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순간에서도 그냥 해야 할 일들을 묵묵히 마땅히 해낸다는 뜻
나심 탈레브의 '행운에 속지 마라'라는 책을 읽다 보니 그 어떤 상황에서도 품위를 지켜야 된다는 말이 나왔다. 그래서 품위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전적 의미로 품위의 뜻은 직품과 직위를 아울러 이르는 말, 사람이 갖추어야 할 위엄이나 기품, 사물이 지닌 고상하고 격이 높은 인상이다.
이런 사전적 정의도 영 시원치 않아서 한자를 들여다보았다. 물건품 品, 자리 위 位, 물건이 제자리에 위치하다(?), 내가 나름 풀어서 정의하자면, 자기 자리에 제대로 위치해 있다, 혹은 마땅히 그 존재로서의 역할에 맞게 행동한다이다. 스토아 철학에서는 영웅이란 전쟁의 승패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영웅적이기 때문에 영웅으로 추앙했다. 영웅이란 행동이 영웅적이기 때문에 영웅이다. 그렇다면 내 정의도 얼추 그 그림속에 들어맞는 거 같다.
나는 품위 있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 어떤 상황이 닥쳐도 지혜롭게 살고 있는 것인가?
남편은 어제 나에게 40대 중반을 지난 지금 아직도 요양 중인 자기의 처지에 대해 한탄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이 시골 산속에 처박혀 인생 한번 펴지 못하고, 재기 못하고 이렇게 세월을 보내고 있구나'라고 말이다.
나는 남편에게 자기 자신을 너무 다그치고 몰아세우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우린 지난 세월 동안 많은 것들을 이루어냈다고 말하긴 했다. 그래 눈으로 드러나는 것은 개선된 것이 없다. 남편의 몸무게가 더 줄었고 내 주름살은 더 늘어났고 아이가 자랐다는 점 말고는 말이다. 어쩌면 지금 나는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다. 지금은 말이다...
보이지 않는 것 중 무엇이 달라졌을까?
인생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가 명확해진 점.
인생의 끝이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는 점.
무엇보다도 그 모든 불운이라고 일컬어지는 상황에서도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점
나심 탈레브는 품위란 환경에 직접적으로 얽매이지 않고 계획된 행동을 실행하는 것이라고, 그 행동이 최상의 결과를 가져다주지 않는다고 해도 최상의 기분을 느낄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이 품위라고 정의했다.
흠 나는 그렇게 지내왔는가? 나에게 한번 자문해 보게 되었다. 어쩌면 좀 징징거리기도, 자주 신세한탄을 했던 거 같다. 특히 아이에게 말이다. ㅠㅠ 그리고 좀 좌절하고 지친 날들도 있었던 거 같다. 점점 품위에서 멀어지고 있는 기분이다....
하지만, 포기하진 않았다, 그래 나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내 삶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 가족에 대해서 말이다!!!. 그래 끝날 때까지 끝난 건 아니지 하고 또 파이팅을 외쳐본다.
지금의 이 순간이 유리한가 불리한가, 불운인가 행운인가를 판단하기보다는 나는 그냥 내게 쏘아진 첫 번째 화살을 뒤로하고 두 번째 화살을 내 삶에 힘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하겠다. 지금의 유불리에 대한 생각은 죽어서 관속에 들어갈 때 한번 해볼까 한다. 흠 좀 더 품위 있는 삶에 가까워졌나 모르겠다.
"삶이라는 전체성 속에서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모든 일이 전체 속에서 필요한 장소와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전체성은 겉으로 드러나는 표면만을 보아서는 알 수 없다. 전체성은 부분들의 총합 이상의 것, 당신의 삶이나 세상이 담고 있는 내용물 이상의 것이다. 더 높은 질서는 형상 없는 의식의 영역, 우주 지성으로부터 나온다. -중략-
내면에 오직 고요만이 자리하고 생각이라는 소음이 없어졌을 때, 그때 비로소 그곳에 숨은 조화가 있고 신성이 있음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모두가 완벽한 자기 자리를 가지고 있어서 지금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방식 외에는 다른 것이 있을 수 없는 더 큰 질서를 알아차리게 된다.
우주는 나눌 수 없는 전체이며, 그 안에서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사물과 사건이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이라는 마음속 분류가 결국은 환상에 지나지 않음을 암시한다. 마음의 분류는 언제나 제한된 시각에 갇혀 있으며, 상대적이고 일시적인 진실을 나타내는 것에 불과하다."
by 에그하르트 톨레의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