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크리스티나 Jul 30. 2021

기다림 그리고...

눈꺼풀이 절로 감기는 강한 햇살이 내리쬐는 날, 나는 굳이 걸어서 산부인과로 향했다. 연일 푹푹 찌는 무더위 탓에 애꿎은 내 뺨은 아롱아롱 맺히는 땀방울로 붉게 물들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마음 한 구석은 혹한의 추운 겨울과 같이 차갑게 시렸다.


지난 유산의 아픔을 딛고 사랑하는 남편과 노력한 끝에 어렵게 다시 임신 테스트기에 선명한 두줄을 확인했다. 난임이란 어려운 숙제를 풀고 있는 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듯, 그 두줄이 주는 의미는 복잡다단하다. 원하던 임신을 알리는 기쁜 소식인 동시에 병원에서 임신임을 확인하고 안정기에 접어들기 전까지 온갖 가능한 위험들로 걱정만이 가득한 험난한 여정의 시작을 뜻하기 때문이다.


임신 테스트기의 두줄을 확인한 순간 내가 느꼈던 그날의 설렘은 결국 이번에도 상처로 귀결되고 말았다.


또다시 겪게 된 원치 않는 유산은 태아가 되기도 전에 원인 모를 이상으로 배아가 자연 배출된 것이었다. 이런 자연유산은 국내 임산부 5명 중 1명이 겪을 정도로 흔하다고 한다. 의사의 말에 따르면, 임신 테스트기를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는 혹은 생리가 늦어지는 것쯤으로 여길 수도 있는 것이라고 한다.


소파 수술과 같은 물리적 고통이 없는 유산이라 겪어보지 못한 이들은 감기와 같은 계절병쯤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도 모르겠다. 병원에서 유산임을 확인받고 나서도 별다른 처치가 없었으니 그럴 수밖에...


그러나 그 대수롭지 않은 일이 나와 같이 난임을 겪는 여성들에겐 너무나도 가혹한 형벌과도 같다. 산모의 잘못으로 생긴 유산이 아니라는 의사의 말에도 나는 자책과 책망으로 한숨이 그치질 않았다. 그리고 또다시 유산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지금도 하루하루 마음이 편치가 않다.


유산이란 판정을 받고 다시 자궁 상태를 확인하 산부인과로 가야만 했던 그날도 나는 무더위 속을 일부러 걸어갔다. 몸이 편하면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에 무거운 발걸음을 그렇게 옮겨야만 했다. 코로나로 인해 산부인과 문 앞에선 체온을 측정하고 QR 코드를 찍어야만 진료 접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진료실 문 앞까지 가는 길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집에서 일찍 출발했음에도 병원 안엔 긴 대기가 있었다.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있는데도 땡볕에 흐르던 땀방울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대기실엔 초기 임신부부터 배가 몸집보다 크게 부푼 만삭의 임신부까지 다양한 사람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무더위에 힘들긴 그 임신부들이나 나나 다 매한가지일 텐데 나는 태아를 안에 품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다르게 보였다. 나는 자꾸 바닥으로 추락하는 기분인데 왠지 그들은 저 높은 곳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부러움인지 질투인지 모를 뜨겁고 아픈 무언가가 자꾸 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왔다.   


내 차례가 다 되었을 때 옆에서 같이 대기하던 임신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진료실로 걸어가는 모습을 뒤에서 멍하니 바라보는데 내 눈에 그동안 보이지 않던 무언가가 보였다.


막달을 앞둔 임산부였는지 느릿느릿한 그녀의 발걸음은 힘들어 보였고, 이상하게 매우 두꺼워 보이는 그녀의 발목으로 내 시선이 멈추니 큰 슬리퍼가 꽉 낄 정도로 퉁퉁 부어버린 두 발이 보였다. 이 더위에도 그녀의 두 손목엔 손목 보호대가 있었다.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만삭의 몸은 상상했던 것보다 더 처참했다.


유산의 아픔을 겪은 나는 임신이 되기만 하면 마냥 행복할 줄만 알았다. 병원에서 만삭의 임신부를 맞닥뜨리고 나서야 임신의 과정만큼이나 결과도 얼마나 힘든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모든 진료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나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해 보았다.


이렇게 힘든데... 그래도 너는 임신이란 걸 하고 싶니?


대답은 예상외로 쉽게 나왔다. Yes였다. 왜 일까? 그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쉽게 알 수는 없었다. 아이가 꼭 필요한 가에 대한 내 평소 생각은 No인데 나는 지금 임신이 그렇게 하고 싶다. 남편과 사랑의 결실을 맺고 싶다는 말은 왠지 오글거려서 싫다. 그냥 하고 싶다. 자연스럽게 그런 마음이 들었다. 여자는 그렇게 엄마가 되어가나 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도 기억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