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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균 Jun 02. 2016

박찬욱 감독 <복수 3부작>의 색

The Vengeance Trilogy

b.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들은 그 영화를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를 확실히 알게 해준다. 영화 속에 감독의 개성이 고스란히 담겨서 특유의 미장센부터 카메라 워크, 샷 하나하나에 저마다의 색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들 가운데서도 유독 ‘이 영화는 내가 만든 영화입니다.’라고 광고하듯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있다. 바로 영화감독 박찬욱이다. 오죽하면 그의 산문집인 <박찬욱의 몽타주>는 이렇게 시작된다.

‘첫째도 개성, 둘째도 개성, 무엇보다도 오직 개성’.

 기본적으로 그의 영화는 뛰어난 미장센을 자랑한다. 배경과 소품 하나하나가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아름답다. 모양도, 무늬도 기괴하고, 색도 지나치게 화려한데 이러한 배경과 소품이 영화의 전체적인 ‘미’를 살려준다. 그의 뛰어난 미적 면모를 드러내 준다고 볼 수 있는데, 그의 이러한 미적 취향은 그의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완성되었다. 건축을 전공했던 그의 아버지는 미술에 관심이 많았고, 그의 외할아버지도 서화 컬렉션이 있을 정도로 집안 자체가 미술과 친숙해질 수 있는 환경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환경 속에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던 그는 특히 그로테스크하고 초현실적인 그림들을 좋아했고, 박찬욱 감독의 이러한 취향은 영화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복수 3부작의 경우엔 영화의 개성이 고유한 색으로 표현되는데, 이는 각각의 영화가 가진 서로 다른 복수의 특징을 보여주는 듯하다.



1.

 복수 3부작 중 첫 번째 영화인 <복수는 나의 것>은 극단의 미장센을 사용한 영화다. 리얼리즘의 극치를 보여주려 했던 박찬욱 감독은 극도의 클로즈업을 통해 사실주의적인 기교를 강하게 드러낸다. 또한, 대부분의 장면을 야외에서 촬영하고, 낮 장면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자연스러운 조명이 그대로 사용되는데, 이는 사실주의적인 기교를 선호하면서도 엄격하고 절제된 연출을 통해 일체의 감정을 배제한 듯한, 관객이 느끼기에 단순한 가시적인 어두움이 아닌, 내면의 어두움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복수는 나의 것>을 대표하는 색은 빨간색이다. 빨간색의 소품이 영화 곳곳에 배치되어 있고, 자연광을 이용해 전체적으로 무채색에 가까운 배경 속에서 그 색깔은 더욱 돋보인다. 영화 속에서 빨간색이 가장 돋보이는 순간은 주인공들이 피로 인해 붉게 물든 순간이다. '생기'로 표현되는 인간의 붉음은 그것이 밖으로 표출되는 순간 사라지게 되는데, 영화 속에서도 삶의 생기를 잃은 주인공들이 이를 복수로 표출해버리는 순간부터 모두가 생기를 잃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복수는 나의 것>이라는 제목처럼 모두가 복수를 향해 나아가는 순간, 복수의 주인은 사라지고 없다.


2.

  <올드보이>에서는 그만의 미적인 표현이 영화 속에 더욱 가득해진다. <복수는 나의 것>과 달리 장르적으로 느와르의 느낌이 강하게 전해지는데, 험상궂게 생긴 사내들 가운데서도 전작보다 더 화려해진 영상이 영화를 가득 채운다. 이러한 영화의 화려함은 15년이라는 시공간의 압축 속에서 절정을 이룬다.

 15년이라는 시간을 한 영화 속에 압축하기 위해 폐쇄된 공간이 영화의 주를 이루는데, 최민식의 감금방과 유지태의 펜트하우스를 대비시키며 두 사람 간의 이질감을 극대화시킨다. 또한, 최민식이 다니는 모든 공간에 배경을 차지하는 기하학적 형상의 포인트 벽지들은 유지태의 펜트하우스의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배경과 흡사한데, 이는 최민식이 결국 유지태의 손아귀에 놀아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올드보이>를 대표하는 색은 보라색이다. 빨간색이 파란색과 섞여 나오는 보라색은 우아함과 화려함을 동시에 담고 있다. 여기에 알 수 없는 문양들이 보라색과 함께 반복적으로 배치되면서 관객들을 시공간의 미궁 속으로 더욱 빠져들게 만든다.

 영화 속에서 유지태와 관련된 모든 장면에선 보라색이 보이는데 이는 우아함, 화려함과는 다른 모습의 보라색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복수를 향해 달려가는 최민식이 맞닥뜨린 복수의 결말에는 유지태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자신이 있다. 결국 복수의 주체가 뒤섞여버린 영화의 결말에서 보라색의 우아함과 화려함은 없고, 보라색이 가진 다른 모습, 고독과 추함만이 남아있다.


3.

  복수 3부작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도 전작들과 같이 빨간색과 보라색이 화면 가득 채워진다. 빨강과 보라는 인체에서 피와 멍을 대표하는 색깔이다. 박찬욱 감독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면모를 표현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색인 것이다. 잔인하면서도 화려하고, 정열적이면서도 가라앉은 듯한 이 두 색의 조화는 영화 내내 화면 가득 난사된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빨강과 보라가 눈에 띄지 않는 장면이 있다. 금자가 과거를 회상하는 씬이다.

 이영애가 진짜 ‘친절한’ 금자씨 였을 때는 극적인 대비를 보여주기 위해 따뜻하고 밝은 느낌의 색깔로 화면을 꾸민다. 이영애의 머리 스타일도 교도소에서는 생머리였던 반면, 출소 후에는 굵은 웨이브로 변화를 주어 인물의 변화를 확연히 드러내 준다.

 무엇보다 색감의 변화를 통해 인물의 변화를 가장 잘 드러내 주는 것은 이영애의 메이크업이다. 출소 후 눈 화장을 화려하게 칠해 눈매가 싸늘하고 무표정하게 표현된다. 화면의 배경과 메이크업을 빨강과 보라를 적절히 혼합해 인물의 심리 변화를 표현했다면, 배경 면에서는 출소한 후 금자가 머무는 좁은 방안의 조명 자체를 어둡게 표현하면서도 붉은색 벽지로 도배를 해 하나의 지옥과 같은 느낌이 들게 하였다. 이는 복수를 결심한 이후, 앞선 영화들처럼 금자가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빨간색과 보라색이 영화 내내 끊임없이 노출되지만 <친절한 금자씨>를 대표하는 색은 파란색이다. 복수를 선택한 이후, 이영애는 냉정함을 잃지 않는다. 복수를 향해 달려가는 냉정함 속에 복수를 향한 여정이 행여 길을 잃을까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영애는 자신의 손에 뜨거운 피를 묻히지 않는다. 마침내 이영애가 자신의 복수를 끝내고 차가움이 눈물로 녹아내리는 장면에선 그녀의 알 수 없는 미소가 영화를 가득 채운다.

 13년이란 긴 시간 동안 죗값을 치르고, 용서를 구하던 이영애는 그렇게 또다시 죄인이 된다.


4.

 복수 3부작은 소재와 주인공을 사회의 비주류에게 집중하면서 사회에서 기피하는 주제를 심도 있게 파고든다. 사회가 기피하는 주제들이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통해 대중성과 공공성을 가지고 관객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다. 사람들이 각자의 의견을 표출할수록 자신들이 직접 표현하거나 경험할 수 없었던 문제들을 복수 3부작을 통해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관객들의 간접적 체험을 위해 보통 사회문제를 다룬 영화들은 현실 속에 비현실성을 내재하고 있다. 현실과 비현실의 중간에 위치하면서 현실의 객관적 재현과 작가의 주관적 표현 사이에서 수많은 이야기들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 송강호의 죽은 딸이 나오는 장면이라든지, <올드보이>에서 지하철 안에 타고 있는 큰 개미가 나오는 장면, <친절한 금자씨>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어린 여자아이는 이러한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 관객들을 위치하게 하는 요소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실과 환상의 조합은 관객들을 제3자의 시각에서 사건을 바라보게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약간의 거리를 둠으로써 그 사이의 공간에 관객이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채울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복수 3부작을 보고 난 관객에게도 영화와 현실 사이에 철학적인 질문이 던져진다. 복수는 누구에게 행해야 하는 건지, 복수는 누가 행할 수 있는 건지, 복수를 하고 나면 모두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건지. 박찬욱 감독은 이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해주지 않는다.

 답은 관객의 몫이다.




<복수는 나의 것> ★★★★

<올드보이> ★★★★★

<친절한 금자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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