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따뜻한 불꽃 소예 Sep 20. 2024

예단하지 말고

그냥 고요히 경청하자.

영어 공부를 하다 Prejudge라는 단어를 배웠다. 예단, 속단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나는 친정 엄마와 이야기하다 보면 화를 자주 낸다. 왜냐하면, 나의 엄마는 항상 예단하고 속단하고 일어나지 않은 가공의 일들 혹은 엄마의 망상적 생각들을 나에게 털어놓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화를 내고, 짜증을 낸다. 이번 추석에도 그랬다. 그런데 말이다. 생각해 보니 요즘 내가 그렇게 하고 있었다.


화창한 지난 토요일, 아들과 함께 문화생활을 하러 부산문화회관에 갔다. 그곳에는 서양미술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기획 전시회가 열렸는데, 우린 기분 좋게 전시회를 관람했다. 전시회를 관람하고 나오는 길에 어떤 외국인이 방황하는 게 내 레이다 망에 걸렸다. 그 외국인은 어딘가를 두리번거리는 듯해서 아줌마의 오지랖이 발동하여, '혹시 전시장을 찾는 건가요?'하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그는 그냥 지나가는 관광객이라고 대답했다. 어 이건 내가 예상한 답변이 아닌데.... 그때부터 나의 뇌회로가 오작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당연히 전시장을 찾을 거라고 판단하여 이런 답을 해주어야겠다는 생각까지 마쳤는데, 그는 그냥 지나가는 관광객이었던 거다. 그냥 "어 저기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데, 생각 있으면 한번 보세요"라는 대답을 하면 되는데, 나는 당황하여, '어 저기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데 어쩌면 당신이 관심이 없을지도 몰라요, 거긴 서양미술사에 중요한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어서 아마도 당신이 다 알고 있는 작품일지도 몰라요'라는 황당한 답변을 했다. 그러고는 나도 찔렸는지 강서구에 있는 부산 현대미술관에서 지금 비엔날레가 열린다는 황당한 주제로 그를 인도했다. 우왕좌왕 그를 보내고, 나는 내가 왜 그런 황당하고 살짝은 무례했을지도 모르는 말들을 횡설수설했을까 하며 나를 자책했다.


그건 내가 외국어로 말해야 하기에 당황해서 그럴 수도 있기도 하지만, 어쩌면 내가 대화를 하면서 습관적으로 속단하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자각이 들었다. 대화란 '말하는 자'의 것이 아니고, '듣는 자'의 이라고 하는데, 나는 내 지식을 뽐내고 나라는 존재를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 때문에 듣지 않고 먼저 속단해서 내가 할 말에만 집중했다. 그래서 내 예상과 다르게 이야기가 전개되어 당황하고 쓸데없는 말들을 더 많이 한 거다. 그냥 그 외국인이 말하는 것을 차분히 듣고 나의 어설픈 판단이 담긴 말을 하기 전에 멈춰 상대방이 원하는 혹은 그 대화에 맞는 대답을 했다면 나는 그날 그렇게 혼자서 얼굴이 벌게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렇게 헤드뱅을 하지 않았을 것인데 말이다. 내가 집으로 가는 동안 차 안에서 헤드뱅을 하니, 아들이 위로해 줬다. "엄마 괜찮아요, 그래도 도와주려고 그랬던 거잖아요." 그렇겠지..........


어쨌든, 남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흑역사 에피소드 하나가 더 생겼다.

무튼, 핵심은 일단 내 판단과 생각을 멈추고 상대의 말을 차분히 들어야 한다. 특히 아이와 이야기할 때, 습관적으로 나오는 나의 그 저주에 가까운 속단들을 접어두고 좀 더 아이의 말을 듣기 시작한다면, 분명 내 아이도 나를 내 진심을 더 알아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일단 내 생각과 말을 멈추고, 듣기 시작하면, 내 불안전한 에고는 잠잠해지고, 대신 평온과 고요 속에서 자신감 있게 타인과 좀 더 성숙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될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