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다리딩 Sep 28. 2023

옆집 할아버지의 죽음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생각이 드는 밤이었다.

지나치게 적막했고, 어둠이 다른 날보다 짙었고, 마른하늘에 번개가 주기적으로 쳤으나 천동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요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야 안심이 될 것 같은 밤이었다.


밤이 늦었다. 어쩌다 보니 아이들을 재워야 할 시간이 지나치게 지났다. 이불을 깔고 누웠으나  아이들과 나는 쉬이 잠에 들지 못했다. 창밖에 마른번개가 자꾸만 쳐서 마음이 심란해졌다. 내 안에 불안을 끄집어내려고 작정한 밤 같았다.

 

쿵.


나는 하얀 커튼을 걷어 마당을 바라보았다. 짙은 어둠 속에 누군가 서있을 것만 같았다. 낯선 남자가.  미처 닫지 못한 나무 대문이 바람에 밀려 닫기는 소리였음을 확인하고 다시 커튼을 쳤다.


아이들이 겨우 눈을 감았을 때, 커튼 밖으로 붉은 불빛이 일렁거렸다. 익숙한 불빛이었다. 며칠 전 누군가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도 이런 불빛이 소리없이 아우성쳐댔었지. '아, 아무래도 커튼이 너무 얇아'라고 생각하며 마당으로 나갔다. 구급대원 여럿이 뒷길을 이리저리 달리고 있었다. 이웃집의 대문을 찾는 모양이었다.

시골집은 그렇다. 옛날 길의 대문은 잘 사용하지 않고 새 길 쪽으로 다시 대문을 만들기 때문에 한 집에도 들어가는 문이 여럿이다. 구 길과 새길이 갈래갈래 존재해서 시골집 주소만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 중 그 집을 찾기란 여간 곤란한 게 아니다. 도움이 될까 싶어 그중 한 명에게 말을 걸었다. 

"어느 집을 찾고 계세요?"

"아닙니다. 찾았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헤매고 계셨다. 두 대문 중 어느 쪽으로 들어가야 할지 고민하고 계신 것 같았다. 같은 집인데. 사이렌을 울리지 않고 구급차가 2대나 온 것은 아무래도 사건이 종료되었을 가능성이 컸고, 어르신들이 많은 곳에 자정이 넘은 시간이라 조심스러워 그랬을 가능성이 컸다.


이웃집 할머니의 소리도, 할어버지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른 밤하늘에 번개는 요란하게 쳤고, 도로 위에는 소리 없이 구급차의 붉은빛만 요란히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뒤 경찰차가 왔다. 가정집에서 구급차를 부르면 경찰차가 의무적으로 온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웃집 털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구나.

나는 마당 한가운데 서서 이웃집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방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어둠의 그림자처럼 우두커니 서있었다.


어떤 예감은 확신이 된다.

이상한 밤이었다. 심란한 밤이었다. 나는 털보 할아버지가 몇 번 다쳐서 구급차를 불러드린 적이 있었다. 그는 앙상 마른 사람이어서 늘 겨울의 감나무 가지를 떠올리게 하는 사람이었다. 새벽부터 막걸리를 마시는 사람이었다. 아침부터 줄담배를 피우는 사람이었다. 대화를 하다가도 심사가 어긋나면 버럭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었다. 쓰러진 오토바이를 일으켜 세울 힘이 없어서 나를 불러 부탁을 한 사람이었다. 우리가 시골로 왔을 때, 아이들이 인사를 잘한다고 담 너머로 휙 천 원짜리 두 장을 던져주던 사람이었다. 기초생활수급자라서 나라에서 돈을 받는데 그 돈이면 충분히 한 달 살 수 있으니 만족한다고, 막걸리만 있으면 된다고 말했던 사람이었다. 장남에게 차를 사줬는데 그 차를 타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아들을 잃었다며 아내에게 왜 차를 사줬냐고 가끔 소리 지르던 사람이었다. 우리가 시골집을 사고 몇 년 동안 괜한 텃세를 부리던 사람이었다. 10년을 채우기도 전에 마음을 열어 자기 감나무에 감을 따가라고 문을 열어주던 사람이었다. 내가 인사하면 피우던 담배를 등 뒤로 숨기고 구십도로 받아주던 사람이었다.


나는 내가 봤던 그의 모습을 하나씩 떠올랐고, 여명이 뜨도록 쉬이 잠들지 못했다. 마른번개도, 급차와 경찰차의 요란한 조명도 사라진 지 오래인데 내 마음에 불안은 계속 일렁이는 밤이었다.

다음 날도 이상했다.

마을이 모두 조용했다. 간밤의 심란함을 작당하고 숨기려는 듯 햇살은 환했고 평소 지저귀는 새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옆집 대문을 열어보았다. 계세요,라고 크게 불렀다. 아무도 없었다. 낮에도 가보았다. 할머니가 나오셨다. 나는 간밤에 구급차가 오는 것을 봤다며 무슨 일이 있으셨냐고 물었다. 내 예감이 틀리기 바라며. 엉뚱한 소설 하나 썼다고 웃길 바라며.

할머니는 우리 바깥양반이 돌아가셨어,라고 말하며 힝 얼굴을 찡그리다 폈다. 울려고 했다가 참는 얼굴이었다. 119에 신고를 했는데 심폐소생술 하라고 해서 친구를 불러하라고 했더니 임종 후 소견에 폐에 피가 나있었다고 했다. 부부싸움이 있었는지 조사해야 한다고 새벽까지 경찰서에 있다가 지금 영정 사진을 가지러 잠시 들렀다고 했다. 할머니말을 하다가 입술을 앙 다물었다.  울을 삼키는 중이신 듯했다.

  

나는 집으로 가, 부의금 봉투를 만들어 명복을 빈다며 할머니에게 전했다. 그녀는 다시 한번 울컥했다가 다시 마음을 다 잡았다. 할 일이 많이 있으니 정신 차려야 한다는 듯.


나에게는 검은색 옷이 없다.

나는 털보할아버지의 례식장에 가지 않을 것이다. 어떤 죽음, 사소하고 평범한 생명의 사그라짐에 대해 그래도 계속 생각할 것이다.


나는 마을에서 누군가 돌아가실 때마다 시골 마을이 싫어진다. 나와 큰 연관이 없는 사람임에도 마음이 홀려서.  또 하나의 적막이 늘어난 것에, 생명이 들고 난 자리가 아무런 표식이 남지 않아 삶과 죽음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에 대해, 가끔 감당할 수 없는 허무를 느낀다. 오늘도 시골 마을의 인구가 한 명 줄었다. 내가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우리를 반겨주셨던 할머니 할아버지들 중 이제 남아 있는 분들이 다섯 손가락이 채 안 된다.  우리 집 돌담 밑에 앉아 여름밤 부채질 하며 속닥거리던 그들의 이야기 소리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그것이 나의 삶도 그럴 때가 오리라는 것을 뼈저리게 알려준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영원한 산타클로스에게 선물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