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끝에 남아 있는 추억의 온기
오늘 오래된 부츠를 꺼내 신었다. 몇 년 전 만나고 있던 남자친구가 사준 부츠이다. 오랜만에 그 신발을 신고 발 끝을 내려다 보니, 그 사람과 함께한 시간들이 잔잔하게 떠오른다.
우리는 헤어졌지만, 그가 내게 남긴 선물과 따뜻한 경험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그 겨울, 나는 그 부츠 덕분에 편안하고 따뜻하게 지낼 수 있었다. 오늘 그때의 포근함과 안정감을 다시 느끼니, 묘하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추억이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는 느낌이 오랜만인 것도 같다.
생각해 보면, 나는 그에게 좋은 선물을 많이 해주진 못한 것 같다. 그래도 그가 좋아하는 그림이 새겨진 옷을 선물했었다. 자신만의 취향이 있던 그 사람. 그 옷을 잘 입고 다니거나, 혹은 소중히 간직하고 있을까? 나의 작은 선물이 그에게도 나를 떠올리는 계기가 될지 한편으로는 조금 궁금하기도 하다.
그 시절 우리는 사회 초년생이었다. 아직 가진 것이 많지 않았지만, 그는 나를 위해서라면 아끼지 않았다. 나에게 좋은 경험과 웃음을 주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사람.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해주며 행복해하는 마음도 하나의 능력이라는 걸 그 사람을 보며 배웠다. 마음의 씀씀이라는 건 경제적인 능력과는 또 다른, 참 멋진 태도였다.
그래서인지 그에 대한 고마운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아마 평생 그 마음은 남을 것 같다.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 준 사람의 정성이니까. 당시에는 여러 이유로 불만을 느낀 적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걸 보면 그는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해 사랑을 표현하는 멋진 순간들을 살아낸 것 같다.
그 부츠는 여전히 좋은 신발이라 앞으로도 오래 신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언젠가 이 신발을 버릴 때쯤에는, 그를 정말로 마음에서 떠나보내는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다.
인연을 이어가기에는 확신이 없어서 내린 결론이고 아직도 비슷하게 생각하지만, 나는 그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헤어질 때 내가 말했 듯 나는 상대방에 대해 좋은 것만 기억하게 될 것 같다. 그가 이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춥지만 따뜻한 이상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