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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은 Mar 23. 2024

활동가와 당사자 사이에서

몸과 마음을 북돋아야 하는 주말을 맞이하였다.

어제 반도체 노동자의 자녀건강손상을 산재로 인정하는 판정이 있었다. KBS, SBS 등 언론에서 다루었다. 피해자들은 자신의 고통의 이유를 알게 되었고, 그간 노력해 준 반올림에 감사했고, 또 다른 아픔들에 이름이 붙고, 위로가 되길 바랐다.

https://www.sharps.or.kr/statement/?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18729194&t=board


당사자의 목소리, 활동가들의 고민, 언론의 역할 등이 단숨에 드러났지만, 문제를 문제로 드러내기까지는 짧게는 4년에서 길게는 17년 더 이상도 걸렸다. 그리고 그 안에 당사자들의 알지 못하는 위험, 말 못 할 고민, 드러내기까지의 망설임, 고민, 용기가 있었다. 활동가들 역시 공부하고 고민하고 토론하고, 조직하고 알리고 설득하는 과정이 있었다. 언론 역시 관점에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기자와 언론사의 역량과 용기 또는 좋든 나쁘든 어떤 의도에 따라나서는 과정도 있었다. 각 주체마다의 고군분투.


17년의 반올림의 활동을 한 줄로 설명 못하기에 그래서 이야기하는 자리마다, 주제마다, 사람마다 다르기도 하고 의미도 제각각이고, 또 그마다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마다의 애환도.


반올림 활동을 10년 조금 넘게 활동가로 있으면서, 최근 얼마간은 교육의 당사자로 사회문제에 임하면서 조금 달라진 자리를 느끼고 있다. 이 글을 시작한 출발점이다.


최근 주로 정치하는 엄마들로부터 "늘봄학교"주제로 양육자의 의견을 언론에 말해줄 수 있느냐는 요청을 주로 받는데, 될 수 있으면 응하려 한다. 당사자의 목소리가 중요함을, 거기에 출발함을 아니까.


늘봄학교는 돌봄의 공공성, 저출생, 사교육비 등의 문제를 배경으로 나왔다. 필요에비해 진행이 급작스러웠던 터에 논쟁이 아닌 논란이 크다. 조직된 양육자들이 없기에 주로 조직된 교사들의 대척점에 내 이야기가 나가곤 하거나 정부의 설익은 정책 집행을 비판할 때 쓰이게 된다.  언론인이 아니기에 내 인터뷰가 어떤 방향으로 쓰일지는 모르니, 취재 요청 시, 취재 시, 또는 기사가 나왔을 때 이후 취재원으로 내 의도가 잘 전달되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목표는 "늘봄학교의 안착, 돌봄의 공공성 강화와 여성의 돌봄 부담을 덜고 일 가정 양립을 이루기 위해.. 나아가 젠더불평등을 바로잡기 위해서" 사례와 의견을 더한다.


나의 아이는 학교를 이미 입학하여 교사의 가르침과 돌봄 속에 있으며 나는 일과 돌봄을 하며 사회의 구성원으로 바쁘게 살아가는 현재의 상황 속에서 말이다.


마치 삼성에서 일하며 노동조합을 세워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말하고자 할 때 반올림과 함께 고민을 나누고 활동하는 것처럼, 그때의 긴장과 고민 속에 좋아졌으면 하는 노동안전보건의 목표가에 다다르고자 하는 것처럼.


그럴 때 가끔은 외롭고, 가끔은 든든하고, 뿌듯하고 그렇다. 각자의 위치 속에서 서로의 반목이 목표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다 내 인터뷰가 잘 못 인용되어 내 의도와 목적과 달리 쓰여 냉소자로 비친다면, 어제처럼 난 새벽 4시 30분에 기자에게 삭제 또는 정정을 요청해야 하고, 언론의 역할에 당사자의 고민에 회의감을 느끼고 만다.


그리고 몸살을 앓아야 한다.

몸을.. 살리고 마음도 북돋아야 할 주말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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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하는 엄마들 | 성명서]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살아서도 안 된다

-116주년 3.8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하며-


�성명서 전문 보기

https://www.politicalmamas.kr/post/3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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