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을 즐기는 법
책방지기는 판매자의 입장에서 책을 어떻게 놓아야 좋은 디스플레이일까 고민한다. 책의 크기, 책의 두께, 책의 표지는 각각의 개성을 가지고 있지만 개별 요소들보다 책들이 모여 있는 밀집의 결이 서가의 인상, 나아가서는 공간의 분위기를 결정짓는다.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책이 구매자의 눈길을 사로잡도록 하는 것이 우선 포인트다. 다른 책과 차별되는 요소가 있어야 한다. 책의 표지들이 가득한 판매대 위는 책이 어떤 책들 사이에 있는가에 따라 주목도가 결정된다. 모든 인상은 상대적이다. 친구의 미모가 나의 미모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누가 옆에 있느냐가 중요하다. 하얀색 표지도 색채 많은 책들 사이에서는 눈에 띄지만 비슷한 명도의 책 표지 사이에서는 밋밋하게 보인다.
한편 서점 주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서점의 분위기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개성적인 책들을 모두 아우르는 통일성과 질서를 갖추고자 한다. 서점 전체의 분위기와 책이 놓인 테이블의 분위기, 책장 각 열의 분위기, 각각의 책 분위기는 하위로 내려가면서 자연스럽게 서열이 형성되도록 진열한다. 마치 편집디자인의 법칙처럼 자연스러운 시선의 흐름이 생기면 공간이 명쾌해진다.
책을 진열할 때 모든 책을 한꺼번에 드러나게 하는 것보다 손님이 책방을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책을 보게 하도록 의도한다. 일정한 주기로 디스플레이를 바꾸고 먼저 시선이 가는 곳을 골라 새로운 책들로 변화를 주면 늘 신간과 볼 것이 있는 서점이 된다. 특히 새책이 자주 입고되지 않는 나의 소극적인 서점은 그러한 트릭이 필요하다(라고 말하지만. 실은 이러나 저러나 판매량에 차도가 있지는 않다. 다만 이렇게 저렇게 변화를 주면 서점에 제일 오래 머무는 내가 즐겁다).
개인의 서가에서는 책등이 매우 중요한 미적 요소다.
가지런히 꽂혀 있는 책장의 서가와 비교해 여러 모양의 책이 자유롭게 엉켜 있는 책장의 서가는 분위기가 매우 다르다. 나는 분야가 같은 카테고리의 책들을 근접한 거리에 꽂아둔다. 단지 내용을 반영해 진열하므로 들쭉날쭉하고 고르지 않은 책장이 된다. 시각적으로는 뒤엉킨 뒤죽박죽의 카오스일지라도 거기엔 일종의 질서가 있다.
소설 - 좋아하는 작가 - 많이 읽은책 - 새로산 책 -언제 읽을지 모르는 책.
이런 그룹핑과 질서가 있다.
하지만 이질서는 오직 내눈에만 보이는 것이고, 한번에 질서가 다 무너진 사건이 있었으니,
어머니가 우리집에서 며칠 묵으신 신 때였다. 나의 뒤엉켜보이는 책장을 보고서 전혀 정리가 되지 않았다고 판단하시고 새로운 정리법으로 책장에 마법을 부리셨다. 어머니의 손길이 닿아서 책은 키 순서, 두께 순서, 비슷한 색상끼리, 말하자면 오로지 시각적 기준으로 정리되었다. 어머니의 진열법이 가져온 획기적인 시각적 평온함은 거의 방송용 광고 세트장 수준이었다. 집분위기 또한 일순 차분해졌다.
하지만 내 책들은, 시각적으로는 평온하나 현실은 뒤죽박죽으로 섞여버린 것. 질서뒤의 세계는
타이포그래피 - 무라카미하루키 - 폰트의 비밀 - 푸코바르트레비스트로스 - 샌드위치비법이 한열에 나란히 앉게된 참사를 맞게 된 것이다.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가신 후 질서를 카오스로 다시 만들면서 난 나의 질서를 회복하느라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쨌거나, 뒤엉켜 보이는 정글같은 내 서가는 아름답다. 그것은 다양성이 공존하는 아름다움이다. 거대한 우주의 질서도 얼마나 다양한 것들의 하모니인가. 시각적인 질서보다 내면의 질서를 볼 수 있다면, 어지간한 어질러짐은 견딜수 있다.
정리를 안한건지 청소를 한건지 저만 아는 제 서가는
아직도 정글처럼 자라고 있어요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