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칸의 후예
August 11, 2012 · Seoul ·
새벽 2시반 , 어디선가 이 새벽에 어울리지않을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리고있다.
레지던트 한명이 통역사두명과 장모님, 산모, VIP아빠 - 그리고 늘씬하고 세련된 중년 초입의 여자- 'big boss' 라고 불리는- 에 에워싸여 한시간동안 청문회를 열고있다.
여기서는 레지던트가 청문회 대상이다.
이제까지 있었던 일을 순차적으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PM 9:00
방금 출생한 이 아가는 VIP(정치인ㅡ 몽골의 야당쪽)의 아가이다. 그러니까, 몽골에서 온 VIP 인데, 엄마 아빠 다 워낙에 노산이라서 그런것인지 태내의 감염때문인지 만삭아임에도 불구하고 폐성숙도가 좋지 않았다. 만삭아들에게 잘 오는 TTN (일시적 과다호흡증후군 Transient tachypnea of newborn)이라 생각했으나 생각보다 그 증상이 좀더 오래갔다.
Term RDS (드물지만 만삭아임에도 폐가 미성숙하여 미숙아처럼 호흡곤란이 있는 질환) 일 수도 있지만, 아가의 폐사진이 나쁘진않아서 일단 산소 보조치료를 해주며 기다려 보았다.(TTN의 경우엔 산소보조치료만으로도 시간이 가면 좋아질 수있다.)
출생후 아가가 호흡이 빨라 산소 보조치료를 해야한다는 설명을 하기위해 보호자를 불렀더니, 이 몽골에서 온 손님이 =아가의 아빠ㅡ성이 나서 신생아집중치료실에 달려온다.화가 난다는 몸짓을 할때마다 금반지와 금시계,금 목걸이가 번쩍거렸다.
PM 11:00 ,몽골 통역사를 통한 전화설명 :
그러나 두 세시간이 지나도 아가는 산소치료만으로는 잘 반응하지않고 호흡이 빨랐다. 아무래도 약한 세팅으로 인공 호흡기를 다는것이 좋을것이라고 판단하고 이를 설명하기위해 전화하였다.
< 아가가 산소만으로는 반응이 빠르지않아 인공호흡기를 달아야하며,그럼에도 약과 호흡기 치료를 병행하면서 좋아질수 있다>는 요지의 전달을 위해서였는데 수화기 너머로 화가난 남자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통역사의 말을 빌자면,
"뭐!아기가 더 안좋아졌다구?몰라!죽이든살리든맘대로하라그래!" (굉장히 길게 화를 내고있었는데 아무래도 통역사님이 좀 걸러내어 전달해준듯하다)
PM 11시30분 : 다시 내려와 대면 상담
듣고싶지않다던 아빠는 마음이 바뀌어 내려와 설명을 다시 해달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다시 설명하고있고 통역사들이 엄마(산모)에게 전달한다 .
정작 성이나서 내려온 아빠는 듣고싶지않다며 뒤의 소파에서 나를 노려보며 알아들을 수 없는 몽골어를 중얼거리고 있는데 몽골어를 몰라도 그것은 (씨x ,개xx와 같은 ) 욕임이 아주 분명해보였다.
AM 2:30
다시 nICU 에서 콜이 와 쪽잠을 깼다.
"선생님,어쩌죠? 오늘 바빠서 넘 피곤하실텐데.. 아깐 듣고싶은 마음이 없어 안들었는데 궁금해졌으니 다시 설명해달라고 nicu앞에서 안가고 진치고기다리고 있는데.."
전화하는 간호사도 내게 미안해서 어쩔줄을 모른다.
"네..알겠어요. 제가 설명 다시 해드릴께요."
무거운 눈을 뜨고 전화기를 내려놓는다.
내가 다시 설명을 해준대도 아빠가 VIP여서는 절대로 아니다. 단지 타국에서 온 환자들에겐 더 설명을 해드려야
타국에서 왔다는 불안감을 상쇄할수 있다고 생각하기때문이다. 이때문에,베트남,필리핀,캄보디아,몽골.중국,미국...등지에서 온 보호자들에게 나는 더 설명을 드리곤했다.
그러나 지금 이 새벽엔 어떨지 모르겠다.
아빠의 말 (통역사가 통역해줌)
" 내가, 정치하다가 20년동안 감옥살이도해봤고 내 팔이나 목이 잘려도 두렵지않지만 내 아기가 아프다는건 내 심장이 떨려 미치겠다 .내가 늦게 나이들어 가진 자식이다. 한국까지 와서 이렇게된건아닌가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고 또 화난다 . 내가 대통령실까지 전화하고 대사관에도 전화했다 . 아깐 당신에게 욕해서 미안하다. 내가 성격이 원래 다혈질이다. 미안하다. 새벽에 잠도 못자게하고 불러내서.내가 이사람들 너무 걱정이되서다불러냈다. 저사람도 몽골에서 젤좋은한국인호텔 주인인 내친구아내다.빅보스지...그런데내가너무걱정이되서 (이 새벽에) 다 호출했다.
(딸깍)음료수 이거마셔라(뚜껑못열고있는 레지던트가 만지작거리던 음료수대신 뚜껑딴 음료수를 주며)
좋은인연으로만났으면 내가 당신이 몽골에오면 귀빈으로 모실텐데. 잘 부탁한다".(명함을 준다.)
나는 다시한번, 만삭아도 폐가 미성숙할 수 있으며,만삭아들에게도 태어난것은 힘든 과정이다. 누구나 똑같이 적응을 하는것은 아니다. 부모님이 나이가 많은 것도 아가에게 영향을 미치기도하고, 몽골에 있었어도 아가는 똑같이 폐가 아팠을것이고, 그나마 이곳에 와서 치료를 제대로 받을 수 있기때문에 아주 좋은 선택을 한것이라고 설명한다. 이곳에 오셔서 정말 잘 하신거라고. 그리고 이러한 아가들이 상당히 많고, 대부분이 좋아져서 갈 수 있다고도 설명을 해드린다.
정말로 이 전쟁에서 아가가 질 확률은 매우 적다고.
이런저런 한참의 설명 후에, 아가가 아픈것은 병원탓도 한국때문에도 아니라는것을,그리고 이 아가의 전쟁이 그래도 승산이 높다는것을 어느정도 이해를 했는지, 아빠는 그제서야 좀 마음이 풀렸다. 어쩌면 이 아빠는 설명을 들으면서보다는 자신의 불안감을 말로 표현을 해서야 그 불안초조함을 해소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처음엔 피곤한 사람이었는데,희로애락이 다 보이는 직선적인 "정치인사"에게 곧 웃음이나버려 친근해져버렸다. 이렇게 새벽의 청문회는 웃으며 끝났다.
...물론 그 후에도 몽골대통령이 우리 병원에 전화오고,몽골대사가 직접 와서 되는데로 약을 다 써달라 아기는 어떠냐 계속 의료진을 들들 볶는 일까지 친근해지진 않았지만.
Epilogue.
아가는 무사히 퇴원하여, 예방접종을 할때마다 한국에서 받고있기에 한국에 방문을 자주 하고있다.
잘 성장하고 있다.
칭기스칸의 후예는 ,강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