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내 오만과 무지 때문일 수 있다.
이틀 전 페르세우스 유성이 떨어진다는 그 밤, 나는 그 유성을 보고 싶었지만 너무 피곤해서 잠이 들었다 새벽에 화장실을 다녀온 뒤 창문을 열어, 하늘을 쳐다봤다. 새벽 2시 고요한 시골 밤하늘. 시골의 밤하늘은 도심의 하늘보다 아름답다. 별이 더 잘 보이기 때문이다. 노오란 반달과 다이아몬드 보석같은 별들이 검정 밸뱃 카펫에 박힌 듯 예쁘게 빛나던 그 밤, 나는 떨어지는 유성을 봤다. 순식간에 말이다. 아 그 감동, 얼른 소원을 빌어야 하는데 나는 감사합니다를 세 번 외쳤다. 불현듯, 삶이 찰나이겠다 싶었다. 저 떨어지는 유성처럼 말이다. 기쁨과 영광, 슬픔과 고통도 찰나의 순간이겠구나.
그런데, 왜 난 그리 미워하며 살았던가?
내가 직장생활을 시작한 2000년대 중반, 나는 우리 세대 중에서도 가장 서양식 사고를 가진 사람이었다. 너는 너, 나는 나, 철저한 개인주의. 그래서, 회사에서 남직원들은 놔두고 설거지를 시키고, 커피 심부름 시키고, 사장님 이사 갈 때 같이 가서 이모님 역할해 주는 것에 대해 극혐하고 그 사장 미친놈이라고 욕을 미친 듯이 했었다. 그리고 최근에도 회사에서 누군가 나의 출근시간을 HR에 고자질했을 때 극 분노하기도 했다. [물론 난 사전에 그날 출근시간을 인사팀에 미리 알려줬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들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농경사회 문화가 강한 경상도에서는 뭐 그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남존여비', '집단적 문화', '군대식 가부장적이고 봉건적 문화'가 중요시되는 이곳에선, '절대 튀면' 뒤지는 그런 문화에 오래 살다 보면 그런 문화가 당연하고, 그 문화에 반기를 드는 내가 또라이인거다.
그냥, 내 성향과 가치관이 이 환경에 Right Fit 이 아니었던 거다. 그냥 우린 서로가 달랐던 거다. '네가 미친놈이고, 꼰대이며 잘못된 것'이 아니라, 우린 그냥 서로의 가치관이 너무 다르며, 자라온 배경도 그리고 흡수한 문화적 배경이 다를 뿐인 거다. 그렇게 이해하다 보니, 내가 그렇게 화냈던 것이 무조건 내가 옳다는 자만심과 동시에, 사람에 대한 이해가 낮았던 내 무지 때문일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인생은 찰나라고 한다.
그러니, 너무 미워하고 화내지 말고, 원망하지 말고 그냥 그런갑다하고 넘어가야 한다.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 그것들만 보며 시간을 낭비하기엔, 내 찰나의 인생이 아깝다. 나에겐, 마땅히 누려야 할 너무 많은 아름다움과 감사함이 있다. 내가 그날 본 유성처럼 말이다. 그리고, 나는 점점 더 내 삶을 나를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게 될 꺼 같다. 그리고 그 넉넉해진 시선으로 타인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내 직장생활도 이제 좀 편해지겠지.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페르세우스 유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