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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균 Mar 15. 2016

롤러코스터

겪고 나면 겁은 없다

ⓒ flebeaute_Minolta X-700 / 과천 서울랜드_2015.05.22


 난 놀이기구를 못 탄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놀이공원으로 소풍을 가면 짐꾼이 되기 일쑤였고, 친구들은 그런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근데 나이를 하나 둘 먹어가기 시작하니깐 놀이기구 못 타는 게 무슨 죄라도 되는 마냥 억지로라도 태우려는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쓸데없는 호의가 계속 되면 거절만 늘어날 뿐, 그런 장난도 거절이 계속되자 더 이상 생겨나지 않았고 그렇게 나는 놀이기구를 못 타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남에게도, 나에게도. 고등학교 졸업 직전 마지막 소풍이었던 롯데월드를 끝으로 내 생애 놀이공원은 없었다. 이제 적어도 의무적으로 갈 필요는 없었으니깐.

 하지만 인생이란 게 다 그렇듯 모든 것은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연애라는 것을 하게 되고,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던 내게 여자친구는 뜬금없이 놀이공원 데이트를 제안했다. 행복해야할 데이트에 놀이기구라니. '나는 놀이기구를 정말 못 타니, 혼자서라도 타고 싶으면 가자'는 말에 흔쾌히 좋다고 말하는 여자친구를 믿는게 아니었다. 그렇게 난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놀이공원을 가게 됐다.

 놀이공원에 갈 때만 해도 '그래, 나는 안 탈 거니깐.'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는데, 입장하자마자 서울랜드는 놀이기구가 별로 안 무섭다는 말에 그제서야 현실을 직시하게 됐다.


 '아, 나는 오늘 놀이기구를 타겠구나.'


 사실 놀이기구를 한 번도 안 타본 것은 아니었다. 회전목마라든가, 범퍼카 같은 건 타봤지만 내 발이 1m 이상 땅에서 떨어지는 것들은 애초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었다. 탈 생각도 안 해봤고, 탈 마음도 없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나는 라바 위에 올라 타 있었다. 그렇게 공중에서 라바는 몇 바퀴를 돌았다. 나도 돌았다. 근데 생각보다 재밌었다. 그렇게 나는 여자친구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말았다. 재밌다고. 그렇게 또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나는 은하열차를 타기 위한 대기줄에 서 있었다. 이번엔 진짜 못 타겠다고. 나 이런 거 타본 적 없다고 몇 번이고 얘기했지만, 실망스런 눈빛과 함께 그럼 그냥 나가라는 여자친구의 모습에 난 어느새 철이가 되어있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게 이것도 재밌었다. 여자친구가 갑자기 메텔로 보였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모르게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블랙홀로 한 번 더 뛰어들게 됐다. 20년을 넘도록 무섭다고 안 타던 놀이기구를 그 날 다 타봤다. 진짜 무서웠는데, 무서워서 못 타던 놀이기구였는데 이게 여자친구의 힘인지 모르겠지만 타게 됐다.

 돌이켜보면 난 놀이기구를 무서워했던 게 아닐지도 모른다. 타보지도 않았는데 무서워서 못 탄다니. 아마도 난 내 무서움을 무서워하고 있던게 아닐까. 행여나 저 무서움이 진짜 나타나지는 않을까 하는 그 두려움. 그렇게 생각하니 그토록 타기 싫던 놀이기구보다 내가 더 무서웠다.



 해보지 않으면 두렵고, 해보면 두렵지 않았다. 비단 놀이기구뿐만이 아니다.

 실패의 두려움, 좌절의 두려움, 모두가 해보지 않아서 두렵다.

 실패해보면 실패가 싫어지고, 좌절해보면 좌절을 거절하게 된다.

 눈 딱 감고 한 번만 해보면 된다. 그럼 두렵지 않다.


 겪고 나면 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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