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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오릉 커피씨 Jun 14. 2019

2. 왜 필터커피인가

하루 한 잔 커피이야기

낯선 커피 일을 시작하면서, 정말 운 좋게도 그 커피라는 것을 작은 브루잉 전문카페에서 시작했습니다. Brewing Cafe, 그러니까 에스프레소 머신 기반 음료가 아닌, 오로지 필터커피 Filter coffee 기반의 커피메뉴만을 판매하는 곳입니다.


이곳에는 보통 카페에 가면 있기 마련인 에스프레소 머신이 없습니다. 대신 갖가지 서로 다른 모양과 재질을 가진 드리퍼와 서버, 그리고 드립용 주전자들이 있는 카페입니다. 이제 생각해보니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작은' '브루잉 카페' - 그러다보니 주문을 받고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와 손님의 물리적 거리는 매우 가까울수 밖에 없었고, 그 결과 커피를 만들며 자연스레 대화가 오갔고, 굳이 주의를 환기시키지 않아도 커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손님이 생생하고도 선명하게 경험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에스프레소와 필터커피의 차이가 무엇인지도 명확하지 않았고, 또한 필터커피보다는 핸드드립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했던 초기 -  커피 한 잔 만드는데 이런 저런 수고로움과 시간이 필요한 필터커피가 답답하기도 했고, 에스프레소 기반 커피 음료와는 다른 뉘앙스를 가진, 이 커피음료에 좀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에스프레소는 기본적으로 '압력'에 의한 추출입니다. 그에 비해 필터커피는 가해지는 힘이라고 해봐야 '중력'이 전부인 추출입니다. 아, 추출시 주로 사용하는 종이필터 또한 에스프레소와 필터커피를 구분 짓는 잣대가 될 수 있겠군요. 


태생 또한 에스프레소와 필터커피는 매우 다릅니다. 에스프레소는 그 이름처럼 빨리 뽑아 빨리 마시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필터커피는 처음부터 끝까지 온도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커피 향미의 다양성을 여유있게 즐기는 커피입니다. 그러기에 필터커피는 과정을 즐겨야 하는 커피입니다. 커피 분쇄에서 시작해, 물을 데우고, 드리퍼를 선택하고, 천천히 물을 붓는 과정을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고작 한 잔의 커피가 전부나 그 보잘 것 없는 결과물을 얻기 위해 이 거창한 과정을 기꺼이 인내하고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참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브루잉 카페'에서 커피 일을 시작했다니 말입니다.필터커피 - 그 과정을 통해 더 많은 생각을 하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필터커피를 만들기 위해 커피를 고르고 만드는 과정을 통해 커피가 가진 향미에 좀 더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맛과 추출법에 집중하게 되었고, 그것은 마치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 설렘을 주었습니다. 맛있는 필터커피를 만든다는 건 음원사이트에서나 골라 듣던 음악을 턴테이블 위 LP로 듣게 된 것과도 같았고, 물을 붓는 행위 하나에 물리와 지구과학, 화학과 수학 공식이 필요하기도 한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왜 필터커피인가? 네, 그건 커피를 만들고 마시는 과정을 통해 온전히, 커피의 향미에 집중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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