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니피그, 뿌꾸 (2)

'나의 작은 반려 쥐에게' 여섯 번째 이야기

by 송희운


뿌꾸와 즐겁고 행복한 순간들도 있었지만, 내가 너무 잘 모르던 시절이라 뿌꾸를 굉장히 불안하게 했던 시절도 있었다.


기니피그라는 특성 자체에 대해 잘 몰랐던 부분이 많다 보니 여행을 갈 때도 누군가 뿌꾸를 봐줘야 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뿌꾸가 다른 기니피그랑 달리 성격이 좀 예민한 면이 있다 보니 우리가 만지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래서 우리 가족은 우리가 있으나 없으나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하여 그저 밥과 물만 잘 주고 가면 된다고 생각해 나름대로의 충분한 양의 밥과 물을 주고 프랑스로 닷새 동안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을 다니는 동안 가끔 생각이 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잘 있을 것이라는 아주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5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는 깜짝 놀랐다. 집으로 누군가 들어오면 밥을 먹다가도 후다닥 숨기에 바빴던 뿌꾸가 우리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후다닥 자기 은신처 밖으로 나와서 막 울어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왜 자신을 두고 갔냐고 하는 것만 같은 원망 섞인 울음이었다. 뿌꾸가 이렇게 행동한 것이 처음이라서 적잖이 놀랐던 나는 짐을 내려놓고 케이지로 다가가 뿌꾸를 안았는데, 거기서 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우리가 그렇게 많이 주고 갔던 먹이 그릇 속 밥의 양은 거의 변화가 없었고, 뿌꾸의 몸이 너무나 야위어 있었다. 기니피그는 체형 자체가 원래 뼈가 잘 느껴지지 않는 통통한 몸인데, 그날 안아 올렸던 뿌꾸의 몸은 뼈가 선명하게 느껴질 정도로 앙상해져 있었다. 뿌꾸가 우리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뼈가 드러날 정도로 밥을 먹지 않은 모습을 보고 우리는 뿌꾸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사실은 나로서는 상당히 충격이었다. 골든 햄스터를 키울 때처럼 그저 밥만 주는 일방적인 관계라고만 생각했는데, 뿌꾸가 내가 생각했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내게 의지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때 비로소 내가 키웠던 다른 햄스터들도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나 많이 기다렸어?"하고 뿌꾸를 안아 위로해주려고 했을 때, (물론 그때도 뿌꾸는 싫어하며 자신의 은신처로 숨었다.) 다른 어떤 순간보다 그때부터 뿌꾸에게 더 큰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애틋한 순간이 있었기에 다른 어떤 동물보다 뿌꾸와의 헤어짐이 더욱 괴로웠다. 노화로 인해 점점 더 말라가서 밥을 잘 못 먹는 모습을 보고 두유에 사료를 개어 주사기에 넣어 어떻게든 밥을 먹여주려고 했었다. 케이지 밖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자칫 발을 걸려 다칠 수도 있을 것 같아 최대한 편한 환경을 만들어주고자 했었다. 그럼에도 뿌꾸의 노화는 자연의 섭리대로 이뤄지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결과였기에 하루하루 나빠져가는 상태를 어리고 건강한 시절처럼 좋게 만들 수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틀 동안 여행을 가셨고 원래는 어머니가 챙겨주시던 뿌꾸의 밥을 그동안 내가 챙겨주었다. 저녁에 밥을 먹여주고 그다음 날 아침 출근을 하면서 "오늘 아줌마 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라고 말하고 나는 회사로 떠났다. 이때가 내가 뿌꾸에게 했던 마지막 인사였다. 시간이 조금 지나 부모님이 도착하셨고, 아버지는 주차장에 차를 대고 계시는 동안 어머니가 먼저 집으로 올라오셨다.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와 먼저 뿌꾸에게 밥을 주려고 살폈는데, 뿌꾸가 자기의 은신처 밖으로 나와있었다고 하셨다. 어머니가 얼른 겉옷을 벗고 뿌꾸를 안았는데 뿌꾸가 아주 희미하게 숨을 헐떡이다가 어머니 품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 말을 회사에서 들은 순간 일하다 말고 화장실로 가서 아주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마지막을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뿐만 아니라, 왜 나는 살아있는 동안 뿌꾸에게 더욱더 이뻐해 주고 사랑을 주지 못했는지에 대한 미안함이 가득했다. 그렇지만 내가 그때 가장 크게 느꼈던 감정은 '상실감'이었다. 내 삶에 있어서 가장 많은 애정을 주었던 존재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상실감은 뿌꾸가 나와 교류했던 시간만큼 비례되어 정말 내 마음을 무너지게 했다. 그렇게 조그맣고 작은 존재가 내 삶에서 이런 존재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 슬픔 속에서도 그나마 내게 위안이 되었던 것은 뿌꾸가 홀로 남아 숨을 거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뿌꾸의 마지막 순간 어머니가 계셨고, 뿌꾸는 어머니를 만나고 세상을 떠났다. 아니, 어쩌면 뿌꾸는 그 넓은 집에서 우리 가족 중 누구라도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다가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비로소 안심하고 갔을지도 모른다. 뿌꾸의 진짜 마음은 무엇이었는지 나는 평생 알 수 없겠지만, 그래도 뿌꾸가 저런 마음을 가졌던 것이라 믿고 싶다. 사실 그전에 뭉치를 제외하고는 반려동물이 죽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잘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동물이다 보니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도 그것이 정말 깊은 공감을 받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항상 의문이 들었다. 뭉치 때부터 친한 사람들에게 조금씩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뿌꾸가 갔을 때 SNS에서도 티를 내지 않고 그저 블로그에 비공개로 글을 올렸을 뿐이었다. 진정으로 애정으로 줬던 만큼 값싼 동정과 위로로 뿌꾸의 죽음을 소모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친한 이들은 뿌꾸의 소식에 녀석이 그래도 행복한 삶을 살고 갔을 것이라고 말을 해주었다. 그 말은 내게 정말 큰 위로가 되었었고, 그 말대로 뿌꾸가 그런 삶을 살았기를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뿌꾸가 떠났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내게 큰 마음의 상처로 남아 그 뒤로 더 이상 동물을 키우지 못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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