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네치카 Jan 23. 2021

저... 댄스가 하고 싶어요  

농구를 절절매며 하고 싶던 정대만처럼, 내 사전에 댄스란 포기가 없다.

 나의 댄스에 대한 외사랑의 역사는 길다. 초등학교 시절 청년들의 미래와, 아이들의 짓밟힌 꿈들을 노래하던 HOT의 파워풀한 몸짓은 조용하고 책만 읽던 나를 사로잡았다. 그들은 간혹 격렬하게, 간혹은 상큼한 춤사위로, "멋"의 새로운 지평을 보여주었다. H.O.T의 라이벌이라던 젝스키스는 또 어떤가. 여섯 개의 수정이라 자신들을 부르는 오빠들은 "폼에 살고 폼에 죽는"다며 뛰어댔다. 화면을 보며, 나는 그 빠른 비트감에 저 밑에서 끓어오르는 흥분을 느꼈고, 그들처럼 다리를 옆으로 찢으며 내 힘껏 천장까지 뛰어보았다. 걸그룹들의 무대도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는데, 이때 습득했던 상대적으로 다소 쉬웠던 스킬들 ( 'I'm Your girl'의 "나를 믿어 주길바래"의 팔을 아래 위로 양쪽으로 교차하며, 폴짝폴짝 몸을 움직이던 안무, 핑클 '영원한 사랑'에서 머리를 한껏 청순하게 한쪽으로 넘기며 팔을 구리구리 잼잼하듯이 돌리던 안무 등) 은 성인이 되어 노래방에서 쏠쏠히 써먹었었다. 중학교 때에는 펌프가 유행했었다. 하교 길, 우리 집으로 가던 버스 배차 시간이 길어, 종종 10분 이상씩 기다렸다. 버스정류장 근처에는 당시 오락실이 있었고, 나는 매일 그 오락실에서 펌프를 했다. 다른 게임은 모두내게 심드렁했는데, 오로지 펌프 할 때만 그렇게 즐겁고 신날 수가 없었다. 펌프에서 내가 주로 즐겨하던 곡들은 젝키 노래들이었다. (나는 HOT를 더 좋아했는데, 이상하게 펌프는 젝키 노래로 해야지 그 발판을 마구잡이로 발로 누를 때의 희열이 컸다.) 젝키의 컴백과, 뫼비우스의 띠는 반드시 하는 노래 목록이였는데, 얼마나 했던지 컴백의 후렴 부분에서 360도로 돌리던 발놀림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학교 다닐 때, 축제 기간에는 꼭 무대 위에서 아이돌들과 똑같이 춤을 추는 친구들이 있었다. 혹은 근처 다른 학교, 동네에서 알음알음 유명하던 댄스 오빠 언니들이 있었다. 다소 벙벙한 맨투맨과 바지를 입은, ( 스키니의 시대는 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였다.) 그들은 무대 위에 조용히 올라가는데, 그 순간 누가 말한 것도 아닌데 무대 아래 우리들은 모두 숨을 죽였다. 그들은 노래가 시작되면 무대를 누비며 무대를 찢었다. 무래 아래에 있던 나는 그들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 없었다. 지금의 나는 공부를 하는데 집중해야 하는 학생이지만, 성인이 되면 저렇게 나도 자유롭게 춤을 춰보리라!!! 하고 다짐했다.

 그 후 나는 대학생이 되었고, 어느새 졸업해 회사에도 취업했다. 대학교 시절은, 아르바이트하고 취업 준비하는데 바빠서, 댄스를 배워볼 여력이 없었다. 좀 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자신감이 없었다. 나는 사실 심각한 몸치이다. 나는 몸을 자유재재로 본인의 의도한 대로 구현해 내는 사람들을 늘 동경했다. 나는 내 몸뚱아리를 백 프로 내 뜻대로 할 수 없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댄스를 하려면, 자신 없는 것을 남에게 내보여야 하는 것에 대한 창피함, 누군가가 나를 답답해할지도 모른다는 앞선 걱정, 결국 무언가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했다. 그저 즐기면 되는 '취미' 일 수도 있는데, 그것마저도 나는 내려놓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하고 싶어도, 멀리하고 외면했었다.

 어느날 문득, 꼭 좋아하는 것이 잘해야 하는 것과 동일해야만 하는 걸까 라고  나 자신에게 반문했다. 잘하지 못한다고 해서, 안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심지어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하는 행복을 내 손으로 내가 포기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었다. 회사 초년생인 시절, 나는 이미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엑셀을 보며 자리에 앉아 있는 생활이 무료해지기도 했다. 내가 원하는 대로 100프로 움직이지 못하는 어긋나는 몸이라도 움직이며, 마음껏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당장 회사 근처의 오래된 댄스 학원을 찾아갔다.


지난날, 개인 SNS에 남겼던 댄스에 대한 외사랑의 기록의 흔적을 옮겨본다.

 

오른쪽 끝이 접니다.

회사를 다니며, 댄스 학원은 중간에 사정상 쉴 때도 있었지만 지속적으로 다니려고 노력했다. 한창 일이 바쁠 때에는 주말에 원데이 클래스를 찾아가기도 했다. 이년 전에는 심지어 거금을 주고 , 댄스 개인 과외를 받아 보기도 했다. 그런데도 나의 댄스 실력은 확 늘었다고 하기 어렵다.  현재 기준으로는 오히려 퇴보했다. 부서 변경, 코로나 등으로 1년 넘게 댄스학원을 다니지 못했기 때문이다. 몸치인 나의 몸은 정직하게 그 감각을 영 기억하지 못한다. 예체능은 재능이 큰 것인가 하고 좌절해보지만, 나는 댄스를 이제 잘하려고, 남에게 잘 보이려고 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즐겁고, 내가 더 행복하기 위해 춘다. 나는 이미 참 열심히 살고 있으니까.

 나는 항상 좋아하는 것을 잘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것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만큼, 만족할 만큼은 잘할 수 있었다.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이제는 꼭 보답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들인 시간과 정성, 그 과정에서 알알히 느꼈던 즐거움 자체로도 충분하다. 잘하는 것은 잘하는 대로 두고, 좋아하는 것은 순수하게 좋아하기로 했다. 그러면 아주 느리게라도,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잘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고 실낱같은 희망을 걸어본다.

(아니면 뭐, 이렇게 얘기하며 되지. 제 취미는 잘하지도 못하면서 '댄스'입니다!!! )


포기를 모르는 정대만처럼, 나는 포기를 모르지. 잘하지 못하면서, '댄스'가 하고 싶어요!!!

 댄스학원에 가서, 다시 매주 처음 듣는 노래를 듣고, 새로운 몸짓을 보며 따라 하고 싶다. 힘겹고 어설프지만 애쓰며 따라가는 내 몸짓에서, 마지막 즈음에는 그래도 노래를 즐기며 춤을 추는 내 모습을 보며 즐겁게 웃고 싶은데, 어려워졌다. 여기에 포기할 내가 아니다. 농구를 절절매며 하고 싶던 정대만처럼, 내 사전에 댄스란 포기가 없다. 나는 얼마 전 당근 마켓에서 닌텐도를 샀다. 작은 방구석에서 '저스트 댄스'라는 게임을 한다. 힘겹게 블랙핑크의 'Kill This Love'를 따라 한다. 할 때마다 얼마나 웃긴지 모른다. 내가 나 자신을 이렇게 웃길 수 있다니, 이렇게 '저스트 댄스' 하는 것만으로도, 아주 만족스러운 나날들이다.


P.S 따뜻해지는 봄이 오면, 다시 댄스학원에 그래도 가고 싶다. 올해 안에 학원에서 선생님들과 부대끼며,춤을 추는 나를 상상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 시절, 내가 사랑했던 러시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