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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Sep 16. 2023

어린 시절 우리는 느렸던가, 빨랐던가.

아이의 교육

나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한숨 쉴 일 없던 일상에 나는 밤마다 한숨을 쉬고 있어.


9살 첫째 아이. 그가 4시까지 학교 생활을 마치고, 5시까지 태권도를 하고, 6시까지 동네 한 바퀴 자전거 타고 온 아이가 씻고 밥을 먹고 책상 앞에 앉으면 8시 30분. 그때부터 나는 아이에게 '할 일은 하고 좀 더 놀던지, 쉬던지 하자.'라고 채근해. 그 말이 느슨했던지 아이는 대꾸를 안 해. 나는 세 번을 반복하다가 문득 이 말을 오늘도 반복하고 여러 번 말한 뒤에 아이가 움직인다는 생각이 떠올라. 어김없이. 그러면 갑자기 지긋지긋해져.


가슴이 답답해져서 숨을 크게 들이켜서 내뱉어. 그래도 가슴이 답답한 걸. 공기라고는 전혀 없다는 듯, 숨을 못 쉬고 있다는 듯 나는 더 깊이 들이마시고 뱉어. 눈치를 살피던 둘째가 먼저 책상에 앉고, 뒤이어 첫째도 얼른 앉아. 알아. 이 아이들은 눈치가 빠르다는 걸. 그럼에도 공부를 좀 더 늦추고 싶어 늦장을 부리고 하기 싫어 모른 척한다는 걸. 내가 한숨을 뱉기 시작하면 엄마의 인내력이 한계임을 깨닫고 더 이상 유보해 봤자 큰 화만 돌아온다는 걸 깨달았겠지.


나는 첫째 아이의 책가방에서 맞은 동그라미가 반 밖에 없는, 앞쪽만 동그라미가 있고 뒤쪽은  생각 따위는 하지 않고 채점할 수 있는 그런 시험지, 그냥 빈 허공을 크게 가로지른 화살이 있는 시험지를 발견해.


아이랑 나는 지난한 여름날, 아침저녁으로 수학을 풀었어.

아이는 학교에 다녀오면 매일 문제를 열심히 풀었다고.

내가 아이의 더딘 이해력에 한계를 드러냈을 때,

아이가 하기 싫은 티를 냈을 때,

매일 푸는 문제를 계속 이해 못 할 때,

나는 분노를 드러내도 아이는 포기하지 않았어.


오히려,

"내가 부족해서 미안해요. 이해를 잘 못해서 미안해요.

그래도 해볼게요."라고 말했어.

그 말에 나는 무너져서 울었어.

왜 나는 아이보다 인내력을 가지지 못하는 엄마가 되고 마는가,

천천히 익혀도 포기하지 않는 너의 자세가 멋지다고 선뜻 말하지 못하는 엄마가 되고 마는가.


나는 수개념이 없는 아이를 가르치며,

반복해도 열심히 해도 비슷한 문제를 자꾸 틀리는 아이와 씨름하며

매일 열심히 하면서도 자신 없어하는 아이를 마주하며

무엇을 마주했는 줄 알아?


바로 나야.

아, 나였다고.

잘 가르친다고 자부했던 나의 교육 킬에 흠집이 나는 기분이 들 때마다, 내 자식인데 자식도 잘 못 가르치는 교사라는 말을 들을까 혼자 열등감을 키워가. 나는 그런  자신이 싫었어.


나도 그 무렵 가늠이 안 되는 숫자들의 무더기에 깔려 질식해 죽을 것만 같았지. 부모님이 매일 밤 나를 붙들고 앉아 피곤에 질식해 죽을 것만 같은 얼굴로 구구단을 외게 하고 분수를 가르치셨지. 나는 부모님의 한계력을 테스트하듯 자꾸만 틀렸어. 문제에 집중할 수 없었지. 빨리 문제를 풀어 이 모든 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렸으니까.


수학은 번번이 나의 발목을 잡았어. 내신 성적은 꽤 나왔는데 수능 모의고사는 엉망이었으니까. 안타까운 마음에 수학선생님이 특별히 나만 남겨 개인지도를 해주실 정도로 나는 국어영역과 수학영역의 차이가 하늘과 땅인 아이 었으니까. 나는 아직도 수학이 두렵고 무서워. 결국 해내지 못한 문제거든.


그런데 첫째를 가르칠 때마다 자꾸 그때의 내가 보이고 얘도 나처럼 수학에 발목 잡히면 어쩌나 싶어 아찔해져. 아이가 주눅 든 모습을 보니까 더 속상하고, 더 일찍 노출시킬 걸 싶기도 하고. 나는 수학 교과서에 있는 문제 정도만 풀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상을 해내야 하는 건 욕심 내지 않기로 해놓고... 결국 휘둘리고 있어.

엊그제 학부모 모임에서 학교에서 기초학업능력이 부족한 아이들을 따로 지도하는 <희망사다리수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어. 그 프로그램이 무엇이냐고,  희망하면 누구나 들을 수 있는 거냐고 묻는 어느 엄마의 질문에 다른 엄마들이 까르르 웃으며 답했어. 그건 선생님한테 수학 못해서 끌려가는 거라고. 원한다고 다 하는 게 아니라 선생님이 부족하다고 판단하는 아이들만 하는 거라고.

어쩌면 우리 아들이 수학을 잘 했다면 나도 같이 웃었을지 몰라. 그러나 나는 '끌려가는 거'라는 표현에 돌을 맞은 것처럼 마음이 아팠어.


그리고 우리 아들이 했던 말이 떠올랐어.

"공부를 못한다는 건 귀찮은 일이에요. 못하면 선생님이 부르고, 엄마가 잔소리하고, 계속 해내야 하고. 그래서 결심했어요. 공부를 잘하기로. 엄마, 나 희망사다리 수업 할게요. 우리 선생님은 친절하게 잘 가르쳐주세요. 내가 수학을 못해서 부끄럽지만 그래도 할게요."


아이는 선생님이 따로 불러서 하는 그 수업이 부끄럽다는 걸, 다른 아이들에 비해 부족해서 부른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어. 그걸 두고 친구들이 놀릴까 봐 긴장하고 있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자발적으로 하겠다고 선언했다고. 더 이상 못해서 받을 수 있는 피로에서 탈출하기로 마음먹었다고. 아이의 자발적인 선택이었어.

나는 아이의 자발적 선택과 의지가 훼손받는 것 같아 심히 불편했어.

나에게는 없는 그 의지와 용기가 우리 아이에겐 있는데. 


나는 언제 어디서나 내가 가진 능력이상으로 평가받는 학생이었어. 선생님들에게서 호의와 기대를 받는 것은 일상이었지. 같은 반 친구들은 그것 때문에 나를 질투하기도 했고 따돌리기도 했어. 나는 그 기대와 호의가 피곤했으나  나의 못하는 면을 철저히 숨겼어.

나를 시기하는 동급생들에게 내가 받는 호의가 터무니없다는 걸 들키기 싫었거든.

그게 병이 되는 줄 모르고.


나는 아이를 가르치고 아이가 수학 때문에 좌절할 때마다 그런 나의 과거가 떠올라.

당신은 학습이 빠른 학생이었던가,

나는 배움의 속도가 느린 학습자였던가.


글쎄.

여전히 학습자로서 살아가는 우리는 이제 그게 무의미하다는 걸 알아.

포기하지 않고 매일 해내면 그게 우리의 능력치가 된다고 믿으니까.

아직도 영어를 공부하고, 국어를 공부하고 글을 쓰는 우리가 독보적으로 뛰어난 성과를 내는 건 아니지만 포기하지 않고 매일 하잖아. 그런 우리를 두고 열등생이니 뒤쳐졌느니 모범생이니 하는 말들을 안 하잖아? 학교를 졸업했으니. 이 나이에 수행해야 할 국민공통기본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니.


나는 그 누구보다 우리 아들의 자세가 빛난다는 걸 알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속상해.

꾸준히 열심히 하는데 응원해주지 못하는 내가.

그 누구도 아니고 나 때문에 아이가 수학에 대해 열등감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도 알아.

내가 칭찬보다 틀린 문제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고 있으니.


그런데도 나는 어쩔 수 없이 잘못된 되돌이표를 돌고 있어.

머리로는 바른 답을 아는데 왜 나의 태도는 그렇지 못할까.


아이를 키우면서 나를 두 번 만나는 기분이야.


거의 일상적인 대화를 하지 않고 안부만 주고받는 당신에게 나는 긴 하소연을 했어. 당신은 말을 아꼈지. 아이의 교육도 습관도 부모로서 함께 짊어져야 하는데 나에게만 다 맡겨서 미안하다고. 나는 그 몫을 엄마로서 홀로 부담하는 것에 대해 짓눌려 있었나 봐.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 당신의 사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듣는 순간 울었어. 아마 당신은 또 다른 부담을 가지고 있을 거야. 부모로서 아이의 교육에 대해 함께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당신도 나처럼 느렸던가.

성실했던가.

나는 그저 이번에 휴가 나오면 아이와 매일 책상에 앉아서 수학 푸는 시간을 가져달라고 당부해. 우리는 한 참 공백을 두고 통화를 하다가 우리끼리의 고민한 최선의 답을 내놓아.

어쨌든 우리가 아이들에게 모범이 되는 삶을 살자. 하라고 말만 하는, 행동과 말이 다른 어른은 되지 말자라고. 그것만으로도 나는 숙제를 떠안은 모범생이 돼. 느리지만 성실하고 적절히 타협해 나가며 나를 완성해 나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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