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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May 19. 2023

개미의 날들을 사는 베짱이

노동의 무게를 배우면서



평온한 루틴의 일상을 살고 있었다. 늘 집에 있는 날들은 그날이 그날 같지만 만족한, 또 다른 날들이었다.


찬란한 봄 꽃들이 피어나던 날, 새로 깨어나는 개구리의 합창을 들으며 새봄 이야기를 쓰다가 완성하지 못한 채로 서둘러 일정을 당겨 시골에 내려갔다. 일꾼을 구하기가 어려운 탓이다.

관리를 꾸준히 했고 조심하며 일했지만 몸은 나이에 맞춰 보하고 있었나 보다. 열흘 만에 아픈 몸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몸이 아프니 마음도 덩달아 가라앉아 쉬어야 했기 때문이다. 일주일 가량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거의 누워서 지냈다. 그리고 다시 시골에 내려왔다.

이번엔 무리하지 말아야겠다. 일이 남아 있어도 조금 일찍 집에 돌아오고 나를 돌보면서 일하리라. 내일이 있으니까.


봄날 시골의 일은 끝이 없다. 새로운 작물을 심었다. 여러 종류의 나물들이 동시에 자라나기 시작하면서 하우스 따뜻한 환경 속에서 자라는 나물들은 수확하 돌아서 보자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자라났. 잎이 커지면 상품의 가치를 쳐주지 않는 탓에 적절한 시간에 따야 하고 웃자라면 다른 잎들의 생장에 저해가 될까 따내어야 하고 수확한 것들은 정성껏 포장도 해야 한다. 주문이 들어온 작물들은 포장하지만 주문이 들어오지 않으면 삶아서 말려야 하기도 한다. 한참을 일하고 허리 한 번 펴고 나서 다시 보면 아직도 갈길은 멀기만 한데 바구니는 어느새 묵직하다.

보이는 대로 정신없이 일하다 돌아온 저녁이면 몸은 물에 젖은 솜 같다. 하지만 잘 먹어야 한다. 일꾼은 밥심이다. 집에 돌아와 고기 얹어 저녁상을 차린다. 시골밥상은 새로 난 풀들로 풍성하고 일끝의 밥은 생각보다 달다. 반 육식주의자인 나조차 고기 한 점을 쌈에 싸서 먹어본다. 그렇게 많이 먹어도 몸이 고되어서인지 집에 돌아와서 보면 살은 오히려 빠져있다. 저녁 식사 후에 막걸리 반주에 마음이 편안해진 남편은 소파에 누워 드폰 고스톱에 열중해 있고 나는 가볍게 눈 흘기며 설거지를 하고 내일의 준비를 한다. 내일 도시락은 무얼로 챙길까.


휴일이 없는 시골의 시간이다. 어느새 주사위 두 개로 세계를 여행하는 '블루마블 세계여행 '을 하는 날이 돌아왔다. 벌써 잠자리에 든 남편과는 달리 비스듬히 소파에 누워 여행을 향한 대리만족을 채우려는데 나도 몰래 잠들었었는지 이미 프로그램은 끝자락이다. 불을 끄고 나도 잠을 청한다. 금세 잠이 든다. 이렇게 일찍 잠자리에 들어 본 게 언제인가. 눈을 뜨면 어느새 아침이다. 또 같은 날이 시작된다. 

그렇게 버티다가 어느 순간 몸이 지탱하기 힘든 날이 온다.


이제는 젊은 날의 개미의 속성을 버리고 베짱이로 살기로 했다. 다시 찾은 소망 속의 나 그리고 나의 시간들을 생각한다. 시골에서의 삶 속에서 돌아서면 보이는 일들에 묻혀 끊임없이 움직이던 어느 날 혼자 실성한 사람처럼 중얼대는 나를 보았다. "아이고 나는 무엇을 선택했던 거야. 내가 미쳤지. 저 남자의 마음속에 숨어있던 수많은 것들을 놓치고 눈멀어 선택한 삶이라니. 이건 내가 생각한 노년의 모습과는 영 다른 전개야. 웅얼웅얼... 드디어 내가 미쳐가는구나. 집에 가야겠다. 집이 그리워. 집에 가고 싶다."

그렇게 예정보다 일찍, 이른 첫차 표를 끊고 나서 나는 아픈 다리도 잊고 집으로 돌아오기 전날  기쁨에 겨워 힘껏 괭이를 휘두르며 참 열심히 일을 했다.


집에 돌아와서 며칠을 자고 또 잤다. 회복에 걸리는 시간은 지난번 보다 길어지지만 또 가야 한다. 책도 입맛도 루틴을 잃었다. 다시 책을 잡는 데 걸리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진다.

어느 인디언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길을 갈 때 서두르지 말고 마음이 따라올 시간을 기다려 주어야 한다는. 노동의 무게눌려 몸은 아프고, 생각 없이 사는 동안 잊고 밀어  사랑하는 시간들을 향한 그리움으로 마음이 아프다. 몸이 먼저다. 몸을 며칠 동안 푹 쉬게 하고서야 마음의 차례가 돌아온다. 책이, 글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벌써 돌아갈 시간이다.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며 밤을 보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 시즌이 끝나면 내게는 평온한 날들이 올 거라는 걸. 다가올 일들을 몰라서 나를 다그치며 보내다가 어느 날 다시는 오지 않을 것처럼 시골을 떠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 또한 나날이 쇠해가는 몸은 해마다 다르다. 쪼그리고 앉아 많은 작물을 심고 김을 매었어도 하룻밤 쉬고 일어나면 회복되던 몸은 이젠 아니.

토닥토닥, 천천히, 내 몸을 기다려 준다. 내 마음도 달래어 다.




시골로 내려가는 길 중간에 두세 시간을 내어 가고 싶었던 곳을 들러가는 여행 같은 시간을 내게 선물했. 잠시 들른 책방의 주인이 내게 물었다. 여행하시는 중인가 봐요. 여행자의 행색을 한 나의 배낭 속을 그가 들여다본다면 웃을 것이다. 시골에서의 날들을 견디어  가득한 커피가 담긴 주머니, 새로 구입한 다이소 미니 주전자, 읽을 책(소로. 의욕이 지나쳐서 한 줄도 읽지 못했다), 버터가 듬뿍 든 나의 아침을 위한 식빵, 아들이 힘내라며 준 초콜릿, 바빠서 장 보러도 못 갈 시간을 대신해 채워 넣은 반찬감 등속을 채운 가짜 여행자의 모습이지만 그 물음을 즐긴다.

책방에서  좋아하는 사람에게 줄 책 한 권샀다. 다른 두 권의 책은 짐의 무게 때문에 사진을 찍고 돌아와서 친구의 생일선물로  권의 책을 택배로 주문했다. 정가의 책값과 우체국 택배비가 꽤 크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소시민의 싸게 사기에 대한 섭섭함이다. 그러나 시골에서 산나물을 팔면서 큰 커머셜회사들이 농산물에도 발을 뻗쳐 노출의 빈도를 확신하는 만큼 농민들에게 더 싸게 사서 농민의 이익은 줄이고 파는 행위를 직접 피부로 느끼지 않았던가. 그들보다는 비쌀지라도 우리를 믿고 주문해 주는 분들의 마음으로 나 역시 책을 주문했다. 대형 서점에서 와는 달리 책이 곱게 포장이 되어서  몇 장의  멋진 엽서와 함께 선물처럼 내게 왔다. 친구에게 생일 선물로 보내려 했었지만, 주문 전 먼저  본 친구 집의 책장 속에서 내가 선물한 여러 권의 책들을 보며 왠지 책 선물이 식상할 듯싶었었다.  대신 건강식품을 보내고 받은 책은 나에게 보낸 행복한 선물이 되었다. '축하해! 너를 위해 보내'. 이런 메시지를 담은듯한. 포장지를 차마 뜯지 못하고 며칠은 그저 바라만 보았다. 정성껏 포장해 보내준 '잔잔하게'의 여행책방지기에게  감사한 마음이 닿을 수 있다면...

여행책방 '잔잔하게': 내게 준 선물


나물 일 킬로를 말리면 100그램도 채 안된단다. 고단한 중에도 정신없이 자라나는 나물들을 뜯어다 말리면서 그 수고로움을 배웠다. 뜯고 삶고 말리고 그 시간들의 고단함을 내색하지 않고 흔쾌히 모두에게 넉넉히 나누어 주시던 어머니의 큰손을 이제야 더욱 감사해한다. 책 속에는 없는 자잘한 일상사의 삶의 무게들을 시골개미로 사는 짧은 시간 동안 배우고 있다. 이러다 도로 개미의 삶을 살게 되는 건 아니야? 반문하면서.


아니다. 나는 베짱이로 살고 싶다.

시골에서의 시간을 몸으로 살며 쉴 참에는 꽃을 심었었다. 포기를 나누고 잘 보살펴 주었더니 이제 그들은 자라서 하우스를 따라 긴 꽃의 행렬을 이루었다. 이제 막 피기 시작한 샤스타데이지가 다음 만날 시간의 나를 개선장군처럼 반갑게 맞아줄 것이다. 

아! 작고 초라한 나의 행복이여!


다리가 아프다. 

앉았다 일어나기가 힘들다.

몸과 마음을 위로하는 짧은 이 시간은 내게 행복한 시간이다.

소소한 행복의 양 귀퉁이를 꼭 부여잡고 오늘도 개미와 베짱이의 삶을 건너 다닌다. 도시와 시골을 오르내리며.

하지만 지금 내 소망은 여전히 베짱이로 사는 것이다.


Main photo : 하우스의 봄 풍경. 핸드폰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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