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반려 쥐에게' Outro
내가 키우던 햄스터, 기니피그들을 모두 떠나보낸 뒤 이제 더 이상 설치류들을 키우지 않기로 결심한 이후 그때서야 비로소 사람들이 싫어하는 '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이야기를 왜 하고 싶은지를 물어봤을 때, 나 스스로도 단번에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나둘씩 글을 써가면서 어느 정도 내 안에서 찾을 수 있었던 답은 너무나 식상한 답변이지만 당연한 진리일 수밖에 없는 답변인 "쥐도 살아있는 생명"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쥐를 좋아하는 이유, 설치류와 얽힌 나름의 사연을 풀어가면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쥐를 좋아해야만 해'라고 설득하고 싶지는 않다. 각자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있는 것처럼 내가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 타인이 나에게 설득하려고 할 때 그것이 얼마나 폭력적이 될 수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나는 쥐를 워낙 좋아하기에 때로는 시궁쥐까지 귀여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을 만져보라고 하면 만지지 못할 것이고, 키우라고 하면 흔쾌히 키우지 못할 것이다. 과거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농가에서는 쥐로 인한 피해가 존재하고, 하수구에 살고 있는 시궁쥐들이 수많은 질병을 옮기는 매개체라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쥐의 생명을 잔인하게 빼앗아갈 권리는 우리에게 없다. 더럽고 불결하고 비천한 존재로 여겨질 지더라도, 이 땅에 태어난 이상 자신의 본능대로 충분히 살아가야 하며, 살아있는 그대로의 생명 자체는 귀한 것이다.
그렇기에 타인이 키우는 반려동물에 대해서도 조심해야 할 부분들이 많다. 햄스터, 기니피그 등을 키우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아끼고 사랑하는 반려동물에 대해 '혐오스럽다'라고 공개적으로 비난을 하거나 혹은 고작 작은 동물 한 마리가 죽었는데, 그렇게까지 슬퍼할 일이냐고까지 힐난을 한다. 사람에게나 붙이는 호칭인 '동생', '딸', '아들'을 동물에게 붙인다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정말 많다. 사람의 선호도가 모두 같을 수 없더라도, 타인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에 대해 비난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그저 작고 하찮은 '동물'일뿐이겠지만 그들을 키우는 사람의 눈에는 '가족'이자 '친구'이며 이 세상을 떠난다고 해도 언제나 그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 슬픔을 공감하지 못할지언정 그 슬픔과 감정에 대해서는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닐까.
결국 내가 말하는 모든 이야기들을 통해 하고 싶었던 한 마디는 "살아있는 생명인 쥐도, 함께 이 땅에 살아가는 존재로서 존중받아야 할 목숨"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반려동물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반려동물의 죽음을 다루는 다른 이들의 방식이 불편할지더라도 각자 나름대로의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는 것을 존중해주는 것. 이 모든 것은 단순히 '쥐'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같이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살아있는 생명에 대한 서로의 예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