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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anne Nov 07. 2019

어쩌다 메히코

4) 메리다, 치첸이트자, 라스 콜로라다스

Merida

빨렝께에서 약 8시간정도를 달려 드디어 메리다에 도착했다. 유카탄 최대의 도시라서 멕시코시티 정도의 번화함을 기대했는데 구도심은 여행객 중심으로 깔끔하게 정리된 상업지구인 반면 그 외 지역은 여타 멕시코 소도시처럼 의외로 낡고 평범한 식민지시대 건물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소박한 여행을 즐기게된 지금 말끔하게 정리된 도심지가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져서 스스로에게 조금 놀랐다. 호텔은 빨렝께에서 떠나면서 호텔투나잇을 통해 당일 할인받고 꽤 저렴하게 구했는데 방에서 내려다보니 정원에 공작새 세마리가 돌아다니고 있어서 또 한번 놀랐다. (원래 잘 놀람) 바닷가 근처라 해산물이 많을 줄 알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여느 멕시코 관광지가 그렇듯 이탈리안 아니면 스테이크가 가장 흔해서 빠르게 포기해야 했다. 아, 해산물 먹고싶어...  


Chichen-Itza

이번 여행은 이동의 편의상 거점도시를 중심으로 묵었지만 이상하게 도심지역은 별로 관심도 없고 볼 시간도 없었다. 시장을 돌아다니거나 길거리 가판에서 타코를 먹는 건 좋았지만. 어쨌든 숙소에서 푹 쉬고 여정을 푼 다음날은 치첸이트자로 향했다. 메리다 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Connecta라고 콜렉티보같은 벤으로 아침 시간대별로 세대쯤 있었는데 돌아올때는 1등버스 4시 반에 한대였다. 원래는 이튿날 보고 바로 플라야 델 카르멘으로 떠나려고 했는데 차시간이 맞지 않아 먼저 보게 되었다. 

멕시코 여행 통틀어 여러 피라미드와 마야문명 유적지를 보았고 중간에는 약간 물리는 감도 있었지만 치첸이트자는 달랐다. 뭐 규모를 생각하면 태양의 피라미드에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건축된 방법에 들어있는 천체지식이라든지 과학성이 당시 기술로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고 멋지다. 올라갈 수는 없게 되어있지만 마주보고 서서 박수를 치면 내부 신전에 반사되어 메아리가 돌아오는데 소리가 마치 새울음소리처럼 들린다. 모든 관광객과 가이드가 아래에서 박수를 치고 있었다..피라미드도 신기했지만 다른 건물들도 신기하고 웅장하고 또 이 지역 전체에 퍼져있는 Cenote (쎄노떼) 가 이곳에도 있었는데 신성하게 여겨져서 황금과 보석을 비롯해 어린아이까지 공물로 바쳤다고 한다. 근데 시체가 들어있으면 물 썩고 더러워지는거 아니냐고.. 천체관측에는 그렇게 놀라운 기술을 자랑하면서 이런 부분에선 고대 문명(+종교)의 한계가 느껴진다.  

무슨말이 필요하죠? 그냥 쩔...

las Coloradas

사실 이날은 플라멩고떼를 보러 Celastun 셀라스툰에 갈 생각이었다. 모든 계획을 그렇게 맞춰 호텔을 체크아웃하고, 짐을 CAME 터미널에 맡기고, Norte로 이동해서 다녀온다는 완벽한 동선이었다. 이미 Playa del carmen으로 가는 버스도 예약해두었었다. 그런데 전날 갑자기 알게된 핑크색 호수 las Coloradas에 꽂혀버렸다. 예약해 둔 표도 버리고 (교환은 되지만 환불은 안된다고 했다 흑흑) Noreste 터미널로 가서 라스콜로라다스 행 버스에 올랐다. 시간이 없어서 아침도 못먹고 칩으로 때웠다. 메리다로 돌아올 수 없었으므로 짐도 다 들고 탔다. 인터넷으로 알아본 바로는 분명 세시간 반 걸린다고 했는데 이 완행버스는 온갖 군데서 멈춰세우는 사람들을 태우고 내려주고 하면서 다섯시간 넘게 걸려서 도착했다. 내가 운전만 잘했으면 그냥 렌트하는건데 ㅠㅠ 돌아가는 길도 꽤 험난했다. 플라야 델 카르멘에 가야 하므로 메리다로 돌아가는 것보다 Valladolid로 가서 ADO버스를 타는 루트가 현명하다. 라스콜로라다스에 도착하면 역에 다른 버스가 있는지 살펴볼 생각이었는데 도착해보니 번듯한 역은 커녕 그냥 길바닥이다. 하루에 버스는 한편, 내가 타고온 노레스테 버스가 전부인 것 같았다. 두시 반쯤 도착했는데 네시 반에 같은 버스가 다시 메리다로 향한다고 했다. 오는 길에 Tizimin에 정차한 것이 생각나서 가는길에 그 도시에서 Valladolid로, 거기서 다시 Playa del Carmen으로 가기로 했다. 물론 인터넷에 정보가 잘 없어서 갈 수 있다는 확신은 없었다. 만약 못 가게 된다면 그 곳에서 자면 그만이라고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다행히 Tizimin에서 Valladolid로 매시간 가는 Oriente 버스가 있었다! 원래의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든 후에 호텔 투나잇으로 그날 밤 머물 숙소를 예약했다. 늦게 예약했더니 값도 더 싸졌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라스 콜로라다스는 아름다웠다. 처음보는 핑크색 호수와 하늘색의 대비가 아름다웠다. 버스만 아니었다면 노을도 봤을텐데, 그럼 더 아름다웠을텐데. 그렇지만 본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이 여정을 통해 다시한번 내가 얼마나 목적 지향적인 인간인지도 깨달았다. 한번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뤄야 직성이 풀린다. 또 그 목적이 달성하기 어려울 수록 그 과정을 설계하면서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일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기대했던 것처럼 해산물 레스토랑이 있거나 번화한 관광지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Valladolid에 도착한 저녁 일곱시 반까지 결국 먹은건 매운 도리토스칩 한봉지와 콜라 반병이었지만 행복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열 너댓살쯤 된 동네 꼬맹이가 200페소에 오토바이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나서서 마침 배고프기도 하고 짐도 무겁고 날은 덥고 해서 비싼것 같지만 그냥 수락했다. 이 나이에 아들뻘 되는 소년 오토바이에 매달리다니.. 그러고보니 마지막으로 타본 오토바이는 스무살 때 였던것 같은데 이제와서 다시 타보니 기억하는 그때보다 훨씬 느리고 재미있었다. 오토바이가 무섭기엔 세상풍파를 너무 많이 겪었나보다. 

신기하게도 이곳엔 동양인들이 더 많이 방문하는 듯.
핑크 호수에서 약 십분쯤 오토바이타고 가면 멀지만 홍학도 볼 수 있다. 셀레스툰 포기하길 잘했어!
바가지가 민망한 것인지 소년가이드가 사진사를 자청했다. 덕분에 풀샷을 엄청 남겼네.

이렇게 우여곡절 많은 라스 콜로라다스를 뒤로 하고 여행의 종착지 플라야 델 카르멘과 칸쿤을 향해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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