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로치 감독님. 안녕하세요.
2018년 1월 12일 <EBS 금요극장>에서 보았다.
‘여기서 끝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을 때 다행히 영화는 끝이 났다. 지루해서가 아니었다. 새 출발 하려는 로비를 끈질기게 쫓아다니는 동네 건달들이 어디선가 또 나타나 로비를 괴롭힐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해서였다. 영화 마지막에 로비는 새로 마련한 캠핑카에 아내와 아이를 태우고 친구들을 포옹한 후 멋지게 떠난다. 로비의 선하고 푸른 눈빛이 기억에 남는다. 배우는 폴 브래니건.
사회봉사 교육관인 해리는 로비의 여자 친구가 출산했다는 소식을 듣고 오랫동안 보관해온 위스키를 축하주로 내놓는다. 로비에게 위스키의 맛과 향을 구분하는 재능이 있다는 걸 알고 위스키의 세계로 안내해준 인물이기도 하다. 해리는 로비와 친구들을 편견 없이 대하고 이 친구들을 자신이 좋아하는 위스키 시음회에도 데려간다. 해리 같은 사람이 사회 곳곳에 숨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은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굴러가는지도 모른다. 나쁜 방향으로 굴러가는 진폭이 커서 문제이지만. 물론 해리는 숨어 있지 않다. 해리와 같은 사람을 숨기는 건 위스키 밀 몰트 경매 현장에서 펑펑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 같은 것들이다. 사람들은 비싼 것이 더 훌륭하고 귀한 것이 되는 세상에 갇혀서 눈이 먼다.
로비가 밀 몰트 위스키를 훔치려는 계획을 세울 때 그가 또 감옥에 갈까 봐 불안했다. 아내와 아이를 잃고 나락으로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곧 ‘앤젤스 셰어’, 천사의 몫이란 바로 로비와 친구들의 몫을 말한다는 걸 알게 됐다.
로비, 알버트, 모, 라이노.
알버트는 무식한 데다 훔친 위스키 병을 어이없이 깨뜨리는 실수를 저지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내놓는 친구다. 경매 현장에 킬트를 입고 가면 의심받지 않을 거라고 했던 것도, 또 두병이 깨지고 두병만 남았으니 이 위스키는 더 귀해진 거라고 말했던 것도 알버트다. 모는 어딜 가든 작은 것이라도 꼭 훔치고, 라이노는 취해서 공공기물을 파손하는 불안 증세를 보인다. 영화는 물건을 훔치고, 공공기물을 파손하고, 사람을 폭행하고, 못 배운 것이 이들의 탓만은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어느 지역 어느 가정에서 태어났는지가 삶을 결정지어버리는 세상. 이들은 법원에서 사회봉사 명령을 받는다. 누가 누구에게 사회봉사를 해야 할까.
그저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로비와 친구들을 길에 줄 세우고 가방을 뒤지고 몸수색을 하는 경찰. 경찰은 심지어 청년들의 킬트까지 젖혀 보는 모욕까지 주고서야 차로 돌아간다. 질서를 수호한다는 그들에게 악이 깃들어 있지만 영화는 이런 장면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
갈 곳이 없는 로비와 여자 친구는 지인 덕분에 6개월을 좋은 집에서 지낼 수 있게 된다. 지인은 자신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 인생이 바뀌었다며 무언가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도움을 받았던 사람이 남을 돕는다.) 로비는 겁먹은 표정으로 “저희에게 왜 호의를 베푸는 거죠?”라고 묻는다. 아기를 품에 안은 젊은(어린) 아빠의 모습이다. 자기에겐 돈도 능력도 없다는 생각에 로비는 작아진다. 그런데 그 집마저 건달들에게 들키자 로비의 선한 눈빛이 돌변한다. 분노한 눈빛에 슬픔과 좌절이 담겨 있다. 로비가 입은 폭이 큰 트레이닝 바지가 바람에 흔들리고 풍선처럼 부푼다. 그 바지가 로비를 표현해준다. 아직 갈 곳을 찾지 못한 로비가 부유하는 이미지랄까. 캠핑카를 몰고 떠나기 전에 로비가 친구들에게 남긴 말은 “자리 잡으면 초대할게.”였다.
배우 폴 브래니건은 실제로 로비와 닮은 삶을 살아온 인물로 얼굴에 난 흉터도 형과 싸우다가 난 것이라고 한다. 연기 경험이 없는 폴 브래니건은 <앤젤스 셰어 : 천사를 위한 위스키>로 스코틀랜드 남우주연상을 탔다고 한다. 어쩌면 이 영화도 배우 폴 브래니건에게 와서 천사의 몫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로비가 처음 위스키 공장에 가서 직원에게 들었던 말을 옮긴다.
해마다 전체 술의 2%가 소실되죠.
증발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데 그걸 앤젤스 셰어, 즉 천사의 몫이라고 불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