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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수 Sep 09. 2018

팔자 좋은 친구는

만나기 싫은 요즘.

 핑계를 대자면 한 달째 알바를 하고 있어서 바빴다고 말하고 싶지만.

 예전과 달리 일을 하면서도 마냥 좋지 만은 않은. 뭔가가 더 채워져야 할 것 같은 부족한 허기 같은 걸 느끼고 있었다. 잠깐씩의 일, 책, 가족, 건강,.. 그 이외의 것들에 관심도 없고 더 이상의 욕심도 없다며 마냥 소박한 사람처럼 말해왔던 모든 순간들에 대해 고백하자면. 그건 거짓이었다.


 집값.

 몰랐던 집값의 오름세.

 그러니까 삼 주 전쯤 일 끝내고 퇴근길에 저녁으로 먹을 반찬거리들을 사서 음악을 들으며 신나게 집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던 찰나 내 손을 덥석 잡는 누군가가 있었다. 동네에 아는 이도 많지 않고, 더군다나 내 손을 덥석 잡을만한 가까운 이는 없는지라 순간 누군가 나를 잘못 보고 손을 잡았구나 생각하며 시선을 돌리는 순간. 

부동산 사장님이 나를 "순둥이 사모님~" 하며 활짝 웃으며 쳐다보고 있었다.

 전셋집 구할 때 하도 친절하셨던지라 나도 기억은 하고 있었지만 우리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닌데. 워낙 성격이 활달하신지라 오다가다 여러 사모님들과 인사를 나누며 지내시는 분이었다.

 어디 좋은 거래 하러 가세요? 했더니 나온 집 보러 간다며 즐거운 얼굴이셨다. 집값은 좀 어떠냐며 내년 다가오는 만기를 걱정하는데 사장님이 툭 내뱉은 가격은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엄청난 가격. 

 그럴 리가요.. 떨어지고 있지 않았나요. 요즘.

 "무슨 말이야. 요즘 오르잖아. 그러니까 그때 내가 사라고 할 때 사지 그랬어. 돈이 없는 것도 아니었으면서~" 하시는데 나는 좀 당황했다. 그때 나한테 집을 사라고 하지도 않으셨었고. 집값이 떨어질 것 같다며 전세로 가는 게 맞는 거라고 말씀하셨는데다가. 나는 그때도 돈은 없었다.

 헤어져 집에 돌아오면서 씁쓸해하면서도 에이 사장님 괜히 그러시는 거지 싶어 뭔 가격을 그렇게 높게 부르시나.. 하며 경계의 태세로 전환을 했었는데.

 아니었다. 실제로 그날들을 기점으로 무섭고 가파르게 집값은 올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며칠 뒤 가격을 계속 체크하던 나는 팔자 좋게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온 신랑에게 "이 집이 지금 가격이 올라 얼마래.."하며 뒤통수를 후려쳤고. 그럴 리가. 하며 가격을 검색하던 신랑은 얼굴이 더욱 붉으락푸르락 해지더니 심지어 허공에 욕을 하기 시작했다. 괜한 얘길 해서 평화롭던 신랑의 가슴에 돌을 던졌나 후회스럽게도 했지만 알 건 알아야지 싶어 조심스럽게 심정을 물어보니.

 스스로도 어렵게 며칠 맘을 다 잡고 내게 위로하듯 얘기하길. 어찌 됐거나 지금 이 집을 살 수 있는 여력도 없고. 한 3년 안에는 무조건 정리가 될 것이니 기다려보자는 무책임한 말만 돌아왔다. 대한민국은 곧 망할 거야..라며 희망인지 절망인지 알 수 없는 중얼거림과 함께. 그게 할 말이냐. 대한민국한테. 그리고 대한민국 사는 마누라한테.



 나의 억울한 심정은 마치 이런 거였다. 전혀 논리적이지는 않지만.


 로또를 사서 당첨이 됐어. 몇억은 받을 수 있는 거지. 근데 그걸 잃어버렸어. 그 용지가 없어져서 나는 열심히 찾고 있는데 그 로또 종이 쪼가리가 영영 사라져 나는 영원히 다시 당첨조차 될 수 없으리란 슬프고도 억울한 절망감에 누구에게라도 원망을 쏟아붓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는. 억울하긴 한데 뭐가 억울한지 잘 모르겠는. 어찌됐든 답답한 찐한 우울감.

 이놈의 집값이 훌쩍 오르기 시작한 3년전쯤에라도 집을 살 의향이 있었는데 누군가 뜯어말렸던가 생각해보면 아무도 말린 사람이 없고. 나 스스로 집을 살 생각이 있었던가. 하면 절대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그 당시 이 집을 소유한 집주인에게 오히려 묘한 연민의 감정마저 있었더랬다. 사장님, 집값이 이게 정상이라 생각하시나요. 팔지 않고 뭘 하고 계세요. 하며.

 집값이 15프로 정도 올라 있던 몇 달 전에 그제라도 집을 사야 하는 거 아니냐며 신랑을 설득했을 때도 본인이 이 나이에 빚을 지며 집을 사는 게 말이 되냐며 펄쩍 뛰던 그때 그놈을 다시 만난다 한들. 사실 눈알이 튀어나오게 뒤통수를 치고 싶은 생각이야 조금 들기는 하지만 나 역시 알았다며 슬그머니 맘을 내려놓지 않았느냔 말이다.


 다행인지 어쩐 건지 내 주위엔 '팔자 좋은 친구'가 그리 많지 않아 많이 배 아플 일은 없다는 점이다. 

 아파트값이 떨어질까 맘 졸이고 있을 이 거대한 아파트 도시의 소유자들 아무개 들을 대상으로 부러워하기도 애매하고. 부유한 부모 만나 빚 한 푼 없이 젊은 나이에 거액의 아파트를 턱턱 소유하게 된 사람들을 새삼 미워하기도 그렇고. 멀쩡한 단지 내에 땅꺼짐 현상이라도 생겨 집값이 똑 떨어지길 빌어보자니 천벌받을까 싶어 무섭고. 그렇다면 도대체 이 집값을 어찌 잡아야 하나 한숨이 푹푹 나오는 와중에. 그래봤자 콘크리트 덩어리인 이 아파트 한 채가 10억도 가고 20억도 간다는 게 도저히 이해를 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다는 건 여전해서. 내가 과연 15억 복권이 당첨되더라도 15억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을까 없을까를 또 새벽까지 고민을 하다가. 이건 또 아닌 거 같아 하며 슬그머니 그 돈(무슨돈?)으로 다른 궁리를 해본다. 

 1억짜리 아파트였는데 다음날 누군가 1억 오천에 사면 그 아파트는 1억 오천 짜리 아파트가 되어 있고. 그 다음날 또 누군가가 2억에 사들이면 2억짜리 아파트가 된다. 내가 사는 이 아파트가 2억이 됐다 한들 팔 수도 없고. 판다 한들 그 돈으로 다른 집을 사려면 다른 집도 올라 있고. 뭐. 그렇다는 얘기다.

 근데 대출 없이 집을 턱턱 사들이며 이놈의 집값을 계속 오르게 하는 현금부자들은 왜 이리 많다는 건지. 내 주위에 큰 부자가 없어서인지 나는 도대체가 실감이 나질 않는다.


사실 그동안 나는 스스로 꽤 운이 좋은 사람이구나 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이번 일을 계기로 내 운이 이 정도였단 말인가 하며 새삼 세상을 원망하기도 좀 쑥스럽다. 이런저런 삶의 굴직한 사건들 앞에 운 좋은 쪽으로 크게 억울할 일 없이 순조로운 인생을 살아왔다.


 내 생활이 크게 바뀌었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도 않다. 나는 여전히 인터넷 마트에 들러 커피도 사고, 값 오른 야채도 사들이며. 요즘 유행하는 반조리, 완전 조리 식품도 큰 손처럼 턱턱 사들이고 있다. 우울하다며 서점에 가서 책도 여러 권씩 담아 사 왔고 최근엔 비싼 목욕 수건을 10장씩 구매하기도 했다. 



 나는 쭉 집이 없는 채로 살아왔기 때문에 2008년 집값이 크게 폭락할 때도 아무 절망감 없이 지나쳐 왔었다. 어차피 집이 없고, 집 살 돈도 없고 해서 그저 그런 사태가 일어났나 보다.. 하며 무심히 지나왔는데. 그 당시 주가도 폭락하고 집값도 엄청나게 떨어지고 하면서  당시의 당사자가 겪었을 엄청난 허무감과 절망이 얼마나 큰 것이었을까 새삼 다시 끄집어내 곱씹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번 사태가 어찌 될지 그저 기다리며 지나가길 바라본다.


 아파트를 소유하신 불특정 다수의 여러분들을 생각하며 굳이 집값 떨어지라며 굿을 벌이는 일이나 저주를 퍼붓는 일을 하진 않겠지만. 

 소심하게. 바라던 복권의 금액을 조금 더 높여본다. 

 달리 지금의 내 능력에 다른 방법이 없다.

 이놈의 알바는 한 60년은 더 해야 집 한채 살수 있겠지 싶다.

 그나마 알바도 끝나가는데. 

 다음 일이라도 좀 잡히면 좀 들 절망스러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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