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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온이 공하다는 것을, 산 정상에서 알게 되었다.

-- 번뇌를 밀어내는 대신, 위로 올라 간다.

by 따뜻한 불꽃 소예
관자재보살께서 반야바라밀다를 행하실 때
오온이 공한 것을 비추어 보시고
모든 괴로움을 깨달으셨도다.
--[반야바라밀다심경]의 첫 구절


홍수 속 말은 발버둥치다 죽고, 소는 힘을 빼고 살아 남는다. 어쩌면 진짜 실력은, 버티는 게 아니라 내려놓는 데 있다.


오늘 아침, 뒷산 절에 올라가며 이 구절을 계속 되뇌었다.

오온이 공하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어디서 들어봤던 그 말을 입속에서 굴리며 천천히 산을 올랐다.

모든 것은 오고 간다.

모든 고통은 생각의 집착에서 비롯된다. 불안과 두려움, 그것들이 결국 번뇌가 된다고 했다.


요즘 나는 매일 아침 절에 간다. 잡념이 몰려올 때는 몸을 먼저 움직여야 할 때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특히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 애쓴다. 정상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내가 지지고 볶고 있는 저 산아래 마을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그 순간, [반야심경]의 구절이 다시 살아난다.

정말로 오온이 공하다는 것이 느껴진다. ... 물론, 나중에 미세먼지가 심해서 안개처럼 보였다는 걸 알게 되면 약간의 현타는 오지만. :)


며칠 전, 김미경 선생님의 유튜브를 보다가 마음에 남은 말이 있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모든 것을 '절대 수용'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그게 실력이다."

그녀 역시 자녀가 아팠던 시간 동안 모든 걸 내려놓고 강연도 멈췄다고 했다. 삶의 흐름이 '받아들임'을 요구할 때, 억지로 버티고 오기 부리는 건 오히려 더 큰 싸다구를 맞는 일이라고.


나 역시 그런 시간들을 지나고 있다. 내가 아무리 애썼어도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만 같은 시기,

시간만이 나를 구원할 것 같은 길고 긴 고통의 강 그럴 땐 잠시 멈추어야 한다. 막무가내로 "나는 재기하겠다!"라고 고집부리다가 정작 힘을 내야 할 때는진짜로 일어날 힘조차 남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조용헌 작가가 [내공]이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

"우생마사(牛生馬死).
홍수 때, 떠내려가는 소는 살고,
발버둥 치는 말은 죽는다.

힘을 빼야 살 수 있다.

어쩌면 진짜 실력은 지금 나에게 '힘을 빼는 연습'을 가르치는 중일지 모른다.


지금의 삶을 나는 하나의 연극이자, 하나의 꿈처럼 바라보려 한다.

별거 아니라고, 그냥 그런 거라고. 물론 말처럼 쉽진 않지만

계속 올라가며, 내려다보며, 자꾸 머리를 비우고, 마음을 가볍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미세먼지가 아닌 진짜 **공함(空)**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그렇게 내 삶에는 조금씩 다시 솟아나는 생기의 기운이 돌고 있다. 신나는 삶의 감각이 다시 찾아오고 있다. 그리고 나는 알 것 같다 모든 것은 지나가고, 나는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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