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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May 31. 2024

비밀리에 받아쓰기

공지 없이 보는 시험

    "오잉? 단원평가를 봤다고?"

    "네! 수학 4단원!"

    "갑자기?"

    "이번 주에 시험 있다고 그랬잖아요."

    "그게 오늘이었어? 시험은 잘 봤어?"

    "네! 100점!"

    "오, 잘했네!"


    복복이는 시험을 치르고 왔다며 자랑을 했다. 알림장에 없던 단원평가가 있었다니. 복복이 말에 나는 솔직히 조금 당황스러웠다. 마침 지난주에는 갑자기 받아쓰기 시험을 보고 왔기 때문이다.


    요즘 받아쓰기는 좀 희한하다. 10개의 문제가 정해져 있고 있고 그걸 그대로 외워서 보는 시험이다. 임의로 보는 게 아니라 암기과목 느낌이다. 몇십 개 문제 중 10개도 아니고 나눠줬던 받아쓰기표에 나오는 10개 그대로 보는 시험. 맞춤법을 외우는 셈인데, 사실 개인적으로는 별로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굳이 장점을 찾는다면, 띄어쓰기와 의성어 의태어를 함께 통으로 익히는 점이 좋다고 해야 할지.


    방법적인 건 내가 교육자의 입장이 아니니 더 언급하기 애매하다. 하지만 학부모 중 한 사람으로서 느끼는 불만은 솔직히 명확하다. 시험을 충분히 예고하지 않고 치르는 것이 맞느냐 하는 것이다. 작년만 해도 시험은 알림장에 공지가 되곤 했는데 이번엔 별도의 공지 없이 시험을 보고 온 게 벌써 여러 번이다.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걸리는 속도는 아이마다 다르다. 공지하지 않고 학교에서의 학습만으로 보는 시험. 한편으론 학교 수업 내에서 다 책임진다는 말처럼 들리니 듣기 좋을 수도 있지만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이 있다. 결국 어떤 아이는 개인적으로라도 노력해 볼 기회를 박탈당하는 거 아닌가.


    사실 아이들의 시험 후기를 들어보면 학교에서 보는 단원평가란 난도가 높은 시험이 아니다. 고로, 다수의 아이들이 좋은 점수를 받고 있을 것이다. 2학년 단원평가가 어렵겠냐만은 학교에서의 경험은 지식의 습득 외에도 다른 중요한 의미가 있다. 나는 내가 노력해서 열심히 준비해서 이번 시험을 다 맞았다고 뿌듯해하는 성취의 경험은 너무도 중요하다. 과하게 시키지 말라는 것이 왜 시험공부도 하지 말라는 게 됐는지 모르겠다. 과연 학교에서 선생님의 설명과 함께 받아쓰기를 연습한 것만으로 모든 아이들이 충분히 학습 시간과 기회를 얻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단원평가 잠깐 나눠주고 보라고 하세요."

    "그럼 애들이 봐?"

    "당연히 점수만 보고 안 보죠."


    아이들의 단원평가는 채점 후에도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 아이에게 물으니 돌려주고 점수랑 틀린 거 보라고 한 뒤 걷어가신다고 한다. 그럼 그중엔 뭘 틀렸는지 모르고 그러든지 말든지 하고 있을 아이들이 꽤 있지 않을까? 이 점이 요즘 아이들을 학교를 보내며 심란한 이유다. 틀린 문제를 다시 보는 건 공부의 기본이 아니던가. 내가 보낸 두 초등학교 모두 단원평가는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그 공백을 메꾸기 위해 엄마 선생님과 학원 선생님이 등장하고, 누구든 이런 공백을 돌보는 사람이 없다면 그 아이는 언젠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을까? 사실 동동이가 다른 학교에서 저학년이었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요새 수학시험 없어?"

    "선생님이 집에서 공부 너무 시킬까 봐 시험날은 따로 알림장에 안 쓰신대요."

    "엥?"


    선생님의 개인적 경험과 생각이 있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아이에게 더 묻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내가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생각은 얘기해 주었다.


    "쉬워서 공부 안 해도 돼요."

    "시험이든 발표든 준비하고 공부하는 건 꼭 필요한 거야. 아무리 쉬워도 문제집 끝에 단원평가 하나는 풀어보고 가."


    초등학교 저학년 수학은 솔직히 나의 초등시절보다 쉬워진 것 같다. 심지어 아이들은 학교 단원평가가 집에 하나 구비한 문제집 보다 더 쉽다고 말한다. 문제집 안 풀고 가도 100점은 어려운 게 아닌 모양이다. 할 놈은 한다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공부라는 탤런트가 있는 아이는 알아서 잘한다는 의미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에게 자신이 있든 없든 시험을 대비해서 공부하라고 말하는 중이다.


    모든 학부모가 나와 같은 생각은 아니겠지만, 아이가 정말 점수에 연연하지 않고 초등학교를 마치는 것 말고도 노력과 성실과 인내의 가치를 배우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런 6년을 보내지 않으면 중학교에 가서 섬에 떨어진 듯한 생경함이 힘겨울지도 모른다. 평가가 시작되고 초등학교 때와 같은 느슨함이 사라져 갈 때 크게 당황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아가 어른들의 세계야말로 노력과 성실과 인내를 요하지 않나. 게다가 운까지 동반되어야 하는 난이도 극상의 시간이 오고 있다 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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