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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불꽃 소예 May 17. 2024

손글씨의 매력

그냥 좋다.

나는 손으로 글을 써보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그리고 가끔씩 그 노트들을 다시 읽어본다. 인터넷에서 본 글귀, 책에서 본 글귀를 공책에 옮긴다. 나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세대를 모두 경험한 세대이기에, 가끔은 이런 아날로그식 감성이 좋다. 블로그나 인터넷에 옮겨 쓴 글들은 검색을 할 수 있기에 편리한 점이 있지만, 손으로 꾹꾹 눌러쓴 종이 일기장은 그 나름의 갬성과 감동을 준다.


싯타르트라는 책에서 옮겨 쓴 글귀가 마음을 때렸다.



그토록 많은 어리석은 짓, 그토록 많은 실수, 그토록 많은 구토와 환멸과 비통함을 겪어야 했다니 그렇지만 그것은 옮은 일이었다. 다시 제대로 잠을 자고 제대로 깨어나기 위해서는 절망을 체험해야만 했고, 그 어떤 것보다 어리석은 자살이라는 생각을 떠올릴 정도까지 나락의 구렁텅이에 떨어져야만 했다. 내 안의 아트만(자기 자신)을 다시 발견하기 위해 나는 바보가 되어야만 했다. 내가 한 일 가우데 잘한 일, 마음에 드는 일,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 있으니, 바로 스스로를 증오하는 일을 그만둔 것, 어리석기 짝이 없고 황폐한 삶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from 싯타르타



이 구절이 마음에 다시 다가온 이유는 아마도 내 마음 한구석에서 비슷한 감정이 있었기 때문일 거다. 어디 오갈 데 없는 마음을 정리하고자 아침 일찍 절에 다녀왔다. 이번달에는 시어머니께서 와 계셔서 내 아침이 여유가 있다.


이른 아침, 차가운 산공기를 마시며 가파른 산길을 올라갔다. 바위가 많은 산을 골산이라고 하는데, 이런 골산은 양기가 부족한 사람에게 좋다고 한다. 그래서, 그 골산의 기운을 200% 느끼기 위해, 맨발 투혼까지 해가며 산길을 올라갔다. 그러면서 동시에 왜 내 마음이 이토록 괴로울까를 생각해 봤는데 그 답은 찾지 못했다. 아직은 차가운 바위 위를 밟으며 발이 시렸다. 누군가 머리가 복잡할 때는 몸을 피곤하게 해 보라고 했었는데, 그 전략은 꽤나 효과적인 거 같다. 산을 올라가기 전 안개로 덮혔던 내 정신은 산 정상에 가까이 가자, 가슴이 조금 편안해진 듯했다. 그 새벽부터 절간을 청소하시는 법사님들에게 인사를 하고 대웅전으로 들어갔다. 그 이른 시간에도 법당에서 기도를 드리시는 어르신이 계셨다. 나는 그분의 기도에 방해되지 않기 위해 조용히 삼배를 하고 그냥 뒤쪽 불상으로 올라갔다. 대웅전 뒤 바위에 세워진 오래된 돌상에 향을 피우고 나는 조용히 내려왔다. 그러다 낭떠러지 같은 곳에 솟은 바위 근처로 갔다. 그곳에 가면 그 주변 경치를 다 조망할 수도 있고, 내 담력을 한번 테스트해보고 싶기도 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그걸 보니, 아직 어리석은 생각을 현실화시킬 정도는 아니구나 하는 내 마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한참 동안 바위 위에 앉아 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출근을 했다.


점심때 그 바위 위에 앉아 아랫마을 풍경을 봤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시간이 좀 지나서 생각해 보니 꽤 괜찮은 풍광이었다.


아니타 무르자니는 우리가 자신의 장엄함을 깨닫고 우리의 진정한 본성인 사랑에 따라 살아갈 때, 우리는 동시성에 의해 우리에게 딱 맞는 스승이나, 책, 영적인 사상을 끌어당기게 된다고 했다. 아주 딱 맞는 때에 말이다. 그걸 내가 아는 불교용어로 빌어 말하자면, 시절인연이 아닐까 싶다. 내가 오늘 새벽 절에 갔던 건 그 시절인연이 찾아와 나를 깨우쳐주길 바라서였다. 물론 아직 그 무엇인가가 나타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혼탁한 내 머릿속이 조금씩 맑아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계속 하다 보면 나 자신의 장엄함을 깨닫게 될까? 더 이상 나를 미워하지 않고 어리석은 생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게 될 것인가?! 어쩌면 내가 이렇게 발버둥 치는 것이 그 반증이지 않을까? 내 삶은 분명 지금보다 훨씬 더 좋아질 거 같다는 앎이 다가온다. <이하영 작가님의 책 인용>



자신을 하찮은 사람으로 깎아내리지 마라.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더라도, 앞으로 무슨 일을 하더라도 항상 자신을 사랑하고 존경하라. 그 태도가 미래를 바꾸는 강력한 힘이 된다.

by 프리드리히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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