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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불꽃 소예 May 21. 2024

너 감나무 가지야 딱 거기있어라.

내년에 두고보자. 만개한 우리집 작약이 내게 가르쳐준 지혜

작년에는 실패했지만 올해는 끝내 활짝 만개한 하얀 작약

작년 우리 집 화단의 하얀 작약이 꽃봉오리만 맺은 채 그 옆의 감나무 가지나무때문에 피지 못하고 져버렸다. 그랬던 이 아이는 올해는 전년보다 훨씬 더 자라서, 그깟 감나무 잎 따위가 나를 막을성이냐는 하듯이 그 전 높이보다 훌쩍 자라서, 끝내는 자기의 화려한 자태를 뽐내어주었다. 그 감동은 정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어쩌면 에이 난 안되나 봐 하고 한 번의 실패에 좌절해 보일 수도 있었지만, 자연은 나를 가르치고 있다. 우리 집 작약은 어떤 생각으로 더 자라서 꽃봉우리를 맺었을까? 무튼 멋지다.

아니타 부르자니의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라는 책을 읽고 있다. 저자는 림프종 4기 진단을 받고 모든 신체기능이 정지된 생물학적으로 죽음을 선고받았지만 끝내는 살아 돌아와 <임사체험> 그 이전보다 멋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나는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암에 대해 내가 가졌던 잘못된 인식을 깨닫게 되었고 남편을 원망한 나 자신에 대해서도 참 반성하게 되었다.


"나는 또 예전에 믿었던 것처럼 암이 내 잘못에 대한 처벌도 아니요, 내가 한 어떤 행위의 결과로 암이라는 악업을 경험하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 알 수 있었다. 매 순간 속에 무한한 가능성이 들어 있고, 시간의 한 지점이란 내가 그때까지 해온 모든 결정과 선택, 생각들의 정점과도 같은 것이었다. 내 수많은 두려움, 그리고 나의 엄청난 힘이 바로 이 병으로 표현된 것이었다."

아니타 무르자니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그래 불행이 닥치게 되면 사람들은 이유를 찾으려 한다. 나 역시 남편의 암 재발을 그런 카르마의 결과라고 잘못 이해하고 속으로 그를 미워했던 거 같다. 그리고 내가 이런 불행을 겪는 이유도 나의 카르마의 결과라고 내 삶을 부정하고 나를 혼냈었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 믿음은 쌉 소리에 불과했다.


불행은 랜덤으로 찾아온다.


그 불행이라는 돌부리에 넘어져 영영 주져 앉느냐 아님 우리 집 작약처럼 그깟 불행 아무것도 아니네 하고 다시 한번 일어나 그전보다 더 훌쩍 커서 끝내는 내 안의 아름다움을 꽃피우느냐는 나에게 달려있다는 걸 우리 집 작약을 통해 배운다.


어쩌면 지금은 내가 내 내면에 가지고 있었던 그런 모든 불행들이 현실화 된 상태일지도 모른다. 그러하기에 나를 짓눌렀던 그 어두운 두려움으로부터 벗어 나와 우리 집 작약처럼 살아야겠다.



"내가 걸어온 삶의 길을 봐! 왜 난 나에게 그토록 가혹했을까? 왜 늘 스스로를 혼내기만 했을까? 왜 항상 자신을 냉대했을까? 왜 내편을 들어주지 않았을까? 내 영혼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내보이지 않았을까?"

아니타 무르자니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저자가 자신이 죽었을 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말한 이 부분에서 너무 많은 눈물이 나왔다. 나 역시도 나에게 너무 자신감 없고 가혹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 왜 난 나에게 그토록 가혹했을까? 왜 나에게 '잘해야 한다고, 참아야 한다고 닦달하고 힘을 내야 한다고 혼냈을까? 왜 나를 더 돌봐주고, 내 감정을 토닥이진 못했을까? 그 누가 되었건 우리의 본질은 사랑이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무엇이 되어야만 사랑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 사랑받아 충분한 자격이 있는 존재라고 한다.


내가 우리 집 화단의 작약이 작년에 꽃봉오리만 맺은 채 자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지 못했을 때 난 그 아이를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안타까워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올해는 더 당찬 모습으로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나를 기쁘게 해 준 그 아이에게 뽀뽀를 해주었다. 대견해서 말이다. 그렇다고 작년의 그 아이를 덜 사랑한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신도 그러하실지 모른다.


지금의 나의 모습을 보며 신께서도 안타까워할 뿐 나를 덜 사랑하신 건 아니라 생각한다. 나는 아무런 증명과 조건 없이 있는 그대로 사랑받아 충분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조건 없는 사랑을 신에게 구할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나에게 듬뿍 퍼부어야겠다. 그 어떤 두려움 없이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더 사랑한다.' 나는 분명 더 좋은, 더 멋진 일들을 맞이할 충분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고, 아무런 증명과 조건 없이 사랑받아 충분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지금 여기 이 순간을 온전히 경험하며 오늘하루도 잘 살아가본다.그리고 끝내는 내 꽃봉우리 활짝 피우리라. 만개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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