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좋다.
나는 손으로 글을 쓰는 순간이 좋다. 인터넷의 빠른 글과 달리, 손글씨는 꾹꾹 눌러쓴 흔적에 마음이 담긴다. 가끔 책이나 인터넷에서 발견한 글귀를 노트에 옮기며 나를 다독인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세대를 모두 경험한 나에게, 종이 일기장의 "갬성"은 특별하다.
최근 싯타르트에서 읽은 구절이 마음을 울렸다.
그토록 많은 어리석은 짓, 그토록 많은 실수, 그토록 많은 구토와 환멸과 비통함을 겪어야 했다니 그렇지만 그것은 옮은 일이었다. 다시 제대로 잠을 자고 제대로 깨어나기 위해서는 절망을 체험해야만 했고, 그 어떤 것보다 어리석은 자살이라는 생각을 떠올릴 정도까지 나락의 구렁텅이에 떨어져야만 했다. 내 안의 아트만(자기 자신)을 다시 발견하기 위해 나는 바보가 되어야만 했다. 내가 한 일 가우데 잘한 일, 마음에 드는 일,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 있으니, 바로 스스로를 증오하는 일을 그만둔 것, 어리석기 짝이 없고 황폐한 삶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from 싯타르타
이 구절은 내 안의 혼란과 자책을 마주하게 했다. "왜 나는 이렇게 괴로울까?"라는 질문이 떠오를 때, 새벽 산행이 나를 불렀다.
새벽 산길, 마음의 안개
시어머니 덕에 아침이 여유로웠던 날, 차가운 산공기를 마시며 절로 향했다. 바위가 많은 산, 이른바 "골산"은 기운을 북돋운다고 한다. 맨발로 바위를 밟으며 올라갔다. 차가운 감각이 발바닥을 타고 올라오며, 복잡했던 머릿속이 조금씩 맑아졌다. 누군가 말했듯, 마음이 어지로울 때는 몸을 움직이는 게 답이다.
절에 도착해 대웅전에서 들어가 조용히 삼배를 했다. 새벽부터 기도하시는 어르신을 보며, 나도 내 안의 평화를 찾고 싶었다. 대웅전 뒤 바위에 올라가 향을 피우고, 낭떠러지 끝에서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그 떨림 속에서 내 마음이 아직 무너지지 않았음을 알았다.
시절인연, 나를 깨우다.
아니타 무르자니는 말했다. 우리가 사랑과 장엄함을 깨달았을 때, 딱 맞는 순간에 동시성에 의해 우리에게 필요한 스승이나 책이 찾아온다고. 불교에서는 이를 "시절인연"이라 부른다. 그 새벽 산행은 내게 그런 순간을 맞이하기 위함이었다. 아직 모든 답을 찾진 못했지만, 혼탁했던 마음이 조금씩 맑아지고 있었다.
니체의 말처럼, "자신을 하찮게 여기지 마라. 아직 이룬 것이 없더라도, 스스로를 사랑하는 태도가 미래를 바꾼다." 이렇게 계속 나를 사랑하다 보면 정말 나 자신의 장엄함을 깨닫게 될까? 더 이상 나를 미워하지 않고 어리석은 생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게 될까?
나는 그저 매일 아침 손글씨로 나를 다독이며,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내 삶은 분명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를 써 내려간다.
자신을 하찮은 사람으로 깎아내리지 마라.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더라도, 앞으로 무슨 일을 하더라도 항상 자신을 사랑하고 존경하라. 그 태도가 미래를 바꾸는 강력한 힘이 된다.
by 프리드리히 니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