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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ze Feb 04. 2024

우리 인생에 바람을 초대하려면

환승연애를 포기하고 떠난 진짜 바람 

입춘이 오기 하루 전, 마지막 겨울을 누리기 위해 새벽 3시에 일어나 태백산으로 떠났다. 금요일 오후 갑자기 잡힌 상고대 탐험은 내가 열어둔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드나들게 만들었다. 


<우리 인생에 바람을 초대하려면>의 작가 파스칼 브뤼네르는 '스마트폰은 우리에게 분주함을 제공하면서 그 분주한 표면 이면의 진짜 세상을 경험할 필요는 제거한다'고 말한다. 진짜 사건은 '자신을 벗어나는 경험'이다. 내 손 안의 스마트폰 안에 있는 세상을 안전하게 만나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진짜 낯선 세상을 마주치고, 자기의 신체와 삶이 변화해 나가는 과정을 경험하는 것. 바람은 촉각적인 경험이다. 유튜브와 넷플릭스에서 시청각의 경험은 할 수 있지만, 촉각적인 경험은 할 수 없다. 그러니 현대인에게 가장 인간적인 경험이란, 아마 촉각적인 경험일 겁니다.


날씨가 추워지면 창문을 꼭꼭 닫게 된다. 등이 뜨끈해지는 매트를 산 뒤로 침대 속이 배로 포근해져 나의 탐험심이 자꾸 쪼그라드는 기분이 들었다. 침대 속에서 환승연애 보는 주말 말고, '겨울'을 만나고 싶었다. 3시에 일어나니 축구를 보겠다고 깨어있던 남편이 우리나라 4강 갔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다시 끌어안고 자고 싶은 맘을 뒤로하고, 두꺼운 털모자를 챙겼다. 엄마와 이모를 만나 잠시 눈을 붙이니 벌써 차가 빼곡하게 들어찬 태백산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이미 '진짜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도착해있던 것. 라면과 김밥을 든든하게 먹고, 옷을 정비하고, 스패치를 차고, 등산화에 핫팩을 넣고 출발했다. 뽀득 뽀득 흰 눈을 밟는 기분, 콧 속으로 시원하게 들어오는 맑은 공기, 상쾌한 바람, 저 멀리 보이는 노루와 상고대. 


모두 침대에선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것들이다. 오르막길이 가파른 길이어 숨이 찼지만 심장이 뛰고, 땀이 나는 감각에 오히려 살아있음을 느꼈다. 패딩도 더워져 옷의 레이어를 정돈했다. 겨울 산행은 부지런해야 한다. 귀찮다고 더운 걸 참거나 추운 걸 참고있으면 안된다. 체온과 바람에 따라 부지런히 입고 벗어야 탈이 안난다. 아이젠을 차고, 한참 올라가니 주목 위에, 쭉쭉뻗은 나무 위에 상고대가 보이기 시작한다. 발왕산, 덕유산에 이은 세번 째 상고대 탐험. 장군봉을 지나 태백산 정상석까지 몽환적인 겨울숲을 지나 1566m에 올랐다. 바람을 피해 조금 내려와 눈쌓인 나무 아래에서 고구마스프와 누룽지, 커피로 몸을 덥혔다. 바람이 불 때마다 눈에 머리 위로 쏟아졌다. 사진첩엔 활짝 웃는 나만 가득했고, 5시간 동안 사진 찍는 것 외에 핸드폰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집에서 릴스 그만보자고 다짐만 할 게 아니라 '바람을 맞으러 떠나자고'. 뜨끈한 침대 속에서 안전한 세상만 힐끔힐끔 쳐다보다가는 진짜 바람을 놓치고 만다고! 


바람을 초대할 수는 없지만 창문은 열어두어야 한다. 진짜 비극은 '삶의 피로'로 어느 날 사랑하고 욕망하기를 멈추는 것이다. 진짜 삶은 내 몸이 겪는 진짜 경험 속에 있다. 그렇기에 진짜 경험을 삶에 초대한다는 건, 삶에 바람을 초대하는 일일 겁니다.


우리는 자주 그런 경험을 한다. 누군가가 여행을 떠난다고 하면 '거기좋대' 

이어서, 거기 가봤냐고 물으면 '인스타에서 봤어. 좋다던데' 라는 흐름의 대화. 

이제는 정말 그렇다던데, 인스타에서 봤어. 말고 진짜 나의 경험을 나누자. 

내가 가봤는데, 내가 먹어봤는데, 내가 느꼈는데. 로 시작하는 대화를 하자. 


일기장에 쓴 주말의 일기와 롱블랙에서 만난 글 <우리 인생에 바람을 초대하려면 : 슬리퍼를 벗고, 스마트폰을 내려놓자. >의 이야기가 연결되는 지점에 반가운 마음으로 남겨보는 오랜만의 글. 


다가오는 봄에는 진짜 경험을 더 자주하고, 작가의 서랍을 더 자주 꺼내야지. 

그리고 이번 주말의 진짜 경험은 보정도 하고 싶지 않아 날 것 그대로 기록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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