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이 아직 일러 비싼 무언가에 손이 갈 때면 멈칫 손을 사리곤 한다. 가난한 이에게는 넉넉하지만 귀한 손주들에게 조차 철 이른 과일, 채소 등속을 사주는 데는 엄하다는 존경하는 어느 어르신이 떠올라서다.
마트의 매대에 첫물 아오리 사과가 나왔다. 푸른 사과를 바라만 보아도 그 상큼한 신맛과 꼭 깨물어야만 느낄 수 있는 질감이 느껴진다. 집에서 저 푸른 사과를 좋아하는 이는 나뿐이다. 잠시 망설인다. 나만을 위하여 철이 일러 아직 값비싼 사과를 사는 것이 왠지 사치처럼 느껴져서였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고서 값이 내리고 조금 더 많이 매대에 오른 뒤에야 사과 한 뭉치를 집어 들었다.
홀로 식탁에 앉아 푸른 사과를 베어 물었을 때였다. 문득 그동안 잊고 있었던 풋풋한 후배 H가 생각났다. 큰 덩치, 수수한 옷차림, 소의 눈처럼 크고 순수해 보이는 눈빛, 빙그레 웃을 뿐 별로 말이 없던 H. 어느 날 도시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 벤치에서 한참을 둘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꿈 이야기를 했던가.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수줍어하며 지금 전공과는 다른 의사가 되는 꿈을 꾸고 있다고 언젠가는 꼭 이루고 싶다고 내게 말했다. 수능 성적에 맞추어 대학을 왔지만 아직도 그의 가슴 깊숙한 곳에 지니고 있는 꿈을, H는 자신을 아끼는 내게 어렵게 이야기를 꺼낸 거였다. 그 길은 실현하기에 참 어려운 길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우직하고 노력파인 그의 성정을 알기에 그 꿈이 이루어졌으면 하고 그저 응원하고 싶었다.
후배는 작은 과수원집 아들이었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도 하고 틈틈이 알바도 해서 등록금에 보태는 성실한 청년이었다. 그는 살아있는 생명들을 사랑하는 젊은이였다.
어느 날은 송아지가 새끼를 낳았단다. 아침에 그 탄생의 순간을 같이한 H는 경이로운 그 시간의 여운이 아직도 남은 표정으로 내게 실감 나게 그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이야기를 듣고 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이 몹시 궁금하다는 나의 이야기를 들은 H는 자신의 낡은 차로 우리를 그의 집에 데려갔다. 비틀비틀 아직도 걸음이 서툰 생각보다는 커 보이는 어린 송아지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새끼를 돌보는 어미소의 모습이 얼마나 신기하던지. 우리는 그날 저녁 순박한 모습의 H의 어머니가 손수 만들어 주신 콩국수까지 얻어먹고 집에 돌아왔다( 당시는 잘 몰랐던, 일손 바쁜 과수원집의 귀한 시간을 콩을 갈아 손수 만들어 주신 그 음식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한 번은 바람이 몹시 불어 사과가 많이 떨어졌다고 했다. 그 많은 푸른 사과를 처리하지 못해 애쓰는 후배를 위해 친지며 친구 이웃까지 이곳저곳 수배해서 팔아주고 나도 한 자루를 샀다. 많은 사과를 처리하느라 처음 사과잼을 만들었다. 신 사과로 만든 잼의 그 상큼한 맛이라니... 그러나 무엇보다 깨물면 새콤한 즙이 감도는 신 사과의 맛은 얼마나 근사하던지. 단맛이 강해서 몇 조각만 먹으면 질리던 부사와는 달리 어릴 적 맛보던 빨간 홍옥의 달콤 새콤한 맛과 아삭한 질감이 기억나는 한 해의 첫 사과. 일 년 내내 저장고에 보관되어서 부석 해진 사과의 상큼함이 몹시 그리워질때쯤 나오는, 그 해의 뜨거운 햇빛과 바람으로 영근 아직 설익은 듯한 푸른듯한 연둣빛 사과의 자태. 나는 아오리 사과를 사랑하게 되었다.
청춘기를 보낸 그 도시를 떠나 새로운 곳에 둥지를 틀게 되면서 H와의 연락은 끊어졌다. 아이들을 키우며 일하느라 잊고 살았는데 근처에 사는 그와 동기인 다른 후배가 소식을 전해주었다. H가 의대로 편입을 했다고. 해내었구나..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그사이 의대과정을 마치고 인턴 수련차 우리 집 근처의 대학병원에 근무하게 되었다는 H의 전화를 받았다. 반갑게 만나 우리 집에서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만남 이후로 헤어진 우리가 서로 만날 기회는 오지 않았다. 서로가 너무도 바쁜 삶의 시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났다. 노년의 시간이 준 여유 탓인가. 올여름 마트 매대에서 첫 아오리 사과를 본 날 문득 H가 생각났고 나는 그 기억을 메모장에 짧게 기록해 두었었다. 젊은 날의 그리움이 담긴. 떠오르는 몇몇 사람들과 애틋한 그 시간을 떠올리며.
시골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예전에는 자주 다니던 길이었지만 역사가 먼 곳으로 이전하고는 다니지 않는 여정이었다. 기차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러 도착한 터미널에서 남은 시간 무심히 주변을 돌아보다가 한 건물의 외벽에 부착된 병원 광고판 사진 속 의사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눈빛이 너무 낯이 익었다. 비록 푸른 수술복을 입고 수술용 현미경을 부착하고 마스크를 쓰고 있어 눈밖에 보이지 않지만 순수함이 가득한 그 눈빛은 내가 기억하는 누군가의 얼굴이다. 순간 입에 맴돌며 금방 기억해내지 못한 이름을 천천히 기억해 내었다. 그의 이름과는 연관이 없는 병원 이름이었지만 다시 보아도 아는 이의 눈빛이어서 다시 인터넷으로 병원의 정보를 찾아보았다. 역시 H였다. 인터넷으로 둘러본 그의 병원. H는 그 이십여 년 동안 사람들에게는 존경받고, 사람들을 아끼는 멋진 의사로 성장해 있었다.
낡은 옷차림을 하고 있었어도 가슴속 순수한 열정이 남달라 보이던 감추어진 보석 같던 청년이 꿈을 현실로 이루어낸 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흐뭇한 일이어서 나는 기쁜 마음으로 한참을 그곳을 바라보았다.
글 쓰는 노년의 느리게 흐르는 시간은 여러 번 여름마다 첫 사과를 집어 들면서도 흘려보냈던 풋풋한 청춘의 한 부분을 한꺼번에 수면 위로 진하게 끌어내 주었다.
아오리 푸른 사과처럼 조금은 시어도 향기롭던 나의 젊은 시간들. 실현하기에 참 먼 꿈이어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키워나가던, 아름다운 청춘을 바라보며 함께 한 시간은 나에게도 스스로를 단련케 하는 큰 힘이었다. 비록 꿈을 이루지 못하였어도 나 역시 당시 그들과 함께 꿈꾸는 청춘이었을 것이다. 이제 내 이루지 못한 꿈들은 낡은 흑백 사진첩 속 사진들처럼 바래어버렸지만 같이 꿈꾸던 후배의 순수한 꿈은 꿋꿋한 이십 대의 힘을 간직한 채 여전히 진행 중임을 나는 보았다. 그 우연한 해후의 순간에.
거울 속 내 얼굴을 돌아본다. 성장을 향한 동기를 버리지 않고 이 노년의 시간을 살아야 할 텐데... 조금씩 자리 잡아가는 주름살이 굵게 고랑을 이루더라도 보기 좋게 어울리는 그런 모습으로 남아 있어야 하는데...
지금의 내 꿈은 아주 소박하다. 소중한 인연들과 다시 얼굴 마주 보며 이야기할 '아주 오랜만의 만남'의 시간이 다시 온다면, 아니 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 만남의 시간에 부끄럽지 않은 나의 모습이면 좋으리라.
그렇게 노년의 시간을 채우는 꿈은 아주 자그마하고 소박하고, 그꿈을 꾸는 시간은 평화롭고 느긋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