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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ze Apr 11. 2021

우리가 막걸리를 만들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는 거야.

호비클럽 파일럿 시즌 : 막걸리 플렉스

원래 호비 클럽의 계획은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따라 3개월 시즌제로 운영하려는 계획이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조심스러운 시작이었다. 오프라인에서 모이는 모임을 크게 진행할 수가 없었다.


우선 인스타그램을 오픈하고, 어느 정도 가늠을 해보기 위해 파일럿 프로그램을 진행해보기로 했다.

이 모든 게 우린 다 처음이었기에 하나도 알 수가 없었다. 어떤 사람들이 우리 주위로 모일지 궁금했다.


그나마 내가 해본 경험은 크리에이터 클럽 3 시즌을 함께 하며 메이트를 해본 경험, 그러한 커뮤니티를 찾는 사람들의 성향을 가늠할 수 있는 것, 우리가 말하는 가치를 찾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 일지 예상해보는 것, 주변에 어떤 것들을 해보고 싶은지 물어보는 것이었다.


정규 봄 시즌을 조금 미루고, 4월 인스타그램 계정을 오픈했다.



hobbyclub pilot season,

makgeolli flex



첫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무엇을 할까 엑셀에 좌르르 하고 싶은 목록을 적었다.

봄이 찾아오는 이런 날씨에 술이 빠질 수 없었고, 리틀포레스트에서 술을 만드는 장면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우리 셋 다 막걸리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새롭고, 귀여운 걸 좋아하는 우리는 새로 생겨나기 시작한 막걸리 주조장의 귀여운 막걸리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그렇게 첫 프로그램으로 '막걸리 플렉스'를 시작했다.

무엇보다 내가 막걸리를 너무 만들어 먹어보고 싶었다. 상상만 해도 즐거웠다.

코로나로 크게 진행할 수 없었기에 소수의 인원만 받기로 했다.


나의 취향을 찾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막걸리를 공수해서 맛을 보고, 직접 막걸리를 만들고, 한강에 가서 발효시킨 각각의 막걸리에 취향을 더해 맛보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막걸리를 찾아보다 보니 세상엔 먹어보고 싶은 술이 너-무 많았다.

신선하게 느껴지는 주조장에서 나오는 새로운 막걸리를 찾아 조사를 하고, 어떤 점이 다른지 공부해서 최대한 다양한 스펙트럼의 막걸리를 준비하려고 노력했다.

 

막걸리의 차이점을 소개해줘야 하니 막걸리가 만들어지는 기존의 방식과 우리가 소개하는 막걸리의 방식은 어떻게 다른지를 알아야 했고, 공부하다 보니 “아 이래서 숙취가 쩌는거였구나.” 싶었다. 장수막걸리가 최고인 줄 알았던 나의 막걸리 세계에 온갖 맛있는 막걸리가 침투해버렸다.


우리가 고른 막걸리는 총 10종이었다. 도수도 5.23도부터 11도까지 다양했고, 바디감도 라이트한 것부터 무거운 바디감을 가진 술까지. 그리고 기본에 충실한 슴슴한 맛부터 홍차와 히비스커스를 넣은 독특한 종류까지 다양하게 공수했다. 구할 수 있는 루트가 모두 달라서 주조장에 직접 전화해서 배달받은 것도 있었고, 송명섭막걸리는 도매밖에 하지 않아 도매를 판매하러 회사 근처에 오신 분에게 달려 나가 급하게 사 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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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고른 10가지의 술이다. 


술공방 9.0 : 무 아스파탐. 옛 막걸리와 가장 흡사.
편백숲 산소막걸리 (청산녹수) : 산림욕을 느끼듯 o2 잔뜩 느끼라고 5.2도.
호랑이 생 막걸리 : 무 아스파탐. 15일, 30일 , 60일의 맛이 모두 다름.
호랑이 배꼽 막걸리 : 호랑이형상을 닮은 평택의 쌀과 물로 만들었고, 와인을 만드는 기법으로 100일 이상 숙성시킴
걍즐겨(dok 브루어리) : 히비스커스를 섞음
뉴트로(dok 브루어리) : 홍차를 넣어 밀크티 맛이나고, IPA맥주를 만들듯 드라이호핑 방법을 써서 윗물은 IPA 맥주같음
토란막걸리 (시향가) : 토란을 재해석함.
도깨비술-7도/9도/11도 : 밤이 되면 술파티를 열고, 날이 밝으면 사라지는 도깨비의 느낌을 담음.
느린마을  : 무 아스파탐
송명섭 막걸리 : 전북무형문화재. 송명섭 장인이 직접 지은 쌀, 밀, 누룩, 물 말고 아무것도 안들어감.


나루 생막걸리는 아쉽게 도전하지 못했고, 운곡도가와 복덕방이라는 막걸리 가게도 꼭 가고싶어서 저장해두었다.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막걸리만 먹으면 머리가 아프고 숙취가 심했던 이유는 ‘아스파탐’ 때문이었다는 것. 아스파탐이라는 건 설탕의 200배 정도 단맛을 내는 용도로 보통 막걸리의 단맛을 내기 위해 사용되는데, 우리가 이번에 준비한 막걸리는 대부분 무 아스파탐으로 자연발효시킨 막걸리들이었다. 내가 별 생각없이 접하던 것들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너무 재밌다. 배운다는 게 인생의 해상도를 높인다는 게 이런의미였나 보다. 

알면 알수록 재밌고, 알수록 보이는 게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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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즌인데 신청이 꽤 많이 들어왔다. 봄 날씨에 적절한 10종의 막걸리 제안과 막걸리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나 보다. 역시 이 날씨에 술은 빠질 수 없지. 첫 프로그램은 총 14명이 함께 하게 되었다. 


북아현동 카페 앞에 막걸리로 환영을 해주고, 안에는 리틀 포레스트를 틀어두었다. 우리를 슬쩍 본 윤영이 엄마가 오늘 유난히 지혜가 신나 보인다고도 했다. 진심으로 너무 들떴다. 우리가 무언가를 뚝딱뚝딱 만들고, 준비해서,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날이니까.


호비 클럽에 대한 소개도, 우리가 공부하고 준비한 프로그램도 모두 다 너무 기대되었다.

처음 만나는 14명이 모여 간단하게 서로의 소개를 하고, 호비 클럽도 소개했다. 각자의 취미는 무엇이고,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막걸리 시음회와 제조가 시작되었다.



막걸리마다 설명과 함께 간단하게 시음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막걸리 시음지에 단맛과 바디감을 체크해서 나의 취향을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도록 했다.

 

정말 모든 사람의 취향은 다 같지 않았다. 나는 송명섭 막걸리와 뉴트로가 가장 좋았는데, 어떤 이는 9도에 달하는 술공방이, 어떤 이는 호랑이생막걸리가 가장 좋았다고 했다.


이 시간이 아니었으면 내가 그런 맛을, 저 술을 좋아하는지 알지 못하고 장수막걸리만 한 평생 먹었을 텐데 이 시간을 통해 ‘저런 맛이 있고, 내가 저걸 좋아하는 구나’를 알 수 있어 좋다고 했다. 나 또한 그랬다. 내가 이런 맛을 좋아하는지, 이런 술 취향인지 조금 더 알아갔다.



어느덧 10병의 술을 모두 비우고, 직접 막걸리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우리가 사용한 건 느린마을 양조장의 막걸리 키트였다. 만드는 법은 사실 정말 간단하다. 맑은 물에 준비된 누룩과 효모, 쌀가루를 붓고 잘 흔들면 끝. 중요한 건 뚜껑을 세게 닫지 않는 것이다. 발효될 때 나오는 가스로 통이 부풀어 오르는데 이때 공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면 모두 터져버리고 만다. 우리 멤버의 절반은 막걸리가 터져버렸으니 이건 정말 중요한 단계다.


그리고 나만의 술에 이름을 지어 네임택을 붙여주고, 호비 클럽 굿즈로 준비된 스티커로 커스텀했다.

그날 북아현동에서는 이런 술들이 탄생했다.


행복하주, 행복해지술, 취한다리, 한잔더, 이다술(이름이 다슬이다.), 조현술(이다술을 따라했다)



막걸리 발효에는 5일의 시간이 걸린다. 5일 동안 가만히 방치하면 안 된다. 매일 같이 저어주고, 신경 써주어야 한다. 중간중간 뚱뚱해진 막걸리 뚜껑을 느슨하게 해주지 않으면 뻥하고 터져, 엄마의 등짝 스매싱을 맞을지도 모른다.


5일이 지나면 한 번 걸러줘야 한다. 그러면 정말 진한 막걸리 원액이 나오는데 원액을 먹어보는 건 처음이어서 맛있게 느껴졌다. 그 원액에 원하는 도수대로 물을 섞어주면 끝.



5일간의 발효가 끝나고 각자의 술을 들고 한강에 모였다. 유자청과 레몬청을 타서 마셔보기도 하고, 그대로를 마셔보기도 했는데 신기한 건 같은 방법으로 만들었는데 모든 술의 맛이 달랐다는 것. 사람의 손을 타서 그런 걸까. 환경이 달라서 그런 걸까. 둘 다겠지?


맛이 뭐가 중요하겠어. 내가 막걸리를 만들 줄 아는 어른이 되었고, 선선한 여름밤 한강에서 ‘내가 만든 막걸리’를 먹었다는 게 중요하지. 멤버 중 한 명은 바로 그 막거리를 들고, 등산을 가서 마셨다는데 얼마나 좋았을지. 그 사실만으로 기분이 끝내주게 좋았고, 우리의 세상은 더 넓어진거다.

-


호비 클럽의 첫 파일럿 프로그램 이어 부족한 점도 많았지만, 정말 다양한 세상의,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그들의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우리는 그때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얘기를 정말 많이 나누었고, 여전히 우리가 함께 좋아하는 달리기를 할 때는 런데이 앱에서 응원의 박수를 날려주기도 한다.

맛있는 막걸리를 먹을 때는 단톡 방에 알려주기도 하고, 새로운 막걸리를 경험할 때는 함께 공유하기도 한다.


‘막걸리’라는 하나의 주제로 생각나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거,

새로운 막걸리를 더 탐험해보고 싶어 졌다는 거,

세상엔 내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라 나를 더 크게, 많이 웃게 할 것들이 정말 정말 많다는 것.


호비 클럽의 첫 파일럿 프로젝트가 나의 봄과 초여름을 깊고 진하게 기억하게 했다.


초여름의 막걸리 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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