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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살림

아이를 재우려고 방에 들어가 있는데, 퇴근이 늦은 남편이 부엌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요즘들어 부쩍 남편이 부엌을 들락거린다. 다이어트를 하면서 직접 요리해 먹는 일이 늘었기 때문이다. 또띠아롤이나 두부면요리 같은 것들이다. 곧이어 수전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 달그락 소리가 들렸다.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필요한 도구가 개수대에 있어서 씻다가, 혹은 재료를 익히는 시간 동안에 설거지를 하는 게다. 나는 분주하게 저녁 해 먹고, 아이랑 놀아주고, 목욕시켜서 재우기에 바빠서 저녁 설거지 거리는 방치하는 일이 잦았는데, 일어나보면 개수대가 깨끗하게 비워진 날이 늘었다. <아파트 테라피>저자의 말처럼, 주방의 불이 켜져야 집안이 관리가 된다는 말을 실감했다.

한 날은 남편이 계란 지단을 부치는데 고개를 두리번거리길래 서랍 속의 뒤지개를 꺼내서 내밀었다. 남편은 뒤집을 타이밍이 지난 지단을 들고 “아, 이거 한 번 때문에 쓰기 싫은데.”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결국  손목 스냅 한 번에 지단을 공중에 띄우고 안착시키면서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 그 모습을 보며 덩달아 웃음이 났다.

예전에도 종종 요리를 한 적은 있었지만 뒤처리는 전혀 생각지 않던 그였다. 양념을 신나게 튀기고, 각종 도구들을 벌려 놓고, 개수대에 그릇을 잔뜩 쌓아놓았는데 이 무슨 변화일까.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내어 요리부터 치우는 일까지, 일련의 과정을 여러번 체험한 그가 살림의 고단함을 알게 된 것일까.  돌아서면 다시 해야 하는 일이라, 퇴근없는 일이라, 혼자 하는 일이라 외롭고 힘들었는데. 같이 사는 누군가가 살림의 지난함에 응답했다.


뒤지개 하나로 마음이 통했던 그날 아침의 여운이 오래 남았다. 가사의 노고를 줄이기 위한 행위가 눈에  때ㅡ'설거지거리에  담궈 놓기'처럼ㅡ, 집안일이 모두가 엮여있는 필수불가결한 행위로 여겨질 , 살림의 가치가 빛을 발하는 구나, 싶다. 안과 밖으로 나눠진 사람이 아니라 서로가 집안에서 친근하고, 끈끈하게 지낼  있는 것이로구나, 싶다.


장소에 친밀하게 거주하려면 필수적인 일의 반복적 수행이 필요하다
- 리 호이나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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