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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냥이 Oct 19. 2023

내 방식대로 살아도 될까

존 스튜어트 밀이 건네준 위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인생의 방향을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 건강 문제로 어렵게 취직한 회사를 그만둔 후였다. 어느 날 뻐근한 흉통을 느끼고 찾은 병원에서 내려진 진단은 폐종양이었다. 다행히 종양은 제거할 수 있었지만 뒤이어 찾아온 후유증은 직장 생활을 감당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퍽 즐겁지만은 않은 회사 생활이었기에 미련 없이 회사를 그만두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쉬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지 천천히 고민해 보자는  느긋한 생각이었다.


이 생각이 조급함으로 변한 것은 회사를 그만두고 6개월이 지난 무렵이었다. 원하는 삶을 찾겠다던 호기로움은 점차 캄캄한 불안에 자리를 내주었다. 사기업에서의 커리어를 내려놓자고 결심했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흔들렸다. 어쩐지 경로를 이탈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살아도 되나. 내게 그럴 용기가 있나. 지금이라도 회사로 돌아가야 하나, 불안하고 막막했다.


불안과 걱정으로 방구석을 뒹굴던 어느 날. 딱히 할 일도 없어 책 한 권을 펼쳤다. 하릴없이 꺼내든 이 책에서 나는 뜻밖의 위로를 받았다. 책 제목을 들으면 꽤 의아하리라. 이 책은 그 유명한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이다. 사상과 의사 표현의 절대적 자유를 주창한, 딱딱하기 그지없는 이 책에서 나는 실로 더없는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 밀은 이 책에서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의 절대적 자유를 주장하며 근대 자유의 개념과 원칙을 확립했다. 준엄하게 자유의 가치를 설파하던 밀은 말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자유는 각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삶을 꾸려가는 자유라고. 그의 말을 옮겨 본다.


"자유 가운데서도 가장 소중하고 또 유일하게 자유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자유를 박탈하거나 자유를 얻기 위한 노력을 방해하지 않는 한, 각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자유이다... 자기 식대로 인생을 살아가다 일이 잘못돼 고통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설령 그런 결과를 맞이하더라도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게 되면 다른 사람이 좋다고 생각하는 길로 억지로 끌려가는 것보다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 인간은 바로 그런 존재이다. (자유론, 37~38쪽)"
"누구든지 웬만한 정도의 상식과 경험만 있다면,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 방식 자체가 최선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기 방식대로 사는 길이기 때문에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자유론, 129쪽)"


밀은 말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삶을 꾸리는 자유가 가장 중요하다고. 그것이 좋은 결과를 내기 때문이 아니다. 자기 방식대로 사는 것 그 자체로 좋은 일이기 때문에 좋은 결과라는 담보가 필요치 않다는 밀의 말은 내게 실낱같은 용기를 주었다. 저 유명한 밀이 그렇게 살아도 괜찮다는데. 나도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배포가 생긴 것이다.



유튜브를 보다가 자기가 뭘 원하는지 찾기 위해 여러 번 직업을 바꿨다는 한 여성의 영상을 보았다. 그녀는 이제 삶에 만족하냐는 진행자의 말에 아쉽지만 아직도 찾지 못한 것 같다고, 그러니 계속 찾아볼 거라는 답을 했다. 이 영상에서 내 시선을 붙든 것은 기꺼이 방황을 감수하겠다는 밝은 여성의 표정에 대조되는 차가운 댓글이었다. '그 나이에 아직도 정착 못하고 있다니' '저렇게 살다 간 돈도 못 모으고 나이 들어서 후회한다'와 같은 걱정과 힐난이 섞인 댓글이 달렸다.


원하는 일을 찾겠다고 직업을 바꾸는 위험은 누구보다 당사자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댓글의 걱정처럼 일관된 경력을 쌓지 못하고 이곳저곳 기웃대는 건 커리어에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자기가 원하는 방식대로 살기 위해 모험을 택한 여성이, 내게는 밀이 가장 중요하다 했던 자유를 찾은 사람으로 보였다. 그녀가 새삼 부러웠다. 용감하구나, 당신은. 나는 내가 택한 자유가 실패로 끝이 날까 봐서 남이 정해준 길을 끊임없이 기웃대고 있는데.


문득 송길영 부사장이 어느 인터뷰에서 남긴 대답이 생각이 났다. 당시 송길영 부사장이 받은 질문은 이것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택했다가 망하면 어떡하죠?" 잠시 고민하던 그는 대답했다. "망하면 어때요. 대신에 좋아하는 일을 하는 동안에는 행복했을 거잖아요. 행복하기 쉽지 않은 세상이에요. 그거면 괜찮지 않을까요?" 단순한 이 대답이 오랫동안 잊히질 않았다. 좋아하는 걸 택해서 행복했으면 충분하다는 송길영 부사장의 말. 원하는 삶을 찾기 위해 몇 번이고 직업을 바꾸겠다는 여성의 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삶을 꾸리는 자유는 그 자체로 중요하다는 밀의 말. 이 세 명의 말이 묘하게 겹쳐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내 삶의 방식을 스스로 선택하는 자유. 그 자유가 어떤 모양일지 궁금해서 나는 애초의 결심대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돈 대신 의미를 우선순위로 두자는 결심을. 그렇게 선택한 직장이 이곳 비영리 인문학 재단이었다. 선택을 내리고도 잘못된 결정이 아니었을까 수없이 걱정했다. 그리고 사실 지금도 여전히 흔들린다. 그래도 뭐 어떤가.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일을 하는 것만으로 행복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누구의 말마따나 행복하기 쉽지 않은 세상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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