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따뜻한 불꽃 소예 May 27. 2024

오온이 공한 것

산정상에서 내려다보듯 시선을 높이고, 힘은 뺀다.

관자재보살께서 반야바라밀다를 행하실 때 오온이 공한 것을 비추어 보시고 모든 괴로움을 깨달으셨도다.

반야바라밀다심경의 첫 구절은 관세음보살께서 오온이 공한 것을 비추어봤다로 시작한다. 나는 이 구절을 가지고 오늘 아침 절에 올라가면서 계속 생각해 봤다. 오온이 공하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어디서 들어봤던 이 구절을 계속 되뇐다. 모든 것은 오고 간다를 계속 되뇌었다. 중생의 모든 고통은 생각의 집착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그 집착이 내 마음에 불안과 두려움을 만들어내기에 번뇌가 생긴다고 말이다.


잡념이 올라올 때는 몸을 바쁘게 움직여야 할 때이다. 그래서 매일 아침 절에 가고 있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내가 지지고 볶고 있는 저 산아래 마을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산 정상으로 올라가 내려다보면 정말 오온이 공한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반야바라밀다경에서 말씀하신 그 구절이 자꾸만 생각난다. 하지만 나중에 찾아보니 미세먼지가 안 좋아서 안개가 낀 것처럼 그런 거란 사실을 알게 되면 현타가 오긴 한다.


최근 김미경 선생님의 유튜브를 듣다가, 그런 구절이 나왔다. 인생을 살다 보면, 언젠가는 모든 것을 수용해야 하는 절대 수용의 순간들이 있다고 말이다. 본인도 자식이 아파서, 몇 해 강의를 쉰 적이 있노라며, 인생에서 맞이하는 운명의 변화에 대해, 절대적으로 수용하며,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진짜 자기 인생 실력이 발휘된다고 말했다.


스스로의 결정이건, 운명이 그렇게 만들건 살다 보면 그런 순간들이 있다. 그간의 내 모든 노력들이 수포로 돌아가는 듯하고, 나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좌절의 순간들 그리고 시간만이 나를 구원해 줄 것만 같은 지난하고 긴 고통의 시간들이 온다. 그때는 일단 한 템포 쉬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반드시 재기하겠다. 옳다는 것을 증명해 보일꺼야 뭐 이런 '막무가내 오기'와 '버티기'로 나대다가는 정말 운명의 여신에게 싸다구를 맞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작 진짜 힘을 내야 할 때 힘을 내지 못해서, 영영 주저 앉아 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조용헌 작가가 내공이라는 책에서 '우생마사(홍수에 떠내려가는 소는 살고, 발버둥 치는 말은 죽는다)'의 자세로 지혜롭게 힘을 빼며 살아야 한다고 말했는지도 몰겠다.


지금의 삶을 하나의 연극이요, 꿈이니 별거 아니라고 여기며, 여여하게 살아보려 한다. 물론 말처럼 쉽지 않지만 내 머릿속을 자꾸만 비우고, 또 그렇게 물리적으로라도 계속 높은 곳에 올라가 내려다 보면, 정말이지 오온이 공하게 보이는 그런 순간이 올 지도 모른다. 미세먼지 때문이 아니라 ㅎㅎ 나는 하루하루 온전함을 경험하고 내 삶에는 다시 한번 솟아나는 신나는 삶의 느낌이 찾아오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 감나무 가지야 딱 거기있어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