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 빌린 적 없는 책인데 이렇게 떠서요."
"그럴 리가 없어요. 대출이 됐으니까 여기 떠있는 거고요."
"제가 그날 두권만 빌려서 나온 걸 확실히 기억해서요. 이런 경우가 처음인가요?"
"일단 이게 도서관에 있는지 확인해드릴게요."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가는 길 무심코 도서관에 접속해서 책 목록을 확인하는데 내가 모르는 책들이 대출도서 목록에 자리하고 있었다. 데스크를 찾아가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며 이 사실을 알렸다. 사서는 약간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결코 그럴 리가 없다고 했지만 예약도서가 아닌 이상에야 내가 무인대출기를 두고 데스크에서 책을 빌리지 않는다는 걸 고지하자 뭔가 잘못됐다 싶은지 어디론가 전화를 돌렸다. 시계를 보며 짧고도 긴 시간 기다린 결과 문제 해결은 미뤄졌다. 책 빌려간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반납해야 그 책들이 나의 대출목록에서 사라질 것이다.
"일단 누가 빌려갔는지 알 수 없어서 기다려야 할 것 같아요. 그동안 대출하시는 건 문제없게 메모 남겨두고 관리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아, 괜찮아요. 당장은 예약도서 말고는 다른 가족 아이디 써도 돼서요."
처음과 달리 당황함이 묻어나는 사과의 말에 괜찮다고 웃어 보이며 도서관을 나섰다. 나서면서 생각하니 예상 가능한 상황이 떠올랐다. 누군가가 예약한 책이라 무인 반납이 안 되어 데스크에 반납했고 그 반납창이 열린 상태에서 누군가 빌리겠다 가져온 책들을 찍어버린 모양이다. 도서관 측의 명백한 실수지만 애초에 나는 따지러 온 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러 온 것뿐이었다. 처음엔 그럴 리 없다고 했던 그분도 막상 확인하다 보니 했을 법한 실수가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 얼마나 철렁했을까. 처음부터 좀 부드럽게 응대할 걸 후회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그다지 화를 표출하는 성격은 아니라 정말 드물게 화가 난 상태가 보이면 내 주변인들은 공감보다 당황스러움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감정의 흐름이든 화낼 일이냐 화낼 일이 아니냐는 사람마다 너무도 다른 것이니 내 마음의 상태를 단번에 알아채라고 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다. 하물며 깻잎 몇 장으로도 논란이 이는 세상에 어찌 서로 같은 생각이라 장담할까? 왜 저러나 싶은 사람도 그 사람 만의 이유와 사정이 있으리라 생각해보고 그러려니 하는 마음을 준비한다.
미국의 한 도시를 경유하던 중 벨트까지 한 마당에 비행기에 문제가 생겨 내렸던 적이 있다. 깜깜한 새벽, 온 식구가 공항 바닥에서 대기하는데 우왕좌왕하는 항공사 직원의 안내에 사람들은 더 예민해져 갔다. 심지어 본인이 속한 회사(항공사)가 원래 그렇다는 식의 자기 얼굴에 침 뱉기인 직원의 발언까지 덧붙여져 책임감 있는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리고 항공사에서 급하게 잡은 근처 호텔 로비엔 듣지도 보지도 못한 한국말 다툼이 일어났다. 항공기가 고장 나 어쩔 수 없는 상황, 직원들의 매끄럽지 못한 안내와 일부 욕설 전문가들의 대환장 조합이었다.
어설픈 1박으로 피로함에 지쳐 돌아온 한국에서 다시 프로페셔널한 인천공항 직원을 마주했다. 그의 사과를 듣는 내 마음은 어쩐지 무거워졌다. 그는 비행기를 고장 내지도 않았고 결항에 따른 고객들의 대기를 엉망으로 안내하지도 않았지만 그저 해외에서 벌어진 상황에 대해 회사를 대표해 사과했기 때문이다. 나는 부디 그 일로 그 사람의 하루가 엉망이 아니었기를 바랐다.
모두가 나름의 사정이 있다고 해서 그 사정이 다 옳지도 않고 내가 이해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나이가 들수록 살짝 더 너그러워진다. 어디 인생 쉽게 사는 사람이 있겠나 싶어 때로 누군가의 사정을 나라도 친절하게 봐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폰 놓고 주차장까지 갔다가 다시 쿵쾅거리며 집에 올라가고 있는 나처럼 사람들은 누구나 깜빡깜빡 실수하니까. 매번 주차장에 헛걸음했다가 돌아와 휴대폰을 찾는 내 뒤통수에 엄마의 외침이 꽂힌다.
"아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