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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냥이 Oct 19. 2023

앞이 보이지 않을 때는 그저 견디는 것

루소가 그랬듯이

무언가를 견딘다는 건 괴로운 일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아무것도 견뎌낼 필요가 없는 삶을 살고 싶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겪고 싶지 않은 어떤 것을 견뎌냈을 때 나는 더 단단해진다. 외로움, 삶의 공허함, 앞이 보이지 않는 불확실함, 남들은 앞서고 있는데 나만 뒤처진 듯한 조바심. 그런 것들을 오롯이 견뎌 냈을 때 인생 맷집이 한 겹 두터워졌음을 느낀다.




19살 실업계를 졸업할 무렵 운 좋게 중견 기업에 취직했다. 4년제 대학교를 졸업하고도 들어가기 어렵다는 회사였다. 뛸뜻이 기뻤지만 취직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내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한 갑갑함과 우울함이 몰려온 것이다. 그렇다고 실업계 출신이 회사를 나가서 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았다. 한국에서 고졸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이 대체 뭐가 있을까. 역시 이대로 살아야 하는 걸까 하는 좌절감과 우울함이 나를 좀먹기 시작했다. 눈에 띄게 표정이 어두워지자 회사 사람들이 하나둘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암울한 하루하루가 느릿느릿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다 불현듯 대학에 가자,라는 생각이 튀어 올랐다. 내 앞에 놓인 선택지가 적다면 그 선택지를 넓혀 보자고 단순하면서도 용감한 생각을 했다. 대학교 졸업장을 따면 지금보다는 인생의 선택지가 넓어지겠지. 그렇다면 제대로 넓혀보자고, 그러니까 대학 중에서도 소위 명문대라는 곳을 목표로 하자고 다짐을 했다. 내 다짐을 들은 주변 사람들은 그야말로 아연실색했다.


"아니 실업계에서 공부한 걸로 뭐, 어디를 가겠다고? 거기가 어딘지 알고나 하는 소리야?"

"혹시 어디 아프니?"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주변인의 충고는 오히려 내 결심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모든 이들이 하나같이 안될 거라 하니 되려 오기가 생겼다. 왜 안된다는 걸까. 혹시라도 되면 어쩌려고. 남들이 뭐라던 내 안의 가능성을 시험해 보자고 다짐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무식해서 용감했다,라고 밖에 설명되지 않는 무모함이었다.


주변의 비웃음을 뒤로한 채 회사를 퇴사하고 대학 입시를 준비했다. 어려웠던 가정 형편 탓에 입시 학원을 다닐 수 없었기에 회사를 다니며 모은 300만 원으로 수능을 준비했다. 본격적으로 수능을 준비하자니 왈칵 겁이 났다. 누군가는 수십 년을 준비했을 수능을 홀로 준비해야 한다는 두려움과 압박감의 무게가 그제야 실감이 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시 돌아갈 곳도 없었다. 회사는 이미 그만두었다. 1년도 못 채우고 회사를 뛰쳐나온 고졸인 나를 받아줄 곳은 아무 데도 없다. 이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나는 전 재산을 털어 산 문제집으로 교과 지식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밤을 새워 공부하는 날이 이어졌다. 아무도 깨지 않는 새벽에 일어날 때마다 도망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미쳤지, 내 주제에 무슨 대학이야 하는 좌절감이 나를 수시로 찾아왔다. 엄청난 공부량에 잠을 거의 자지 못하니 체력도 빠르게 바닥났다. 더구나 공부만 하기도 모자란 시간에 남은 통장 잔고를 세어가며 생활비를 걱정해야 할 때는 눈물이 날 만큼 서러웠다. 한 번도 원망해 본 적 없는 가난이 처음으로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내가 택한 길이었다. 누가 대학에 가라고 등 떠밀지 않았고 그 좋은 회사를 그만두라고 종용한 것도 아니었다. 오롯이 내가 선택한 길이니 당장 도망가고 싶은 충동을, 수시로 찾아오는 불안함을, 희박한 가능성에 도전하는 절박함을 그저 견뎌내자고 마음을 붙잡았다. 그렇게 1년이라는 암흑 같은 시간이 흘러갔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1년이 흐른 후.

나는 그토록 원하던 Y대학교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스무 살의 일 년은 인생에서 가장 외롭고도 치열했던 시간으로 남아있다. 홀로 견뎌낸 이 시간은 두고두고 내 삶에 흔적을 남겼다. 가끔씩 인생 어느 모퉁이에서 무언가를 견뎌야 할 때가 오면 나는 이때를 떠올린다. 그리고는 조용히 견딜 준비를 한다. 뭐가 됐건 어디 한번 와보라고. 두고 보면 알겠지만 나도 만만치는 않아. 스무 살 다진 견딤의 맷집이 아직도 나를 버티게 해주는 것이다.  


기나긴 인생의 터널에서 우리는 때때로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난관을 만나며 살아간다. 영혼을 갈아 넣으며 일한 회사에서 해고를 당하고, 일생일대의 도전을 감행했던 일에서 무참히 실패하며, 목숨과도 같은 가족을 먼저 떠나보내기도 한다.(나의 실제 이야기다) 이러한 어둠이 덮쳐 올 때 내가 택한 방법은 그저 견디는 것이었다. 루소가 그러했던 것처럼. 생애 가장 짙은 어둠이 찾아왔을 때 루소는 세상에 맞서기보다 견디는 방법을 택했다.


"사람들과 운명이 하는 대로 그냥 내버려 두자. 투덜대지 말고 고통을 견디는 법을 배우자. 모든 것이 결국에는 순리를 따르게 되어 있으니, 조만간 내 차례가 올 것이다."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46쪽


한밤중 반지하방에 물이 들어차 급히 잠잘 곳을 찾아야 했을 때, 대학 등록금을 내지 못해 몇 번이고 휴학을 해야 했을 때, 젊은 날 엄마를 먼저 떠나보내야 했을 때, 아빠마저 하루아침에 사라졌을 때 나는 숨죽이고 이 시간들을 견뎌냈다.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밖에 없었으므로. 감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설 용기 따윈 나지 않았으므로. 숨도 못 쉴 것 같은 어둠을 버티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졌으므로. 어둠 속에서 웅크리는 일이 내게만 힘든 일이 아니었는지 루소는 이렇게 적어두었다.


"나를 사방에서 압박해 오는 무수한 치욕과 도가 지나친 모욕 속에서, 사이사이 몰려드는 불안과 의혹이 나의 희망을 뒤흔들고 평온을 깨뜨린 것은 사실이다. … 이러한 의혹과 불신의 순간마나 나는 몇 번이고 나 자신을 절망 속에 던져버리려 했다. 만약 내가 그런 상태로 꼬박 한 달을 지냈더라면, 내 인생도 나 자신도 끝장나버렸을 것이다.『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46쪽


몇 번의 웅크림을 견뎌낸 루소는 이런 위기가 점점 짧게, 빨리 지나가게 됐음을 고백한다. 루소에게도 견딤의 맷집이 생긴 것이다. 나 또한 그러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견디고 나면 어느덧 터널의 끝이 눈앞에 보였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 이번에도 잘 버텼다, 스스로를 토닥일 여유가 생겼다. 조금 더 지나삶으로 걸어 들어갈 용기도 생겨났다. 이를 몇 번 반복하자 맷집이 생겼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견뎌내는 맷집. 돌이켜 보면 무언가를 견디고 있을 때 나는 가장 단단해졌던 것 같다. 어떤 목표를 성취할 때가 아니라 조용히 견뎌낼 때 나 자신이 훌쩍 자랐음을 느낀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빠져나가고 싶은 현실을 견뎌내는 누군가 있으리라. 남들은 잘만 달려가는데 왜 나 혼자 시궁창에 빠져있을까 자책하면서. 부디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때로는 무언가를 견뎌내는 것만으로 인간은 성장하기도 하니까. 누군가는 활발한 에너지로 타인과 경쟁하고 목표를 쟁취하며 성장하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감당하기 힘든 무언가를 견뎌내는 방법으로 성장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무언가를 소리 없이 견뎌내고 있는 사람은 자신만의 조용한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루소가 그러했던 것처럼. 나 또한 그랬던 것처럼. 그러니 오늘 하루도 무사히 견뎌낸 당신에게 말해주면 좋겠다. 오늘도 견뎌내느라 수고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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