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처 준비하지 못했던 이별

'나의 작은 반려 쥐에게' 일곱 번째 이야기

by 송희운


이전에 키우던 햄스터들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렇게 큰 슬픔은 느끼지는 못했다. 너무 어린 시절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을 수도 있고, 생각보다 그들에게 애정을 주지 않아 그만큼 깊은 슬픔을 느끼지는 못했을 수도 있다. 내가 처음으로 선명하게 상실을 기억하는 순간은 골든 햄스터 ‘뭉치’를 떠나보냈던 순간이었다. 나는 그 전에는 설치류들은 덩치가 작기 때문에, 그들이 떠난다고 해도 그 이별의 아픔이나 슬픔의 깊이가 클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그 순간에 대해서 제대로 생각해본 적조차 없지만, ‘그 고통이 커봤자 얼마나 크겠어’라는 안일한 마음이 컸다. 그렇게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가온 죽음의 순간을 마주했을 때, 그것은 내가 머리로만 생각했던 추상적인 ‘죽음’의 형태와는 전혀 달랐다. 싸늘하게 식은 골든 햄스터 ‘뭉치’의 몸을 본 순간 내가 느꼈던 것은 마치 그 자리에서 지하 1km 아래로 순식간에 추락하는 것과 같은 감정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내 곁에서 분명 숨 쉬고 따뜻한 온도를 갖고 살아있던 생명의 부재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과 같은 고통과 아픔이었다.


사랑했던 동물들을 떠나보내는 순간을 준비하지 못했던 것만큼이나, 이들이 떠났을 때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모르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특히나 내가 어린 시절에는 반려동물에 대한 장례식 문화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동물의 죽음을 대하는 방식에 익숙하지 않았던 시절, 강아지나 고양이도 장례를 해주는 것을 생각하지도 못했었는데 하물며 햄스터와 기니피그는 어땠을까. 아무리 아무것도 모르는 시절이었다고 해도, 내가 사랑하고 아껴주던 햄스터 뭉치와 기니피그 뿌꾸를 그냥 쓰레기통에 버릴 수는 없었다. 그들은 나의 가족이었기에 가족을 쓰레기통에 넣는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기 싫었고, 그렇기에 작은 햄스터는 집에 있는 화분에 묻어주거나, 조금 덩치가 있는 기니피그는 산에 묻어주었던 그런 시절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작은 햄스터들을 화단에 묻고 나면 이따금 생각이 날 때마다 그곳을 쳐다보고, 거기에 묻힌 햄스터들이 잘 있을지 생각하고는 했었다. 뿌꾸를 잃었을 때의 감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었지만, 그 당시 내가 다니고 있던 직장은 주말에서도 나가서 일을 할 정도로 바쁜 곳이었기에 내가 뿌꾸를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결국 부모님이 뿌꾸를 산에 가서 묻어주었다는 것을 나중에 들었지만, 뿌꾸가 어디에 묻혔는지는 부모님도 못 찾겠다고 하셨다.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뿌꾸는 다른 어떤 동물들보다 많이 생각나는데, 나는 뿌꾸를 어디서 추억할 수 있을까? 지금이라면 내 돈을 써서 장례를 해주고 나름 대로의 예우를 갖춰 보내주고 나중에 가끔 뿌꾸 생각이 난다면 찾아가 볼 수 있을 텐데. 이제는 뿌꾸가 생각나더라도 내가 찾아갈 수 있는 장소가 어디에도 없다.


뭉치의 죽음보다 뿌꾸의 죽음은 상상 이상으로 나를 무겁게 짓눌렀고, 그때서야 뿌꾸가 떠나 기 전에 왜 나이 든 동물들이 잘 보낼 수 있도록 충분한 준비를 해주지 못하고 보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나이가 들었을 때 여러모로 준비가 필요한 것처럼 나이 든 동물들에게도 그들이 떠나기 전, 혹은 그들이 떠날 때까지 잘 보낼 수 있도록 모든 면에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지금 뒤돌아보면 매 순간 모르는 것들 투성이었다. 그렇기에 최근에 사람들이 햄스터와 기니피그 장례를 해주고, 유골로 스톤을 만들어 반려동물들을 기억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그런 것들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때 당시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이었다고 해도 다시 되돌아보면 최선이 아니었던 것들을 보면서 지금 내가 알고 있는 동물들에 대한 지식도 결코 최선일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반려동물을 데리고 올 때, 동물들 각자가 가진 특성과 습성을 이해하고 준비해야 하는 것처럼 이들을 떠나보낼 때에도 키우는 가족들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고, 외적인 환경에서도 준비를 해야 하는 것. 그리고 아무리 반려동물의 크기가 작다고 해도 내가 키운 햄스터와 기니피그들의 죽음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기에 그 죽음을 겪은 이들의 마음도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다는 것. 너무 늦었지만, 내가 동물들과의 이별을 겪으면서 알게 된 중요한 사실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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