겠네요.”
스파이럴 연습을 했다. 그동안 실력이 좀 좋아진 줄 알았는데.. 다른 소재들 없이 장미로만 만들어진 다발은 나의 부족한 형태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스파이럴 방향이 흐트러지지 않았는데도, 내 손에 쥐어진 다발은 어떤 형태라 이름을 붙일 수 없을 정도로 찌그러져 있었다.
“어렵죠? ‘꽃을 아름답게 다루려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고려해야 되는구나..’하고 언니를 보면서 새삼스럽게 깨달아요. 저는 몸에 익어서 자연스럽게 하는 것들을 언니는 많이 고민하더라고요.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계산하는 게 옆에서 다 보여요. 지금도 언니는 동일한 종류의 장미가 한쪽으로 쏠리는 게 싫어서 그걸 신경 쓰느라 정작 돔의 형태를 만드는 것에는 집중을 못 하고 있어요. 다발에 입체감을 주고 싶어서 과도하게 꽃들의 높낮이에 편차를 두니까 오히려 부자연스러워졌고요.”
“제가 또 욕심이 과했어요. 이게 초보인가 봐요. 무엇이 중요한지 구별이 안 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걸 몰라서 욕심이 앞서는 게..”
“언니가 생각하는 디테일은 기본기를 탄탄하게 익히고, 기술적으로 실력을 쌓고, 경험이 많아지면 빛을 발할 거예요. 그러면 또 다른 재미가 있는데, 그만큼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거죠. 지금은 우선 돔의 모양을 만드는 것에만 집중해요. 제가 시범을 보일 테니 다시 한 번 잡아보세요.”
돔은 아니지만 조금 더 원형에 가까운 두 번째 다발을 만든 후, 흰색 화기에 플로랄폼을 세팅하고 꽃을 꽂았다. 동그란 모양이 만들어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스승님이
“언니, 잠시 멈추고 이쪽 반대편으로 와서 보실래요?”
“아니 이게 뭐야! 나는 돔이 만들어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이쪽이 왜 이렇게 납작해?”
옆으로 넓적하고 울퉁불퉁한 모양을 보고 깜짝 놀랐다. 스승님이 손을 많이 봐주고 나서야 돔의 모양이 만들어졌다.
스승님이 더 작은 화기를 챙겨주며 말했다.
“이틀 정도 예쁘게 보시고, 뽑아서 더 작게 만드는 연습을 해 보세요. 이번 주에 작업하고 남은 꽃들도 챙겨드릴 게요. 흰색 화기에 돔모양으로 꽂아보세요. 사진 찍어서 보내주시면 피드백할게요.”
스승님이 제안한 대로 집에서 연습을 했다. 다시 해봐도 돔의 모양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뽑았다 꽂았다 반복하며 플로랄 폼을 벌집으로 만드는 내게 엄마가 말했다.
“아니, 아직도 안 끝났어? 그게 그렇게 3시간이나 끙끙댈 일이야? 적당히 동그랗게 꽂으면 되는 거 아니야?”
“그 마음 이해돼. 나도 기본적인 꽃꽂이기술을 알려주는 책 읽으면서 코웃음 쳤었거든. ‘그냥 적당히 알아서 동그랗게 꽂으면 될 것 같은데, 이것도 기술이라고.. 당연한 내용을 뭐 이렇게까지 설명하는 거야?’ 하면서 비웃었거든. 직접 해보니까 마음처럼 안 돼. 이거 대단한 기술이야.”
연습이 끝난 후, 스승님께 사진과 함께 문자를 보냈다.
- 전에 스승님이 집에 가서 다시 연습할 수도 있다고 말했을 때, 내가 그랬잖아요?
“내가 만든 꽃이 너무 만족스러워요. 이렇게 예쁜데 그냥 두고 볼래요.”
꽃을 더 예쁘게 다루려면,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려면, 얼마나 많은 연습과 노력이 필요할지.. 이제야 아주 조금 감이 생겨요. 꽃린이가 철이 조금 들려나 봅니다.
마음먹으면 언제든 돔모양을 만들 수 있을 만큼 해보고 싶어요.
스승님이 피드백을 해줬다.
- 다른 분들께도 레슨 끝나고 집에 가서 연습해 보시라고 권유를 했었어요. 그런데, 취미로 배우는 분들 중에는 언니처럼 이렇게 문자를 보내는 경우가 거의 없었어요. 집에서 다시 연습했다는 것 자체가 매우 칭찬받을 일이에요.
- 언니의 열정에 상응하는 피드백을 하자면, 언니가 보내준 형태는 돔보다는 반원에 가까워요. 맨 아래쪽은 더 짧게, 가운데 바로 옆부분은 사선으로 조금 더 길게 꽂아서 높여주면 좋겠어요. 그렇게 하면 위에서 내려찍었을 때, 보라색으로 체크한 녀석이 조금 더 길게 꽂혀서 아래 노란색으로 표시한 녀석은 안 보일 거예요.
- 고마워요. 도움이 많이 돼요.
이렇게 못했는데도 기분이 좋고 즐거워요. 이런 경험이 내 인생에는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