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대목>을 찾아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책을 읽는 법

by 손콩콩

국문학도 시절의 일이다. 주제가 정해진 다섯 장짜리 레포트도 힘든데 주제부터 내 손으로 정해야 하는 소논문이 과제로 주어졌다. 당연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미 너무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영역은 피해야 했다. 방대한 자료들을 다 찾아보고 정리할 각오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자고로 논문이란 참신성이 생명이랬다. 비슷한 기존 연구가 없으면서도 내가 소화할 수 있는 만큼의 자료가 있는 주제를 골라내는 것이 첫 번째 미션이었지만 그런 안목이 내게 없었다.

좁혀지지 않는 주제의 늪에서 나는 <삼대목>을 생각했다. <삼대목>은 삼국사기에 책에 관한 기록만 있고, 지금은 전하지 않는 향가 모음집이다. 신라 역사 천 년 동안 불려졌을 수많은 노래 중에 왕실이 추려낸 작품들이니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발견만 된다면 한국 문학사는 물론 어쩌면 세계 문학사에도 의의가 클 사건이겠지.

<삼대목>은 어디에 있을까. 정말 영영 사라졌을까. 어디 깊은 산사 석탑 아래 묻혀 1,200년 동안 잠들어 있지는 않을까. 가치를 모르는 누군가에게 누더기일 뿐이라 이미 세상에 나와있지만 알아보지 못한 건 아닐까.


공부하기 싫을 때 시작되는 모든 일이 그렇듯 딴 생각은 끝날 줄을 몰랐다.

<삼대목>을 내가 발견한다면 소논문 고민은 안해도 될 텐데. 교과서에 실릴지도 모르는데 소논문이 다 무어야. 소박하기는. 트로이 목마를 발견한 고고학자처럼 국문학사 어딘가에 내 업적이 남는다면 정말 재미있겠군.

돌이켜보면 소논문 주제 하나도 못 찾는 내가 <삼대목>을 알아볼 리 없고, 알아본다 해도 그뿐, 문학사적으로 가치 있는 연구를 할 수 없을 텐데도 상상은 즐거웠다.




최근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법> 이라는 책을 읽었다. 읽지 않은 책의 예로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론>이 등장했다. <희극론>은 현존하지 않고 그래서 누구도 읽을 수 없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다른 저작과 역사적 기록들에 비춰 짐작이 가능한 텍스트로 소개된다. 그 짐작을 소재삼은 소설이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다.

이러라고 쓰신 책은 아니겠지만...


그 장면에서 <삼대목>이 떠올랐다.

‘에코에게 <희극론>이 있었다면 나에게는 <삼대목>이 있지!’

나는 곧 노트를 열고 논문 표절 의혹으로 위기를 맞은 주인공이 고향인 안동의 봉정사에 갔다가 오래된 책 이야기를 듣는 장면을 써 내려갔다...는 건 거짓말이고 있지도 않은 책을 가져다 소설을 완성한 에코를 마냥 우러러 보았다. <삼대목>을 찾아 아니 그냥 정말 우연찮게 내 발 앞에 떨어진 걸 주워서 팔자나 고치려 했던 나는 정말 하찮구나.

<삼대목>이란 소스는 여전히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른다. 나도 못찾겠지만 너도 당연히 못찾고 그래서 더 많이 상상하는 만큼 <삼대목>은 내 것이 된다. 안타깝게도 늦게 태어나는 바람에 <희극론>을 에코에게 빼앗겼지만 <삼대목>은 빼앗기지 않기 위해 이렇게 글을 쓴다.

<삼대목> 내꺼! 퉤퉤퉤!


*이 글은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 말하는 법>에서 배운 방법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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