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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희운 Dec 28. 2023

괴물이라고 해 난 불쌍하지 않으니까

<괴물> 속 '괴물'이라 불리는 이들에 대하여

※ <괴물>의 스포일러 및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16번째 장편 영화 <괴물>이 국내 개봉하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따뜻하면서도 서정적인 화면과 대조적으로 서늘해지는 감정들이 돋보이는 순간들이 존재한다고 느껴왔었는데, 개인적으로 이번 작품은 다른 작품들보다 이러한 지점이 가장 돋보이는 영화로 느껴졌다. 어린 두 소년들이 어떻게 괴물이 되고, 타인을 괴물로 만드는지 고요하면서도 섬찟하게 드러내는 영화. <괴물>에 대해 짧게 소감을 말한다면 이와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괴물>은 총 세 가지 챕터로 진행된다. 하나는 미나토 엄마인 사오리의 시선, 다른 하나는 호리 선생님의 시선, 마지막은 미나토와 요리의 진실이 담긴 아이들의 시선이다. 영화의 초반은 이상하게 변해버린 초등학생 미나토를 아들로 둔 싱글맘 사오리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평소와 다르게 계속해서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미나토와 미나토가 왜 그렇게 변해가는지 알 수 없었던 사오리. 사오리의 입장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실로 답답함을 자아낸다. 분명 아들이 이상하게 변해가고 있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없기에 엄마의 심정에 더욱 몰입되게 만들고, 아들이 이상하게 변한 원인으로 지목된 호리 선생님을 대하는 학교의 태도에 엄마의 입장으로서 답답함과 분노가 치밀어 오르게 만든다. 미나토의 일을 방관하는 것처럼 보이는 학교를 끊임없이 방문하여 면담하는 사오리의 이야기를 계속 보고 있노라면 학교라는 거대한 공권력이 나약한 아이를 얼마나 끔찍하게 짓밟아버릴 수 있는지 일본 공교육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냉철한 시선이 돋보이는 듯하다.



하지만 영화가 두 번째 챕터로 들어가면서 가해자로 지목된 호리 선생님의 이야기가 드러나는 순간, 이야기의 분위기는 달라진다. 학부모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지 않아 유흥업소를 들락날락한다는 소문까지 나고 사오리가 교장 선생님과 다 같이 면담을 하는 자리에서 갑자기 사탕을 까먹는 행동을 하며 말 그대로 '싸이코'와 같은 모습을 보였던 호리 선생님의 이야기가 드러나는 순간 완전히 다른 인물로 변한다. 그는 실로 정상적인 선생님이었고, 오히려 학생 하나하나를 최선을 다해 챙기려고 했던 성실한 선생님이었다. 그는 요리가 반에서 괴롭힘을 당한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는데, 그 주된 원인이 미나토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나토가 자신을 가해자로 지목하자 분위기는 삽시간에 반전되어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제대로 된 해명을 하지 못하고 사건을 크게 만들지 않고 무조건 덮어버리려고 하는 학교에 의해 가해자로 완전히 낙인찍힌다. 지역 신문에까지 나며 대대적으로 소문이 다 나버린 호리 선생님은 그대로 자신의 삶을 놔 버리는 것까지 생각했지만, 학교 어디선가 울려 퍼지는 관악기의 소리를 듣고 포기한다. 호리 선생님의 이야기는 단순히 가해라고 규정된 인물을 되돌아보라고 말하는 것만을 뜻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는 가해자로 지목되었던 호리 선생님이 유일하게 아이들의 비밀을 눈치챈 인물로 드러나기 때문인데 타의에 의해 괴물로 규정되었던 인물이 아무도 다가가지 못했던 진짜 진실을 깨닫게 된다는 점에서 참으로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마지막 미나토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에서 비로소 모든 진실이 드러난다. 미나토와 요리는 괴롭히고 괴롭힘을 당하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아닌 오히려 서로에 대한 감정을 천천히 깨달아가는 애틋한 관계였다. 학교에서는 서로 모르는 척하지만 밖에서는 요리와 함께 둘만의 기지를 만들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미나토는 자신이 요리에게 느끼는 감정이 친구가 아닌 친구 이상의 감정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혼란스러워한다. 요리는 자신의 정체성으로 인해 자신의 아버지에게 '그것'이라고 불리며 인간의 뇌가 아닌 돼지의 뇌를 갖고 있다고 학대당하고 있었고, 요리로부터 이러한 이야기를 들은 미나토는 자신도 요리의 아버지가 말한 대로 이상하게 변해버렸다고 생각한다. 어머니에게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한 미나토는 결국 자신의 진실을 가리기 위해 호리 선생님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게 된다.


<괴물>의 이야기에는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괴물이 되어버린 인물과 스스로 괴물이 되어버린 인물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모두 괴물이 되었지만 가해자는 아니다. 이 이야기의 가장 무서운 지점은 영화 속에서 이들을 괴물로 만들어버린 가해자들이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반에서 요리를 계속해서 괴롭히는 것은 미나토가 아니라 다른 세 명이었지만 이들은 호리 선생님이나 다른 선생님들의 눈에 절대로 띄지 않는다. 오히려 미나토가 요리를 구해주려고 하는 순간 호리 선생님이 등장하여 미나토가 요리를 괴롭히는 것으로 오해하게 만든다. 또한 요리를 정신적으로 학대하는 요리의 아버지도 이야기의 주축이 되어 등장하지 않는다. 유흥업소를 다니는 것은 호리 선생님이 아닌 요리의 아버지였고,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요리는 아버지가 다니는 유흥업소에 불을 지른다. 유흥업소의 화재는 이야기 속에서 드러나는 시점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이 화재는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는 전환점인 동시에 서로 각자 다른 입장에 따라 사건이 얼마나 다른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 단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미나토는 자신과 요리를 지키기 위해서 돌이킬 수 없는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그 거짓말을 통해 사오리와 호리라는 두 괴물이 탄생했다. 사오리는 자신의 아들을 지키기 위해 자의로 괴물이 되었고, 호리는 타인의 의지와 이를 무마하려는 외부 상황으로 인해 괴물이 되었다 사오리와 호리가 괴물이 된 순간, 미나토와 요리도 타인을 괴물로 만든 괴물이 되었다. 이들은 이미 자신들이 사는 세계의 평범함에서 벗어났을 때 타인들이 자신들을 괴물로 정의할 것임을 눈치챘고, 그렇기에 스스로 괴물이 되는 것을 선택했다. 영화는 이러한 상황을 만든 것은 명백하게 악임이 분명한 가해자들이지만,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인간은 얼마든지 괴물이 되거나 괴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드러낸다.


<괴물>에서 유독 돋보이는 대사가 있는데 그것은 ‘불쌍하지 않아’라는 대사이다. 미나토의 입을 통해 나온 ‘불쌍하지 않아 ‘라는 대사는 그가 비록 영화 속에서 괴물이 되었을지언정 타인으로부터 동정을 받을만한 입장은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스스로 자신이 불쌍하지 않다고 되뇌는 미나토. 미나토와 요리는 태풍이 몰아치는 밤, 영화 속에서 자신들의 진실이 모두 드러나고 모든 감정이 극에 달해 소용돌이치는 밤 자신들의 아지트로 들어간다. 괴물이 된 어른들은 아이들을 찾으려고 진흙탕을 뚫고 들어가지만 결국 그들은 아이들을 만나지 못한다. 영화의 마지막 엔딩에서 아이들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곳이 아닌, 비가 하나도 오지 않고 맑게 개인 하늘 아래 굳게 닫혀 있던 철창이 하나도 없는 곳으로 떠난다. 이 엔딩은 왠지 모르게 서글퍼지기도 하는데, 괴물이 되어버린 아이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곳은 더 이상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나토와 요리는 그렇게 더 이상 자신들을 괴물이라고 부르지 않는 곳으로 떠난다.



 영화 속에서 미나토와 요리는 타인에게 괴물이라는 취급을 받을지 언정 자신들을 불쌍한 존재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자신들의 존재와 정체성이 타인들에게 동정을 받거나 타인의 판단 혹은 인정을 받을 필요가 없는 있는 그대로의 존재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괴물>의 엔딩이 조금 서글플지라도 미나토와 요리는 새롭게 떠난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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