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mplexArea Nov 17. 2017

[독서노트] 누스바움 <혐오에서 인류애로>요약(2)

2장: 인류애의 정치: 정교, 인종, 젠더, 장애(71쪽-95쪽)

2인류애의 정치정교인종젠더장애(71-95)

2-1 개인에 대한 존중과 자유의 범위

a) 인간적 존엄성과 자연권()

근대적 자연권은 홉스(자기보존)·로크(재산과 저항권)·루소(평등권) 등의 사상들로 이뤄져 있다. 이러한 사상적 전통아래 ‘미국독립선언’ 프랑스의 ‘인간과시민의권리선언’ 등 주요한 정치적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후 모든 입헌 국가의 헌법적 토대를 이룬다. 누스바움은 미국적 전통(비非예속)을 설명하며, 모든 위계정치와 예속정치를 비판한다.—물론, 미국과 유럽의 인권 사각지대. 노예제도와 여성인권에 대한 비판도 잊지 않는다—

누스바움은 마틴 루터 킹(흑인의 법적권리)과 수전 B. 앤서니(여성의 정치적 평등권)의 연설문을 인용하며, 미국 헌법에 명시된 자연권의 가치와 그 적용 사례를 보여준다. 이는 <혐오에서 인류애로> 전체적인 서술에서 헌법적 가치를 주목하는 이유와 동일한 궤를 그린다.   

  

b) 자연권과 권리주체의 문제     

독립선언서와 그 핵심에 자리잡고 있는 비지배의 개념은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요구도, 심지어 도덕적인 사람이 되라는 요구도 전혀 하지 않는다. 평등한 자연권은 덕이 있는 사람이 특정한 사회 규범에 따르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이다.(73쪽)     

중요한 것은 이 자연권이라는 것은 무차별적이라는 사실이다. 사실 인권의 보편담론은 근거가 없다. 자연권이 당연지사 종교와 연결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다. 누스바움이 지적하고 있는 부분은, 자연권이라는 것은 어떤 특정 규범(도덕), 특정 자격이라는 제한 조건이라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미국 국적을 가진 어떤 시민이라도 이 권리를 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프랑스 ‘권리장전’에서 보여주는 인간과 시민의 동격화는 여러 가지 해석문제가 있다. 즉, 시민권이 없는 인간은 과연 자연권을 행할 수 있는가이다. 이 문제는 유대인 학살, 시리아 난민 등 여러 맥락과 연결된다(호모 사케르)—      


헌법은 이러한 자유를 오직 훌륭한 사람들에게만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다. 이 권리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주어진다.(74쪽)     


미국에서 일어난 흑인과 여성의 인권운동은 이와 같이 헌법(자연권)이 보장하는 권리를 내새운다. 앞서 카스 레온을 비판한 맥락을 참고하자면, 현 사회가 인종과 젠더 문제에 대한 차별금지가 합법화 되었다면, 어째서 성적지향과 위의 소수자 문제가 다른지 증명해야 한다는 말이다.     


2-2 삶의 의미와 자아 찾기: 성적 지향과 종교

미국에서 종교적 자유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초기 미국은 종교적 박해는 하나의 트라우마이다. 이는 공정한 정치에로의 인간 존엄성과 ‘양심’을 전재로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독특한 미국적 전통(누스바움이 주장)있다. 이단적(상대적인 개념이지만) 종교를 가진 다양한 종교군의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미국 시민들은, 그들의 종교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로저 윌리엄스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섬세하ᆞ게 존중하며 그들에게 지속적으로 우정을 보여주던 바로 그 순간에도 그들의 종교만은 “악마적”인 것이라고 불렀다. 종교적 존중과 공정성의 정치가 점점 더 많은 정착촌들을 지배하다가 마침내 미국의 헌법을 조형하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다양한 종교적 신념과 의례에 대한 존중 때문에 촉발된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서는 안되는 이유다.(79쪽)  

   

이는 ‘양심’이라는 독특한 개념(77쪽 참고)에서 연유하는데,  양심을 존중하기 위해서는 저마다의 양심이 요구하는 자유가 충분히 주어져야한다는 사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국교가 법적으로 철폐되어 있는 미국에게 종교의 자유는 중요하였고,  양심은 1)양심이 요구하는 형태의 종교를 실행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과 2)신앙고백을 하여 내면적 세계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누스바움은 종교와 섹스사이의 유비관계를 내세우며, 섹스 또한 자유의 ‘범위’에 포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면에서 종교와 섹스에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둘 다 내밀하고 개인적이라는 점, 삶의 궁극적 의미와 연결되어 이다는 점, 그리고 전혀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만은 비슷하다. 종교처럼 섹스도 진실이나 양심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문제로 보인다. 우리는 섹스가 사람들이 스스로를 정의하는 핵심 개념 중 하나이며 정체성과 자기표현의 중심적인 부분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있다.(80쪽)     


밀이 정의한 자유의 범위 즉, 타인의 합법적인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한에서 “개인은 섹스의 영역에서도 자기가 좋아하는 신념을 가지고 그 신념을 행동으로 표현할 충분한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라는 것이 누스바움이 종교적 자유를 책 본문으로 가져온 이유다.          



2-3 체계적 불이익: 성적 지향과 인종, 젠더, 장애     

연방대법원은 형식상의 대칭성 아래에 무엇이 깔려 있는지 꿰뚫어보았다. 연방대법원은 인종 간 결혼금지가 사람들의 실질적 평등과 그들이 갖는 기회, 그들의 전반적인 사회적 지위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질문하고는 인종간 결혼금지가 사실상 전혀 대칭적이지 않다는 결론내렸다.(83쪽)     
표면적 대칭성을 넘어, 다양한 집단에 속한 시민들이 살면서 무언가를 추구하려 할 때 실제로 어떤 기회를 누릴 수 있느냐를 엄격히 검토할 때에만 우리는 법이 시민들을 진정으로 평등하게 조중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84쪽)     

연방대법원은 형식상의 평등성 이상의 무엇, 앞서 언급된 ‘비예속’을 요구했다. 이는 대칭적 평등권을 보장하는 법문이, 실질적인 사회적 맥락 즉, 인종·계급간의 차별금지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앞으로 누스바움은 이러한 맥락에서 ‘적법절차조항’과 ‘평등권보장조항’을 체계적으로 분석할 것이다.     


“연방대법원은 어떤 법안이 민주적 다수의 의지를 반영한다고 해서 평등보장조항이 가하는 제한을 비껴날 수 있는 거나라는 점을 강조했다”(89쪽)     


끝으로 조금 주목할 부분이 있다. 위의 인용문으로 보았을 때, 또한 누스바움이 제시하는 역사적 사례들은, 일반의지를 반영하는 법안(루소적 맥락)은 그 자체로 평등권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2-4 상상력의 필요성

2장에서는 책 전체를 통과하는 몇 가지 개념을 제시한다. 2장 4절에는, 서문에서부터 강조한 ‘상상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는데, 이는 오늘날 윤리 영역에서 핵심 개념이다.      


a) 윤리와 상상력     

다양한 집단에 속한 사람들의 상황을 상상하고 그들의 관점에서 평가할 수 있는 능력(89쪽)
동성애자들의 추구를 이성애자들 자신이 하고 있는 개인적·성적 진정성 및 표현에 대한 추구와 유사한 것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동성애자들이 하는 일에 대해서는 여전히 찬성하지 않을 수 있다. (중략) 그렇더라도 존중으로 나아가는 중대한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다.(91쪽)  
동료 시민들에 대한 평등한 존중과 그들이 추구하는 이익이 무엇인지 상상하는 진지하고도 공감적인 시도의 조합이야 말로 ‘인류애의 정치’, 바로 그 자체이다.(93쪽) 

근대를 상징하는 몇 가지 개념 중 분업(분화)는 중요하다. 물론 산업영역에서 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의 영역도 상당부분 분화되어 있다. 이는 모든 학문이 분과학문으로, 즉 전문성이라는 개념 또한 이와 같다. 사회 전반에 걸쳐 개인 고유의 영역이 강조되고, 이는 개인을 원자적 존재로 보는 몇 가지 시각을 낳기도 한다. 개인과 개인 사이의 단절은 윤리성과도 연관이 깊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사회적 관습·도덕이 의문에 붙여지고, 그 통제력이 상실한 오늘날, 상이한 판단기준과 윤리관을 가진다. 이러한 사태는 단절된 개인 간의 ‘경험영역’이 중첩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함께 한다. 이런 맥락에서 ‘상상력’은 중요해진다. 결론은 이렇다. 우리는 타인의 삶에서 많은 부분 중첩점을 잃었다. 어떻게 타인을 이해할 것인가. 더 이상 이해와 존엄의 영역이 같은 경험군에서 파생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우리가 경험영역과 자신의 상식 선에서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는, 실패할 확률이 높고 그것이 오늘날의 도덕적 난점이다. 함께 하는 경험구조가 없더라도, 우리는 상대방의 상황을 상상할 능력이 필요하다. 누스바움은 인류애에 이러한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b) 역사·사회적 상상력     

역사적·사회적 근거를 갖춘 이 상상력을 활용할 때에야 비로소 이 학교들이 실제로 평등하지 않으며, 흑인학교의 분리를 둘러싼 낙인이 불균형적인 손해를 끼치고 있음이 드러난다.(91-92쪽)     

누스바움은 역사적 사례를 자주 인용하면서, 우리의 상상력이 역사적·사회적 맥락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는 합리성에 대한 문제인데, 사태에 대한 타당성이 단지 그 명제가 포함하는 논리구조의 합리성을 검토해서만은 안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대칭적 평등을 보장하는 법안 같은 경우, 이는 형식적 맥락에서 합리적이다. 그러나 그 법안이 내재하고 있는 사회·역사적 맥락을 함께 보았을 때 그것이 ‘실질적 평등’에 저촉 된다는 것을 확인 가능하다.

우리가 소수자의 권리와 인권을 얘기할 때 그들이 지난 날에 받아온 역사적 맥락을 분리시킬 수 없다. 예컨대, 오늘날 어떤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법적으로 금지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차별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수자 담론을 진행할 때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제외해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인류애의 정치’는 타인의 선택에 무조건 찬성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며, 심지어 그들이 하는 행동을 존중해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인류애의 정치’는 그저 타인을 괌범위한 목표를 추구하고 있는 인간 평등한 존엄성, 평등한 권리를 가진 인간으로 바라볼 것만을 요구한다.”(95쪽)     



작가의 이전글 [독서노트] 누스바움 <혐오에서 인류애로>요약(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