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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불꽃 소예 Aug 27. 2024

허영의 끝

파국이다. 그래서 현실을 현실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인다.

보바리 부인

보발리 부인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주인공 엠마를 보면서 나는 '욕망'과 '허영', 이 가짜에 대한 집착이 결국에는 파국이라는 비극을 가져오는구나라는 생각을 해봤다. 나 역시, 결혼 생활초기에 엠마와 같이 관계와 결혼 생활에 대한 회의가 무지막지하게 컸다. 내가 생각한 결혼 생활과 현실의 결혼 생활은 너무 괴리감이 컸고, 내가 꿈꾸었던 미래와 내 현실 간의 간극이 더욱더 벌어져 버려, 좌절하고 심지어 우울증에 걸리기까지 했던 거 같다. 엠마가 로맨스 소설을 현실과 혼동하여 삶이 마치 로맨스 소설처럼 전개되리라, 그녀의 허함을 채워줄 어떤 백마 탄 왕자와의 로맨스라는 망상에 빠졌듯이, 나 역시 반복되는 일상에 무료함을 느꼈고, 썸띵 스페셜을 찾았던 거 같다. 결혼 초기에 말이다.


그리고 엠마가 상류사회에 느끼는 동경심과 환상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이 가지는 공통적인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인스타그램등에서 나오는 '청담동 부자는 이렇다'라는 쏟아지는 증언들처럼 우리는 부자, 상류층에 그 특유의 동경심과 호기심 및 선망이 있지만, 과연 얼마만큼이 진실일까? 앤디워홀이 그 당시 사교계의 명사 에디 세즈윅을 동경하며 선망해 그녀를 뮤즈로 여길 정도였지만, 그녀 자신은 깊은 우울증으로 평생 고통받았으며, 끝내는 약물중독으로 생을 마감했던 것처럼, 어쩌면 어떤 것들은 가까이 가서 보면 아름답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너무나 동경하고 갈망하는 그 무엇인가도 막상 가까이 가서 지켜보면 그다지 특별하지도 어떤 대단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린 그것을 가지지 못했기에 언제나 갈망하고 판타지를 추가하여 자기의 현실과 비교해 가며 현타를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무엇인가와 내 현실을 비교하는 것이다.  


나 역시, 마담 보바리를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허상을 바라보며 스스로 품었던, 상상했던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신기루 같은 것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거 같다. 내가 진정으로 목매달아야 하고,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은 내 일상이었다. 퇴근 후, 저녁시간에 식탁에 모여 앉아 밥을 먹으며 일상을 공유하고, 내 귀여운 아이의 발가락을 만지고, 손톱 발톱을 깎아주고 동화책을 읽어주는 이 일상, 내가 TV나 블로그, 인스타에 나오는 그 대단한 회사의 멋진 커리어우먼으로 화려하게 살지 못한다 하더라도, 현실에서는 개저씨들과 피 터지게 싸우고 공장의 퀴퀴한 냄새를 맡으며 불평불만하고 있지만, 그래도 임금체불 없이 따박 따박 돈 나오는 이 직장에 감사해하며 산다. 나를 지탱해 주고 나를 이 땅에서 살아가게 해주는 건 어쩌면 이 별 볼 일 없는 일상이다. 그래도 나는 이 삶을 붙잡고 사랑하며 살고 싶다. 이 별 거 없는 내 일상이 나는 너무 소중하고 애틋하다. 말기암 환자인 내 남편이 '정말 편히 숨 쉬고 통증을 느끼지고 않으며 편안히 잠을 잘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축복이었는지 모르겠다고 그땐 왜 그걸 몰랐는지 모르겠다고 나에게 고백한 거처럼 나 역시 가끔은 이 별거 없는 평범한 내 삶을 당연히 여기고 심지어, 하찮게 여겼던 거 같다. 하지만, 지금은 내게 주어진 이 삶, 오늘 회사 점심에 나온 미역국에도 감사하며 그냥 이 순간을 충만하게 살고 싶어졌다. 엠마를 보니, 더 그래야겠다고 생각했다.


보이는 것과 실상에는 큰 간극이 있음을, 권태로운 일상일지라도 한번 잃어보면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절실히 깨닫게 될 것이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인다.




"그녀를 가까이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 권태로운 전원, 우매한 소시민들, 평범한 생활 따위는 이 세계 속에서의 예외, 어쩌다가 그녀가 걸려든 특수한 우연에 불과한 반면, 저너머에는 행복과 정열의 광대한 나라가 끝 간데 없이 펼쳐져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녀는 욕망에 눈이 어두워진 나머지 물질적 사치의 쾌락과 마음의 기쁨을 혼동하고, 습관에서 오는 우아함과 감정의 섬세함을 혼동하고 있었다. 인도산 식물의 경우가 그렇듯이 연애에도 그것을 위해 준비된 땅과 특수한 기온이 필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마담 보바리에서 (by 귀스타브 플로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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