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산 성메리놀 병원에서 태어났다. 눈이 드문 부산의 겨울, 함박눈이 내리는 날 태어났다고 한다. 계단 많은 보수동 언덕에서 살아서 아버지는 똥기저귀를 빨러 동네 우물터로 향하는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에 이골이 났었다고 한다.
나는 시골에서 살다가 수도권에서 일하다가 부산으로 다시 왔다. 남편의 회사가 부산에 있어서였고, 아이를 낳아 키우기 위해 남편은 항해사의 업 대신 사무직으로 이직해서였다. 나는 휴직을 하고 첫째를 키우면서 둘째를 부산에서 낳았다. 부산에서 2년을 살고 남편은 다시 승선을 했다. 나는 굳이 부산에 머무를 이유가 없어졌으므로 경기도로 올라가 복직을 했다.
부산은 우리에게 특별한 도시다. 전세금 1억 7천만 원으로 얻은 아파트는 40년 된 낡은 곳이라 방바닥이 무너지거나 갈라졌다. 아이가 길 때마다 삐그덕 삐그덕 시멘트 바닥이 어긋나는 소리가 났고 그때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아이가 좀 더 자라면 좋은 아파트에서 살아야 할 텐데라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 남편과 나의 마음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남편과 나는 갓난쟁이 둘을 키우면서 허덕였고, 많이 웃었으나 늘 잠이 모자랐다.
아이가 커갈수록 형편은 나아졌고, 부모가 할 수 있는 수고도 덜어져 갔다. 아이들에게 향하는 나의 마음은 커져가는데 꼬맹이 아이들은 그 마음을 외면했다가 거부했다가 탓했다가 애걸했다가 마음대로 가지고 놀기만 했다. 심하게 엄마로서의 나를 외면할 때, 그래서 갈등이 커질 때 남편은 놀리듯 나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거 봐, 남편밖에 없지? 나밖에 없다니까. 우리 둘이 잘 놀아야지 노후에 당신이 외롭지 않다니까. 쟤네도 친구들 좋아 우리랑 안 놀아줄 날이 머지않았어. 그러니까 나랑 놀아주라."
결혼 10년 차.
나의 가장 내밀한 친구인 남편.
남편이라는 타인이게 편안하게 나를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어떤 모습이라도 그가 나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사람이라는 신뢰가 있어서일 것이다. 그래, 우리 같이 놀자. 아이들만 챙기지 말고 둘이서 시간을 보내려고 애도 써보자.
그리하여 그와 부산으로 아이들은 친정에 맡기고, 여행을 떠났다. 서로에게 몰입하기 위해서.
부산역에 내리자마자 그는 나를 데리고 돼지국밥집으로 갔다. 손님이 많아서 불친절했으며 미지근하게 식은 국밥에서 누린내가 났고, 더운 여름이라 못 참을 정도로 역한 뭔가가 있었다. 기분이 좋지 않아, 왜 돼지 국밥이야라고 따지듯 물었다. 그는 놀란 듯 대답했다, 자기 돼지 국밥 좋아하잖아. 나는 더 놀라 말했다, 당신이 좋아하는 거 아니야? 그는 아니,라고 답했다. 10년 동안 부산 오면 돼지 국밥을 종종 먹었는데 정작 당사자는 좋아하지 않고 상대 때문에 참고 먹어준 것이었다니. 그걸 오늘에서야 알았다니. 우리는 헛웃음을 치며 음식을 남기고 나와 손잡고 걸었다. 무척 후덥지근한 여름이었는데 손잡는 것은 싫지 않은 그런 저녁이었다.
우리가 좋아하는 뮤지컬도 보고 택시를 타지 않고 부러 걸어 숙소를 찾아갔다. 그러다 가는 길에 술집골목을 지나게 되어 술도 한 잔 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 그러니까 부산에서 우리가 얼마나 열심이었는지, 그땐 힘들었으나 지금은 다 좋게만 생각된다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 둘이서 별다른 설명 없이 턱 던지면 탁하고 받아내는 그런 이야기를.
다음날,
우리는 조식을 먹고 커피를 마시기 위해 카페로 갔다. 나는 마감 기한을 앞둔 원고를 탈고하고 있었는데 남편에게 읽어보라고 건넸다. 내가 커피를 몇 모금 머시는 동안 그는 열심히 읽었다. 그러다 울었다. 그가 울었다. 내가 쓴 글을 보고. 나는 신이 나서 어디서 감동받았냐고, 그렇게 잘 썼냐고 물어댔다. 그는 카페 로코가 박혀있는 정사각형의 누런 티슈를 눈에다 대고 한참을 있었다. 어깨를 들썩이며.
그렇다. 그가 알지 못하는, 나는 말하지 않았던 삶의 부분이 글로 그에게 넘어갔을 때, 그는 공감하기도 했을 것이고 또 내가 모른 어떤 생각을 간직하기도 했을 것이다. 나는 그가 나의 글을 보고 울었다는 사실에 더 마음이 진득해져서 낮술을 마시자고 권했다. 바닷가 보면서 피자를 먹으며.
그리하여 광안리로 가서 아직 오픈도 안 한 피자집 앞에 서서 메뉴를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문이 열리자마자 들어가서 피자를 시키고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2잔을 만지자마자 머리가 아팠다. 이래서 낮술은 에미애비도 못 알아보는 건가 보다며 술을 깨야 한다고 해운대 카페로 갔다. 우리가 아들 둘 유모차 끌고 아기띠 하고 콧바람 쐬던 곳으로. 에스프레소 한 잔 들큰히 들이키고 또 맥주를 한 잔 마셨다. 술이 술술 들어간 것은, 우리가 지금 챙겨야 할 것은 자신밖에 없어서였기에.
그는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오마카세가 유행한다며 우리도 먹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열심히 검색해서 평이 제일 좋은 오마카세 일식집으로 갔다. 밖에 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사케는 다디달고, 우리 둘은 소개팅하는 혹은 사귄 지 얼마 안 되어 기념일이라고 하는 커플들 사이에 앉았다. 다른 연인들은 말도 많이 하고, 서로 설레고 때론 밀땅하며 회 말고도 감정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는데 우리는 연신 맛있다면서 음식에 몰두했다. 값비쌌지만 아이들이랑 못 오는 곳에 둘이 와서 음식 자체에 몰두했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내 친김에 '스즈메의 문단속'이라는 일본 애니메이션도 봤다. 일본에서 이게 난리 날 정도로 인기라는데, 하면서. 우리는 손을 잡고 어둔 영화관에서 한 곳, 그러니까 화면을 응시하는 대신, 각자 먹을 팝콘을 하나씩 들고 커피를 쪽쪽 빨아 마시면서 화면을 향해 같이 시선을 두었다. 우리는 지금 여기서 손잡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든 더 진하게 서로를 탐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므로 몸 달아하지 않았다.
비 오는 밤거리를 걸어 숙소로 돌아가다 그의 얼굴을 두 손으로 꽉 잡고 뽀뽀를 했다. 양치를 하지 않았으니 키스는 싫었다. 그는 힘주어 나를 안았다. 꽉. 오랜만에 느껴보는 육체적 옥죔이 편안했다.
"그래, 우리 잘 놀자. 사이좋게 잘 지내자. 둘이서 잘 놀아야지 부부사이가 좋지. 둘이서만 놀아보니 진짜 재밌네. 이 재밌는 걸 유보하고 살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