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성운 Jun 29. 2018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A Brighter Summer Day, 1991

* 2017년 12월 1일에 작성한 글입니다.


3시간 57분 동안 영화를 봤다. 인터미션을 포함하면 10분이 더 붙는다. 원래 지난 주말의 표를 예매해두었는데, 늦잠을 자는 바람에 15000원을 허공에 날려버렸다. 지갑이 넉넉한 편은 아니기에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없어진 게 못내 아쉬웠다. 그러다 월요일, 수업을 듣던 중에 무작정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급히 표를 예매하고 수업이 끝나자마자 압구정으로 뛰어갔다. 간간이 비어있던 자리들은 정각이 되어 모두 메워졌다. 각자의 장소에서 부리나케 달려왔을 백 명의 사람들과, 함께 앉아서 영화를 봤다.

영화는 아름다웠다. 1959년의 대만은 아름다웠다고 적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나는 샤오쓰의 눈으로 그를 둘러싼 세계를 바라보았다. 호흡은 느렸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몇 번 웃기도 했다. 인터미션이 시작되자 지상으로 올라와 보리차를 샀다. 아마도 같은 영화를 보고 있었을 서너 명의 사람들과 골목에서 담배를 피웠다. 모두가 시간을 흘끔거리는 눈치였다. 한 장면을 놓치기가 아까워서 우리는 간격을 둔 채 줄지어 내려갔다.

후반부는 전반부와 달랐다. 하나의 영화를 구태여 두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건 이상한 일이겠지만, 분명 다르게 느껴졌다. 밀도나 빠르기에 관한 얘기가 아니다. 나는 세계를 바라보는 샤오쓰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점의 회전이 언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몇 걸음의 거리를 두고 소년의 뒤를 쫓았다. 소년이 비틀거리다가 멈출 때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와 함께 영화도 멈췄다. 다시 지상으로 올라와 같은 장소에서 담배를 피웠다. 그때 나는 샤오쓰와 밍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밤의 골목은 조용하고 차가웠다. 

지하철을 타고 돌아가는 길에 왓챠를 켰다. 제목을 입력하면서 잠깐 주저했지만 관성이 나를 이겼다. 몇 점을 줘야 하지. 영화를 보고 나서 여운이 강하게 남지는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4점을 주었다. 다음날 다시 왓챠를 켰다. 손톱 크기로 줄어든 포스터 옆에는 내가 <토르: 라그나로크>에도 4점을 주었다고 나와 있었다. 별 반 개를 더 올렸다. 다시 이틀이 지났다. 영화에 대한 글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5점을 주었다.

별점 제도는 많은 경우에 유용하다. 그러나 가끔씩, 이처럼 무력함을 느끼게 하는 영화를 만날 때가 있다. <사울의 아들>이 그랬고 <아무도 모른다>가 그랬다. 내가 이 영화들을 10년 이내에, 어쩌면 평생 다시 집어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1점이나 5점을 준다고 해도 영화 위에는 아무런 의미가 더해지지 않는다. 별점을 철회하지 않은 건 순전히 왓챠라는 서비스에 대한 직업적인 애정 때문이었다. 

그래, 나는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지 않다. 물리적인 길이 때문이 아니다. 누군가의 인생을 두 번 반복해서 지켜보는 일이 너무 힘겨워서, 단 한 번 존재했다가 사라져야 마땅할 대화를 되살려내는 일이 너무 이상해서 그렇다. 소년이 사라진 공기 속에 혼자 남겨지는 건 한 번으로 충분하다. 그러는 대신 나는 이제 <하나 그리고 둘>을 봐야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