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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Dec 29. 2022

젊은 노년, 나의 새해 소망

단단해지는 해 2023







연말이 되어 밤에 잠자리에 들 때면 명상앱으로 굿바이 감사명상을 듣습니다.

연말은 쉼표와 같다. 쉼표를 잠시 찍어두면 온 길을 돌아볼 수도 여유를 가슴에 심을 수도 있다. 대단하지 않아도 좋다. 여기 살아 있다는 것을 즐기고 감사하며 한 해를 맞이하기를.. 나는 이렇게 살아있고 이 모든 것은 과정이며 힘든 일이 있어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누군가가 나를 존중해 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모자란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날들이 기를..

며칠 남지 않은 달력을 바라보며 생각이 많아지는 시간들입니다. 쉼표를 찍으며 알찬 새해를 꿈꾸어 봅니다.




'나의 이야기 모음'이라고 이름 붙인 노트가 있습니다. 1994년부터 드문드문 제 마음을 적어 둔 노트지요. 지금은 폰의 메모장에 글을 남기는 때가 지만 예전에는 일상의 일들, 책을 읽다 좋은 구절들을 자주 여기에 메모해 두곤 했지요. 가끔씩 거기에서 글감을 찾아내기도 하는 노트입니다.

그곳에 어느 날 산을 내려와서 적어둔 메모가 있었습니다.

'산다는 것이 산을 걷는 일과 닮았구나. 오르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고.. 갈 때는 몹시 힘들던 오르막 길이 내려올 때는 쉬운 길이 되고 아까 편하게 걷던 내리막 길은 이제 힘든 언덕이 되었다. 숲에서의 나는 나무나 풀 다른 미물과 다르지 않다. 그냥 놓인 돌과 다를 바 없다. 산을 내려왔다.
산아래 입구에서 울려 퍼지는 온갖 인간세상의 소리들. 산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산의 푸르름을 배우고 또 쉼을 가득 채우고 용기 얻어 저 소음 가득한 세상 속으로 다시 나선다.'
- 광교산에서


한 해를 보내는 요즈음 그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습니다. 삶의 오르막과 내리막길을 달리 돌아봅니다. 산을 오르는 것이 조금은 버거운 나이가 되어 이제는 어떻게 쉼과 용기를 채울 수 있을까를 일상 속에서도 찾아보게 됩니다.


이제 다시는 오지 않을 이 순간, 2022년 한 해.  

무엇을 하며 보냈을까 뒤를 돌아봅니다.

필사며 운동 기타 배우기 루틴으로 자리 잡은 일들은 습관처럼 잘 해내었군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은 없음입니다. '싶은'을 찾아서 챙겨야 하겠구나 마음먹습니다. 나이에 맞게 그 강도는 잘 조절해야겠지만 말이지요.

이런 자잘한 저의 꿈을 믿고 응원해 주는 좋은 친구들이 큰 힘이 되어줍니다.

산티아고 꿈을 찾아가라고 용기를 주는 먼저 그곳을 다녀온 친구가 있습니다. "자기는 잘할 수 있을 거야" 라면서 요. 새로운 자연을 보러 오라고 초대해 주어 근사한 길을 걷고 강변 벤치에 앉아서 강물의 반짝임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산사의 밤을 함께 한 띠동갑 젊은 친구도 있네요. 도전을 겁내지 않고 항상 공부하며 함께 하자고 자극을 주는 친구도 있습니다. 지금은 남편의 병 때문에 갇혀 지내지만 국토종단을 꿈꾸며 한 구간쯤 함께 걷자며 언젠가를 위하여 정보를 나누며 힘을 주는 친구도 있습니다. 그런 친구들의 에너지들을 모아 내년엔 새로운 작은 도전들이루어 나가는 감사한 새해를 꿈꾸어 봅니다.


스티브잡스가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에서  이야기한 connecting the dots라는 표현이 생각납니다. 비록 당시에는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을 듯 보여도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서 하면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돌아보면 그 점들이 분명히 연결 지어져 있을 거라며 자기 자신을 믿고 자신이 결정한 일을 해나가라는. 지금 앞으로 올 미래를 이을수는 없으며 과거를 되돌아볼 때 만이 그 일이 갖는 의미를 이을수 있다고요. 결정을 하고 행해 온 것들이, 지금 하고 있는 무언가가, 앞날의 삶을 달리 만들어 줄 거라는 이야기가 노년의 삶에도 작은 영감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제가 아는 노년의 지인에게 무엇을 해보고 싶었었느냐고 물었더니 조금 더 젊었을 때 드럼을 배웠더라면.. 하고 이야기하더군요. 그보다 십여 년 더 젊은 제 친구도 같은 이야기를 하더군요. 젊은 친구에게는 이제라도 배워보라고 일단 시작해 보라고 응원을 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은 삶에 큰 활력을 줍니다. 제가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지는 몇 년이 되었습니다. 코로나로 수업이 중단된 이후로는 거의 2년간을 인터넷으로만 수업을 듣습니다. 나이는 속일 수 없는지 거의 매일 꾸준히 연습을 했어도 작년보다 부드럽게 연주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작년에는 잘 연주했던 곡이 부드럽게 잘 되지 않을 때, 손이 굳는다는 것을 느낄 때가 요즘 자주 있습니다. 그럴 때면 매우 속상해하며 손을 잘 어루만지고  방향을 바꾸어 잡아보고 이리저리 자세를 다시 챙기며 기본을 더 충실히 연습합니다. 물론 부드럽게 연주하기까지 작년보다 더 긴 시간들이 필요합니다. 지팡이를 필요로 하는  노인의 마음으로 그래도 천천히 나아갑니다. 잘하기보다 잘 놀기를 즐기는 마음을 쌓는 시간입니다.

 함춘호와 송창식의 근사한 앙상블을 좋아합니다. 자유롭게 플랫사이를 오르내리는 대가의 현란한 손놀림을 바라보며 같이 어깨 들썩이며 노래를 듣습니다. 비록 훨씬 낮은 단계일지라도 저 또한 소소하게 자유로이 플랫 사이를 움직이는 제 손을 꿈꾸어 봅니다.

어린 시절부터 제 큰 기쁨 중의 하나는 음악이었던 듯싶습니다. 피아노를 참 배우고 싶었습니다만 바삐 살다 보니 잊고 말았습니다. 얼마 전 '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될래'라는 제목의 책을 본 적이 있습니다. 새해에는 저도 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되어보려 합니다. 노년의 시간이 준 고마운 여유를 감사해하며 피아노 앞에 앉은 저를 아들들이 응원해 줍니다. 그렇군요. 그 이야기를 글로 써 나갈 수도 있겠군요.


아픈 다리를 고쳐서 가고 싶은 곳을 맘껏 다니고 싶으시던 어머니는 수술 길이 당신의 다리로 걷던 마지막 길이 되었습니다. 드럼을 꿈꾸던 이도, 여행을 하고 싶지만 차일피일 미루던 이도 병원으로 떠나며 일상이 멈추는 것을 주변에서 목격합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하루는 소중하지만 공기처럼 잊고 살기 쉽지요.  비교적 젊은 노년이어도 평범한 일상의 시간들이 갖는 소중함이 요즈음 들어 더욱 깊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삶의 겨울을 생각한다면 지금 이 순간 나의 발로 걷고 숨 쉬고 스스로 먹고 소소한 일들을 의지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지요. 귀중한 시간들을 '싶은'일들을 하는 소소한 기쁨으로 그날을 장식해 나갈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요.

딱딱하게 굳어지지 않도록 자신을 많이 돌아보고 싶습니다. '싶은' 리스트를 꾸준히 업데이트하면서요. 적어두지 않으면 금세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들도 적어두고 보면 꽤 강한 추진력이 생기더라고요. 올해는 삼 년 전에  가고 싶었던 곳을 혼자 씩씩하게 다녀왔거든요.

이렇게 나를 먼저 다독이는 날들이 모이면 삶은 더욱  단단해지겠지요. 남의 입장을 먼저 이해하느라 나를 뒷전에 두는 삶의 시간은 이만큼이면 충분했다고 저를 달랩니다.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했던 만큼 이제는 자신을 배려하라고 스스로에게 마법을 겁니다.


또한 새해에는 이런 눈길을 지니고 싶습니다.

산을 오르는 일과 같은 일상의  그 오르내림 속에서 과정의 힘들거나 어려운 일들을 좀 더 멀리서 여유를 지니고 바라볼 수 있는 느리지만 고운 삶을 살고 싶습니다.

따뜻한 마무리의 시간 보내시길..

새해엔 모두 행복하시길...

행복하시기를... 소망합니다!


(한해 따뜻한 마음을 나누어 주신 브런치 여러 작가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Main Photo: by Kate Lain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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