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상징은 소니 워크맨이었다
난 항상 이어폰을 꼽고 있었다. 등 하교길은 물론이요 쉬는시간 틈틈히, 야간 자율학습시간에도 이어폰을 뺀적이 없다. 직장인인 지금도 회사 출근길, 점심시간, 퇴근길 내내 귀에 이어폰을 빼지 않는다. 이어폰을 꼽고 음악을 듣는 행위는 철저히 자신만의 시간을 의미한다. 출근길에 아는사람을 만나도 이어폰을 꼽고있으면 인사하지 않는다. 그분만의 시간은 분명 중요하기 때문이다.
휴대용 음악기기는 그렇게 내 곁에 계속 있어왔다. 혼자 음악을 들으며 내적 에너지들을 자유롭게 꺼내고 공감했다. 여전히 이어폰은 가장 친한 친구이자 대화상대다. 특히 기쁠때 보다는 힘들고 슬플 때 더욱 그러하니까.
그 시작은 삼성의 마이마이였다. 초등학교 3~4학년때 삼성의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를 가지고 다닐정도로 여유있는편은 아녔다. 다만 삼촌이 쓰던 마이마이를 잠시 빌려다 서태지와 아이들 2집을 다 늘어지게 들었다. 이모 방에 있던 인켈의 더블데크 전축 (그때는 전축이라고 했다)에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들을 모조리 녹음한후 마이미이로 듣곤 했다. 진짜 테이프 음반처럼 들리도록 중간중간 수기로 PAUSE를 만들고 녹음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초등학교 교실에도 가져간적이 있었는데 그때 유일한 나의 라이벌은 소니 워크맨을 가진 친구였다. 소니 워크맨은 넘볼수 없는 존재였다. 당시만해도 일본 소니의 위상은 지금의 애플 이상이었으며 '워크맨'이란 소니의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는 그냥 그 자체로 대명사였으니까. 내 삼촌의 마이마이는 부끄러워하는 주인탓에 작은 주머니같은것에 들어가 이어폰만 빼꼼히 내주게 된 것이다.
그런 마이마이는 내가 중학교 1학년때(1997년) 생을 마감하게된다. 언제나 든든한 자본은 우리 삼촌으로부터 시작했다. 삼촌이 새 워크맨을 선물 해주셨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것을 가진 기분이었다. 그렇게 동경해오던 소니의 워크맨이 오롯이 내것이 되다니. 지금이라면 아반테를 타다가 벤츠를 모는 기분이랄까.
이미 1997년은 TAPE 에서 CD로의 전이가 활발하게 진행되던 시기였다. 당시 집에서는 인켈의 더블데크를 통해 CD를 들었고, 집에서 나올땐 워크맨의 테잎을 들었던 하이브리드 시대였다. 제일 좋아했던 라이온킹의 OST는 CD와 테잎 모두를 가지고있었으니까. 물론 그 때에도 휴대용 CD플레이어는 있었다. 다만 살인적인 가격으로 엄두를 못내었고 생각보다 휴대용 CDP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난 디스크맨을 가져본적은 없지만 '디스크맨' 이라는 이름 자체를 사랑한다. 이후에 디스크맨은 단순히 'CD WALKMAN' 으로 바뀌게되는데 개인적으로 그 변경은 소니의 큰 실수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디스크맨'과 '씨디워크맨' 둘 중 어느 단어가 매력적인지는 논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e7Vq1jndDnM
시대의 변화를 감지한 소니는 언급한대로 디스크맨을 CD워크맨으로 바꾸고 다양한 모델과 신제품들을 양산하기 시작한다. 당시 CD플레이어는 소니의 진두지휘 아래에 파나소닉이 팔로업했고 아이와등의 일본브랜드들이 주도했다. 마이마이와 달리 휴대용 CD플레이어 시장은 삼성 혹은 LG의 모습이 내 기억에 없다. 그만큼 내 주위에 가진이들이 없었기 때문이며 소니의 기술력을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CD플레이어의 춘추전국시대 이후는 다음 글에 자세히 기록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