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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Jan 12. 2023

몸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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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들은 강의 내용 중에, 북 커버 리뉴얼에 대한 것이 있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리디자인 한 디자이너가 그 과정을 들려주었다. 나도 박완서 작가의 책을 가지고 있지만, 새로운 책 디자인을 보니 내 책장 아래 칸에 꽂힌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박완서, 웅진닷컴, 1992)를 새로운 책으로 교체하고 싶었다. 혹자는 같은 내용인데 뭘 또 사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좋아하는 책일수록 더 멋진 몸, 새끈한 몸의 것으로 교환해 주고 싶다. 다른 몸으로 업데이트할 수 있는 건 책만이 아니다. 미래엔 우리의 신체도 갈아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의 몸에서 정신을 분리해 다른 신체로 업로드하고, 이전의 몸은 폐기하는 것이다. 영혼과 육체를 분리하고자 했던 데카르트 이후의 최고의 기술이다. 놀라운 복제와 교체의 시대다.

리뉴얼 북커버

디자인도 지금은 원화原畫의 개념이 없다. 연필과 붓을 사용하더라도 최종 작업은 컴퓨터에서 완성된다. 따라서 굳이 원화를 따지자면 컴퓨터 속의 디지털 데이터가 본그림이다. 컴퓨터에서 만들어진 그림은 어떤 종이에 인쇄되느냐, 어떤 출력 방법을 쓰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작품이 된다. 무한히 여러 다양한 몸으로 태어난다. 책의 경우도 텍스트가 데이터로 보관되어 있어 주문과 동시에 제작되는 출판 시스템도 있다. 데이터 상태로만 존재하는 텍스트는 몸으로 태어나지 못하고 소멸되기도 한다. 약간은 서글픈 마음이 든다. 자원이 부족하고, 기술이 발달할수록 이런 경향은 심해질 것이다. 


학교에서 수업중 학생들이 디자인 작업을 하다가 비명을 지를 때가 있다. 자신이 만든 작업물이 일순간 컴퓨터의 오류로 깡그리 날아가 버릴 때다. 다른 학우들은 그 친구를 안쓰럽게 바라봄과 동시에 서둘러 Ctrl 키와 S 키를 눌러 작업을 저장한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아닌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생각하면서 말이다. 몇 시간 동안의 노력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을 때의 망연자실함을 겪어보면 인생이 한낱 꿈이라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가 된다. 


나의 많은 글들도 비슷한 운명으로 노트북 안에서만 존재하다가 사장되었다. 디지털 데이터는 언제든 사라질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소멸시키려고 해도 절대 완벽하게 제거 할 수 없이 유령처럼 떠도는 것이 디지털 데이터다. 몸이 없이 떠도는 것은 유령이 아니던가! 신들린다는 것도 그 유령이 몸을 빌려 같이 살자고 하는 것이라는데. 아무튼 없애는 것도 보존하는 것도 내 의지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 디지털 데이터다. (구글의 쿠텐베르크 프로젝트는 전세계 책을 디지털 매체로 전환하고 있다는데, 한 업체가 소유하게 된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 될 것이다.)



어쨌거나.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과 마샬 맥클루언Marshall McLuhan이 무한 복제의 시대에 디지털 미디어에 대한 긍정적 언술로 우리를 안심시키려 했음에도 조금씩 커지는 깊은 불안은 소멸시키지 못했다. 해상도가 갈수록 조밀해지며 실제세계를 침범해 오는 가상의 세계를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전자매체에 길들여진 젊은이들도 이런 이유로 불안과 허무를 느끼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독립서점을 탐방하는 것을 즐기고 좋아하는 작가의 종이 책을 구매하는지도 모른다. 불안한 영혼이 붙들고 위로받는 건 현실 세계의 사물성이다. ‘꿈인가 생시인가’ 할 때 우리는 우리의 신체를 꼬집거나 때려서 감각을 확인함으로써 현실을 판별한다. 신체가 없다면 어떻게 꿈에서 깨어날 것인가? 실제가 없으면 가상도 없다.  


영화 「인셉션」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코브 역)는 꿈속의 꿈을 꾸는 동안에 현실과 꿈을 구분하기 위해 주머니  속에 자기만의 토템을 지니고 다닌다. 책은 가상세계에 젖어 살면서도 불안을 떨치지 못하는 현대인의 토템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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