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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사랑하는 법

바람은 촛불 하나는 꺼뜨리지만 모닥불은 살린다.

by 따뜻한 불꽃 소예

나심 탈레브의 '안티 프래질'을 다시 읽으면서 생각했다. 불편함에는 분명 효용이 있다.


그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바람은 촛불 하나는 꺼뜨리지만 모닥불은 살린다


바람을 피하려 하지 말고, 바람을 맞으며 더 크게 타오르는 불이 되라고 말한다. 무작위성, 불확실성, 카오스 같은 것들을 피하지 말고 활용하라는 그의 주문은, 지금의 내 삶과 너무 닮아 있었다.


혼돈의 삶

요즘의 나는 그야말로 불확실성의 한가운데 있다. 남편의 건강, 팔리지 않는 내 시골집, 불확실한 내 직장과 미래, 부모님의 건강. 모든 것이 예측 불가능한 변수처럼 흩날린다.

그래서일까, 새벽 3시가 되면 눈이 떠진다.

불안은 어둠 속에서 더 짙어지고, 마음은 얇은 얼음처럼 부서질 듯 위태로운 듯 하다. 그럼에도 다시 일어나고 싶다. 그 떨림 속에서 불씨를 지피고, 모닥불처럼 타오르며 언젠가 평온을 맞이하고 싶다.


나는 그 해답의 실마리를 자연에서 찾았다.


자연이 가르쳐준 회복의 법칙

내 팔리지 않는 시골집 화단은 나에게 많은 걸 가르쳐주었다.

남편이 잡목이라며 무심히 잘라낸 모란나무, 공사 인부가 거칠게 베어버린 황매화, 빛을 잃은 채 피지 못하던 하얀 작약.


그들은 다음 해, 오히려 더 찬란하고 힘차게 피어올랐다. 나는 그때 처음 깨달았다.

부서짐은 끝이 아니라, 더 깊은 생명을 드러내는 또 다른 형태의 탄생이었다.

그게 바로 안티프래질이었다. 무질서로부터 이익을 얻고, 혼돈 속에서 더 강해지는 생명력.

자연은 언제나 그것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내 일상의 작은 모닥불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하면 안티프래질 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바람을 막을 수 없다면,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꺼지지 않는 내면의 모닥불을 키워야 한다.


1. 일상에 10%의 불편함을 가져온다.

탈레브는 이를 바벨 전략이라고 부른다. 큰 변화를 시도하기보다, 작은 불편함을 반복하며 내성을 키우는 방식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아침 조깅을 시작했다.

주 3회 근력운동을 하고, 매달 한 권의 책을 완독 한다.

토요일 아침, 늦잠의 유혹을 뿌리치고 아이를 문화센터에 데려다준 뒤 조용한 휴게실에서 책을 읽는 50분. 그 순간은 나에게 작은 극락이 된다. 불편함이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오히려 삶이 조금씩 진전되고 있다는 감각을 되찾아주었다.


2. 일어나는 변화를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

나는 아직도 내게 일어난 슬픔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때때로 분노와 눈물이 밀려오지만, 그조차 하나의 과정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상실과 두려움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사건이다. 결국엔 지나가고, 그 과정 속에서 조금씩 성숙해진다. 그래서 자기 전에 스스로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너는 안전해. 다 괜찮아질 거야."


3. 변화를 믿고, 나를 믿는다.

변화는 두렵지만, 멈춰서는 안 된다. 실수해도 괜찮다.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변태(變態)의 과정이다. 내 삶도, 순간의 고통도, 모두 흐름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때 설익은 비관론자였다. 조선업, 자동차 그리고 석유화학 - 내가 몸담았던 산업들이 모두 사양길에 접어든다고 믿었다. 그래서 늘 불안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다시 살아났다. 과거의 '탕아'였던 산업이 다시 나라를 이끄는 기둥이 되었다.


냉소는 편하지만 시야를 좁힌다.

나는 이제 세상을 '오만하게 보는 비관론자'가 아니라, 불확실성을 연료로 삼는 현실주의자로 살고 싶다.


더 이상 바람을 피하지 않으려 한다.

불어오는 바람이 내 촛불을 꺼뜨리더라도, 그 바람으로 내 안의 모닥불을 키울 것이다.

바람이 불어와도 괜찮다. 이제 나는 촛불이 아니라, 모닥불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따뜻한 불꽃 소예라는 내 필명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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