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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Jul 28. 2022

어느 만남 그 후

서글픈 상실의 시대


만남이 너무도 그리웠다.


내게는 어머니 같은 지인의 어머니가 계신다. 40년이 넘은 인연이다. 코로나 이전에 뵙고 긴 시간을 뵙지 못했다. 요즘 부쩍 쉽게 잠들지 못해 뒤척이다 잠든 밤 꿈에 자주 나타나셔서 무언가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다 아쉽게 꿈에서 깨어나곤 했다.

뵙고 싶었다. 남아 있는 시간은 짧고 코로나의 시간은 끝날 듯 끝날 듯 이어지고 있어서 더 늦기 전에 한 번 만나 뵙고 싶었다. 지난번 뵈었을 때에 사라져 가는 기억 속에서도 나와의 시간들은 잘 기억하시고 기뻐하셨었는데.

  

망설이고 망설이다 청을 넣었다. 그곳에 꼭 갈 일이 있으니 도중에 들러 마스크를 쓰고라도 잠깐 뵐 수 있을는지를.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서 전화로만 이야기 나누던 지인과의 만남 또한 너무 그리웠다.

기쁘게 전해준 연락을 받고 반갑게 만났다. 그새 어머니의 기억은 저만치 더 물러선 듯했다. 당신의 실제 나이는 구십 중반을 넘으셨으되 당신의 기억은 딱 구십 세에 머물러 있으시지만 아직도 나를 기억하신다. 젊은 날 홍역으로 잃어버린 딸이 생각날 때면 내손을 꼭 잡고 그리워하시던 그때와 같이.  

"빨리 떠나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돼. 자식들에게 폐가 되고 있지만 그래도 늘 감사하며 살지".

기억을 잃어 가시고 있어도 덤덤하게 감사함으로 하루를 사시는 모습은 동안에 살아오신 반듯하신 삶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는 듯하다.

딱 한 시간 동안 마스크를 쓴 채로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서둘러 떠나는 길 자꾸만 뒤돌아 보게 된다. 우리는 또 만날 수 있을까? 그때는 또 언제가 될까?

모든 노인은 서로 닮았다. 그 어머니의 모습이 아흔넷에 돌아가신 나의 엄마와 흡사하다. 어머니를 성심껏 모시는 지인들이 존경스럽다. 잘 모시지 못한 나의 불효가, 나의 엄마가 많이 생각났다.


집에 돌아온 직후 지인의 코로나 양성 소식을 전해 들었다. 혹시 모르니 증상이 있으면 꼭 검사를 받으라고. 급하게 진단키트로 검사를 했다. 다행히 나는 음성이다. 그러나 음성이어도 마음은 무겁다. 내가 원인이었어도 또는 원인이 아닐지라도 만남 후에 온 소식은 무거웠다. 그 무거운 코로나의 무게는 소식을 전하는 마음도 그러했을 듯, 전화기를 내려놓고 나서 나는 한참 동안 청을 넣었던 나의 욕심을 원망해야만 했다.




가장 오래되고 친한 친구의 어머니가 떠나셨다.  가야만 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흔들린 나의 마음은 또 한 번 어지럽다.

욕심을 부려도 될까?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친지들만 참석하기로 했으니 괜찮다고. 엄마의 투병기간 동안 늘 위로해 주고, 내 어머니의 장례식에 멀리서 달려와 내 손 잡아 주던 친구인데... 알았노라고 말하면서도 참 슬프다.


친구의 어머니를 생각한다. 내 코흘리개 시절부터 나를 아시는 분이다. 밝고 아름답고 씩씩하시던 어머니다. 사람들을 아주 좋아하시던 어머니. 친구 언니의 졸업식 사진 속 마치 친구의 동생처럼 보이는 보랏빛 장화 신은 중학생 꼬꼬마 나와 키가 아주 큰 내 친구와 언니 젊으신 친구 어머니의 모습이 생각난다.

한 달여 병실에서의  생과사를 넘나드는 긴박한 시간을 그러안으며 꿋꿋이 어머니를 지킨 친구.  나는 지키지 못한 그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아직도 나를 떠나지 않고 있다고, 넌 참 잘했다고, 고난의 시간이 더 길어지지 않아서 어머니도 바라보아야 할 너도, 아쉽지만 언젠가는 우리 모두 가야 할 길을 좀 더 편하게 가셨노라고, 참 잘했다고 너는 참 근사했다고 친구에게 전하고 싶다.


주변에 아픈 이들이 늘어간다.

어느새 부모님의 세대를 떠나 우리 세대의 이야기로 죽음이 슬며시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한다. 그제야 우리도 그저 생물권의 한 존재일 뿐임을, 타 생물들의 삶처럼 우리가 떠나도 세상은 돌아가고 산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가야 함을. 병들거나 늙어가거나 그 모습들을 만나며 떠나는 시간에 나는 어떻게 가고 싶은지, 나의 생각처럼  떠날 수는 있는 것인지 생각이 많아진다, 비록 치매의 시간을 살면서도 평상시 지닌 삶의 자세로 추하지 않은 모습으로 사는 분을 바라볼 때, 고통 속에서 긴 싸움에 끝에 지쳐가는 긴 여정을 곁에서 바라볼 때, 부디 잘 떠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된다. 하루하루 충만하게 살아야겠구나 그런 생각을 한다




코로나로 확실히 알게 된 것은 가장 굳건한 울타리가 가족이라는 사실이다. 비록 감염의 위험한 시간일지라도 함께 해야만 하는, 그 어떤 고난도 함께 나눌 소중한 곳이 가족이라는 것을 더욱 확연히 알게 되었다. 가족의 울타리 외에는 함부로 문 열고 인사하기조차 어려운 시절. 만남의 시간도, 멀리서 바라보아야만 하는 시간도 마냥 아쉽기만 하다.

백세에 가까우신 사랑 많으신 어른의 늘 감사하신다는 일상 속 희미해져 가는 기억에 밝은 빛을 전할 만남의 시간도, 슬픔에 젖은 친구의 어깨를 다독여줄 위로의 시간도 넉넉히 전해줄 그런 날들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내 또 다른 어머니의 편안한 남은 여생을 기원한다.

아쉬운 마음으로 친구 어머니께 한송이 꽃을 바친다.

곁에서 내 소중한 친구의 어깨를 오래오래 감싸 안고 싶다.



 Main photo : by John Thoma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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