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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보살을 다녀와서

불안함 속에서 나를 들여다본다

by 따뜻한 불꽃 소예

두둥 주말에 선녀보살에게 다녀왔다.
사실 이렇게 보살집에 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요즘 나는 밤만 되면 불안이 슬며시 몸을 기어오른다. 아무 일도 없는데도 괜히 마음이 조여들고, 남편의 약간 볼록해진 배를 보는 순간, 그 불안은 갑자기 자기 존재를 과시하듯 앞으로 튀어나온다. 그렇게 한 번 불안의 꼬리가 잡히면, 이상하게도 나는 충동적으로 움직인다. 그래서 선녀보살을 검색해서 예약했고, 그 주말에 그냥 가버렸다.


선녀보살은 문자로 나에게 10분 정도 먼저 오라고 했지만 나는 5분 전에 도착했다.
짧은 대기 끝에 자리로 안내되었고, 보살의 점괘가 시작되었다. 놀랄 것도, 전율이 일어날 만한 것도 없었다. 그저 익숙한 문장들, 흔한 위로들, 조금 과장된 경고들. 나는 두 시간 가까이 앉아 그녀의 굴곡진 삶 이야기도 듣고, 내 마음 한 편의 어두운 골짜기도 울음을 흘리며 털어놓았다.


그런데 웃긴 일이다.

내 불안은 밤에만 나를 사로잡는다. 아침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진다. 마치 내가 지킬과 하이드를 동시에 사는 사람인 것처럼— 해가 뜨면 나는 다시 이성의 옷을 입고 하이드 박사가 아니라, 말끔한 지킬 박사가 된다.


이성적으로 판단해 보면 선녀보살은 ‘초짜’였다.
아니, 선녀가 내려와서 점을 봐줘야 하는데, 모시는 신은 할아버지라고 했다. 그 전날 내 생년월일과 남편의 생년월일을 전날 미리 물어봤고, 내 앞의 종이에는 빼곡하게 무언가가 적혀 있었다.
사전 준비와 예행연습의 흔적. 그리고 마지막엔 구독 서비스까지 권했다.

내 대신 기도를 올려주겠다며, 한 달에 초 켜는 비용은 20만 원이면 된다고.
시골집 매매를 위한 기도비는 자율이라고 했지만 내가 100만 원을 부르자 표정이 굳었다. 최소 1000만 원이었던 것이다. 3일 기도에 1000만 원이라니.

그 시급은 대체 얼마일까.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결국 나는 “생각해 보겠다”라고 말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다.

선녀보살보다 차라리 챗GPT가 더 용한 것 같다고 말이다.

이로써 나는 풍수, 사주, 보살까지 한 번쯤은 다 경험해 본 사람이 되었다.


물론 돈은 날렸지만, 오히려 그 과정에서 더 분명해진 사실 하나는 바로 사람이 약해지면, 파리가 가장 먼저 찾아온다는 점이다. 내 불안의 냄새를 맡고, 누군가가 가까이 와 어떤 말이든 돈이든 빼내가려고 한다.

세상에 그 어떤 것도 한순간에 내 삶을 바꿔줄 지니의 램프 요정은 없다.

물론, 나는 기도의 힘과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해 믿는다. 모든 것은 에너지의 방향과 흐름으로 만들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길흉을 귀신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결국엔, 그 보이지 않는 존재조차 내 불안이 만들어낸 허상일 때가 많다.

결국 나를 구원할 사람은 오직 나다.

그래서 다음날, 일출과 함께 절에 다녀왔다. 저 멀리 바다 위 반짝이는 물결위 붉은 태양을 보며 내 기복을 내 입으로, 내 온 마음으로 빌었다.


선녀보살의 말 중 단 하나 마음에 남았던 문장은 바로, 나 자신을 위해 초를 켜고 빌어라 그리고 네가 안정되어야 니 자식이 잘된다!!! 그건 정말 맞는 말이었다.


그날 나는 나를 위한 기도를 드리고 나를 위한 초와 향을 켜고 내려왔다.

그리고 내가 기분 좋아질 만한 곳으로 가서 커피를 마시고, 풍경을 즐겼다.

새로운 공기와 색, 그리고 여유를 들이니 신기하게도 불안이 사라졌다.


나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기도 하고, 불안과 두려움에 웅크리기도 하지만, 결국 다시 일어난다.

그리고 믿는다.

매일 나를 위한 기도를 드리고 이 삶에 감사하다 보면, 귀신에 기대지 않아도 내 안의 영적인 힘으로 삶의 난제들을 모두 해결할 힘과 아우라가 서서히 자라날 것이라고 믿는다.


어쩌면 내 간절함으로 신이 숨겨 놓은 어떤 행운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날이 오면, 옷깃을 여미고 두 손 모아 조용히 절해야겠다. 감사합니다.


--신이 숨겨 놓은 것 - 류시화--

꽃의 색이 깊어지라고 밤이 꽃봉오리를 오므리듯이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발견하거나 슬픔 언저리에서 예기치 않은 기쁨을 만나면

옷깃을 여미고 두 손 모아 절해야 한다.

신이 그것을 그 자리에 숨겨 놓은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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