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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운 Jun 29. 2018

하나 그리고 둘

A One And A Two, 2000

몸이 아파서 오래 잠들었다. 예매해둔 영화가 있어서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환승을 한 번 놓치는 바람에 5분을 지각하고서야 1999년의 대만에 도착했다. 나무가 울창한 여름이었다.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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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지나치게 시끄럽고 제멋대로여서, 나는 종종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허공을 떠도는 유령처럼, 사람들은 쉽게 울었고 쉽게 분노했고 쉽게 웃었다. 그러면 나도 어영부영 그들을 따라 눈물을 흘렸고 핏대를 세웠고 소리내어 깔깔거렸다. 가끔 박자를 놓칠 때면 겸연쩍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인간 실격>의 첫 문장은 더없이 나를 위한 문장처럼 여겨졌다.  


친구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가 대상에 따른 적정 거리를 재두기 시작한 건 오래 전의 일이었고, 친구들의 경우에는 그 거리가 보다 가까웠다. 그러나 그들이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나의 마음속으로 틈입해 들어올 때면,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이물감에 애를 먹고는 했다. 무례하지 않을 정도로 조심스럽게 적정 거리를 유지할 방법을 찾았다. 다행히도 마음의 경계에는 회복력이 있어서, 시간이 지나면 원래의 자리를 찾아 돌아갔다. 비로소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내 주위에는 따뜻한 사람들의 수가 점점 늘어났다. 그들이 보여주는 호의는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그들이 내민 손을 잡는 게 두려워서는 아니었다. 손을 잡고서 마주 흔들어야 할지, 언제쯤 놓아야 할지를 판단하는 일이 너무나 어렵게 느껴졌다. 일단 잡고서 생각해보자, 하며 손을 잡는 순간에도 끊임없이 계산은 이루어지고 있었다. 부끄러울 뿐이었다. 내가 먼저 손을 내미는 일은 없을 거라는 사실을, 어쩌면 그들도 눈치채고 있을 것 같았다.


부끄러워서 도저히 견딜 수 없어질 때, 나는 도망쳤다. 도망칠 곳은 한 군데밖에는 없었다. 나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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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 안의 사람들은 빛을 냈다. 건너편으로 들여다보면 어렴풋한 실루엣이 보였다. 재회한 연인은 손을 잡았다. 소년과 소녀는 데이트를 시작했다. 말이 없어진 아이는 카메라를 들고서, 사람들의 뒷모습을 찍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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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하던 어느 무렵에,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주인공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더 이상 도망치고 싶지 않다는, 이른바 단호한 결심에서 출발한 건 아니었다. 그냥 쓰고 싶었고, 어떤 자신감에서인지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야기의 소재는 노력하면 찾을 수 있는 법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문장을 엮어내는 힘이 있다. 단지 1인칭에서 3인칭으로 중심을 살짝 옮기기만 하면 되는 거라고, 크게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전부였다. 1인칭에서 3인칭으로 옮겨가는 일. 단지 곱하기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간단히 해결되는 일이 아니었다. 0에서 1을 만들어내는 일을, 하나의 세계를 무너뜨리고 다시 세우는 일을 두 번이나 해내야만 했다. 견고한 마음의 벽을 스스로 깨뜨리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건 염소가 단단한 소금 결정 밖으로 탈출하는 것만큼이나 어렵게 느껴졌다.


자주 헤매고 의심했다.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이야기를 쓸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면서도 더듬거리며 나아가는 일을 멈추지는 않았다. 극점의 힘에 이끌리기라도 하듯 비척대면서라도 걸었다. 가여워서 그랬다. 반쪽짜리 이야기 속에 갇혀버릴 사람들이 가여워서, 그대로 굳어버리도록 내버려두는 게 미안해서 필사적으로 길을 찾아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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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회한 연인은 다시 헤어졌다. 첫사랑은 실패했다. 산더미처럼 많은 이야기를 껴안고서, 모두는 제자리로 돌아왔다. 자연광 속에서 사람들은 온전하게 보였다. 아이는 공책에 적어두었던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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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대본에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 넘쳐.


누군가가 말해줬을 때, 나는 이상하게도 쑥스럽지가 않았다. 그런가요, 고맙습니다 하며 잠깐 손을 잡았다가 늘 그랬듯 다시 밖으로 밀어낸 것도 아니었다. 그 말은 마음의 선을 허물고 들어왔다. 원래부터 그곳에 존재했던 것처럼, 익숙하게 자리 잡았다. 이물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 뒤로 무언가 이야기를 써내려고 할 때면, 자꾸만 그 말을 의식하게 되고는 했다. 머릿속으로 '아, 나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 담긴 이야기를 써야 해' 라며 되뇌는 것은 얼마나 민망한 풍경인가. 나는 민망해하는 스스로가 우스워 계속해서 킥킥거렸다. 노트북의 화면은 그대로 비어있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그 문장에서 벗어나고 싶지가 않았다. 이야기가 써지지 않는다면 기다리면 될 일이었다. 그건 어떤 족쇄나 제약 같은 게 아니었다. 축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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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을 나와 명동을 걷는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걸어다니고 있다. 문득, 사람들에게서 빛이 나는 듯한 착각이 든다. 주변을 둘러싼 공기 속에 생각 하나가 도착했음을 깨닫는다. 삶은 아름다운 거야. 생각을 들이마시며 누군가가 해줬던 그 말을 다시 떠올린다. 따뜻한 영화를 만들자. 불행은 도처에 있고 세상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쓸쓸하지만, 가냘픈 희망이 한 줄기 존재하는 이야기를 쓰자. 무엇보다 이 영화를 한 번 더 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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