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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한 계절, 11월

아침에 문득 다가온 고요

by 따뜻한 불꽃 소예

경주여행을 다녀온 뒤, 내 마음에 문득 고요가 찾아왔다. 오래도록 가라앉아 있던 미움과 원망, 두려움이 조금씩 흩어져가는 것이 느껴졌다. 삶이 유한하다는 메멘토 모리의 말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나는 왜 내 삶의 이 아름다운 순간들을 미움과 원망 속에 방치한 채 살아왔던 걸까. 그 단순한 질문이 내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남겼다.


11월, 늦가을 혹은 초겨울

이 계절이 내게 그런 고요함을 선물해 주는 것일까. 숲 속의 나무들은 화려했던 겉옷을 벗어 놓고, 본래의 자기로 돌아가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요즘 아침마다 집 근처 산을 조깅한다.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바라보면, 그 빛이 내 마음속으로 깊이 스며드는 듯하다. 어딘가에서 나를 위로하는 손길처럼, 나를 위한 조용한 기도도 올려본다.


산길을 오르다 보면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가 발끝에 닿는다. 남쪽나라엔 눈이 거의 오지 않아 겨울의 '뽀드득'소리는 들을 수 없지만, 대신 가을이 주는 묵직한 낙엽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일출과 함께 대기가 조금씩 따뜻해지면, 낙엽과 흙, 들국화가 섞인 묘한 향이 땅 위로 올라온다. 아침 숲의 공기는, 어쩌면 자연이 인간에게 건네는 천상의 향기인지도 모른다. 하나 둘 떨어지는 오색 단풍과 떠오르는 태양, 그 아름다움 속에서 나는 문득 평온해진다.


예전엔-아니,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살기 위해 달렸다.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내 발을 움직였다. 하지만 오늘은 달리기 위해 산다. 기쁨을 느끼기 위해, 이 순간의 평온을 온전히 맛보기 위해 달린다. 이 순간은 지나면 다시 오지 않기에 더 소중하고 아름답다.


그렇다면 나는 왜 그렇게 미워하고, 원망하고, 두려워하며 현재를 놓쳤던 걸까. 생각해 보면, 내 안에 깊이 뿌리내린 결핍의 그림자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그 결핍마저 부정하지 않는다. 그럴 수 있다. 그것 역시 내 삶의 한과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미워하고 화내고 두려워할 수 있었던 것이다. 괜찮다. 그것은 지나온 내 생의 한 장면일 뿐이다.


단, 이제부터는 현재를 살아보려 한다. 이미 내게 주어진 삶의 축복을 바라보며, 매 순간 속에서 살고 또 죽어가는 리듬을 느끼며.


율동 - 이어령

생은 율동 속에서 전진한다. 썰물과 밀물의 파도처럼 시간도 율동을 호흡을 지니고 있다.


이어령 선생님의 말씀처럼, 나 역시 이제 나만의 율동을 찾아가려 한다. 흩어지고 다시 모이고, 밀려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삶의 흐름을 억지로 붙잡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아가야겠다. 마음이 또다시 흔들릴 때는, 지금의 이 고요를 떠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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